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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선기 May 30. 2022

스물다섯 살, 30만원으로 첫 창업과 실패

실패의 실력 #4

『실패의 실력』#4


실패의, 이유

아이디어만 좇았다


“슬슬 돈을 더 벌고 싶은데 말이지…”




여전히 고대사에 가까운 11년 전, 2011년은 대학생 창업, 청년 창업에 대해 지금처럼 우호적인 분위기는 아니었다.


정부나 공공기관의 청년 창업 지원 같은 것도 극히 드물었고,

체계화 된 창업 교육 시스템이나 창업지원센터 같은 것도 지금과 비교하면 거의 없는 수준이었다.


간혹 그런 센터나 제도가 있어도 실무를 담당하는 창업 육성 전문 인력은 전무한 시기였다.



그나마 대학교 혹은 고등학교 졸업 후에 창업을 하는 친구들은(이조차 극히 드문 경우이긴 했지만)

십중팔구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부모에게 창업 자금을 지원 받아 카페나 레스토랑이나 가게를 차리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안타깝게도 나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는 다른 세상 친구들의 이야기였다.

그렇지만 "겨우 부잣집에서 태어난 것 만으로 신에게 선택 받았다고 착각하는 이들"에게 져주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농축산물 유통·특판 업체를 창업했다.

우리유통, 첫 창업이다.



‘지역별 특산품을 찾아 전국을 돌아다니고, 생산자들을 만나 일정 물량을 확보해서 카탈로그로 묶는다.

그리고 대기업이나 관공서의 명절 직원 선물이나 사내 기념일 선물로 제안한다.’


이게 당시에 생각해낸 자본금 없이 도전해 볼 수 있는 사업 아이템이었다.


사업의 핵심은 돌아다니고, 찾아내고, 설득하는 일이다. 어느 정도 자신 있는 일들이라고 생각했다.


말 그대로 맨 몸으로 시작했다.




우여곡절이 ‘정말’ 많았지만 몇 년 후 사업은 다행히 정상 궤도에 올랐다.


(사진 배경의 지리산 같은 저 뒷산은 무려 페루의 '마추픽추'입니다....)





그 뒤로 몇 년의 시간이 더 흐른 뒤였다.


곧 다가올 설날을 앞두고 ‘명절 선물 세트’ 아이템을 준비할 때였다.


슬슬 돈을 더 벌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마치 영국의 민화인 『잭과 콩나무』에 나오는 콩나무처럼, 자고 일어나니 욕심이 어느 순간 쑤-욱 하고 자라 있었다.



어쨌든. 욕심이 그렇게 무럭무럭 자라버린 상태에서

이제는 다른 사람의 물건을 대신 팔아주는 중개유통업이 아니라 뭔가 획기적인 아이템을 직접 만들어서 ‘대박’을 한 번 내보고 싶었다.


신문과 인터넷을 뒤지며 아이템을 찾다가 획기적인 아이템을 발견했다. 복 떡국 떡이다.


우리는 설날이면 온 가족이 모여 떡국을 함께 먹으며 새해 인사를 나눈다. 우리의 오랜 전통이다.



“새해 복 많이 잡수세요.”


설날 명절 인사로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가 아니라,

서로 복 떡국 떡을 선물하면서 “새해 복 많이 드세요” 라고 인사를 하는 장면이 머리를 스쳤다.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이거다. 이거야!”



패키지 디자인부터 무척 공을 들여 아이템을 다듬어가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벌고 모아둔 돈을 아낌없이 투자했다.


상관없다. 이건 반드시 성공할 아이템이니까.


남들이 뺏기 전에 빨리 세상에 퍼뜨려야 한다. 속도전이다. 먼저 선점해야 한다.


모름지기 사업가라면 이때다 싶은 순간에는 과감해질 필요도 있지,



라고 나는 생각했다.











하-아, 참으로 어리석은 청년이여……




===================  여기서 문제.  ===================

“새해 복 많이 잡수세요”라는 캐치 프라이즈를 가진 이 ‘복 떡국 떡’이라는 아이템은 처참하게 실패했다.


왜 그랬을까? 듣기에 굉장히 그럴 싸 하지 않은가?


정답은 바로 아래에 있다.


정답을 읽기 전에 1분만 생각해보자. 이거 도대체 왜 망했을까?








판매를 위한 모든 준비가 다 끝났을 때, 샘플로 한 세트를 본가로 가져갔다. 가족에게 웃으며 소개했다.


“이거 이름이 복 떡국 떡이야. 어때?”


이야기를 듣고 있던 엄마의 표정이 영 밝지 않았다.


그런 엄마의 표정은 떡국을 끓이며 점점 더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떡국을 다 끓였을 때, 엄마의 짙은 한숨 소리가 거실에 앉아있던 내 귓가에까지 들려왔다.


내내 뭔가에 홀려있던 나는 그제야 직감했다. 뭔가 일이 잘못 됐구나.


“한 번 먹어봐.”    

엄마가 낮게 깔린 어투로 말했다.


국 그릇에 담겨있던 그 복 떡국 떡을 숟가락에 담아 입에 넣는 순간,  

내 머릿속에는 이말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X됐다….'




문제. 복 떡국 떡이라는 사업 아이템이 망한 이유는?


정답 1. 맛

이 없었다.


떡국 고유의 담백함도 걸쭉함도 느껴지지 않았다.


정답 2. 모양새

가 영 안 예뻤다.

진공 포장되어 있는 떡에 새겨진 ‘복’이라는 반듯한 글씨가 요리 후에는 떡이 불어나면서 글씨가 알아보기도 힘들게 삐뚤삐뚤 해졌다.



정답. 사업(음식)의 본질을 간과했기 때문.



복 떡국 떡의 분류는 음식이다. 음식의 본질은?

맛과 모양새다.


음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획기적인 아이디어도,

오랜 전통을 뒤집을 수 있는 캐치프레이즈도 아니다. 바로 맛이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맛을 보고 싶게끔 먹음직스러워야 한다.

(물론, 위생이나 청결 같은 너무도 당연하고 법으로도 정해져 있는 원칙은 말할 것도 없이 중요하다)


정말 너무나 당연해서 올해 7살이 된 유치원생 조카도 답을 맞출 수 있는 문제를,

어리석게도 서른이 다 되어가는 내가 간과했다.


시장의 반응은 빙하기 둘리가 얼어있는 얼음만큼 차가웠다.


50개 정도의 샘플을 기존 거래처와 새로 거래하고 싶은 곳들에 보냈지만  

샘플을 받은 이들에게 긍정적인 신호는 전.혀. 오지 않았다.


괜한 욕심과 ‘빨리’ 돈을 더 벌고 싶다는 조급함이 냉정함을 잃게 했고,

그렇게 무언가에 홀리기라도 한 듯 냉정함을 잃자 본질을 놓쳐버린 것이다.


지금 이렇게 담담하게 그 일화를 소개하고 있지만 그때 내가 느꼈던 절망감은 보다 깊고 슬픈 것이었다.

(통장은 더 슬펐다)


준비해둔 상품을 몇 세트 팔지도 못한 채, 전량 폐기해야 했다.

제기랄, 폐기하는 데에도 적지 않은 돈과 수고가 들었다.


엎친 데 더친 격이라고 해야 할까? 


다시 몇 년의 시간이 흐른 뒤,


201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대형마트, 대형 백화점 브랜드들이 본격적으로 특판과 명절 선물 세트 시장에 들어왔고, 박리다매가 가능한 대기업과의 가격 경쟁에서 이제 더 이상은 우위를 점 할 수 없게 되었다.


거기에 더해 명절 임직원 선물이 이전의 일괄적인 선물 지급에서 점점 지역화폐나 상품권 제공으로 대체되기 시작했다.


시장의 공급은 포화 상태였는데 수요는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시장을 개척할 수도, 시장의 판도를 갈아엎을 수도 없는 일개 개인사업자로서의 한계를 뼈저리게 실감했다.


특판 유통은 이제 더 이상 비전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첫 사업인 우리유통을 접기로 결심했다.

4년 간 전국을 돌아다니며 악착 같이 이어온 사업이라 실패를 인정하기 쉽지 않았다.



사업의 핵심은 그 사업의 본질에 충실해야 한다는 그 빤한 사실을

너무 비싼 대가를 치르고 나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조금 더 지식과 지혜를 갖춰 다음 도전을 준비하는 수밖에 없다.


와중에 복 떡국 떡이라는 뼈아픈 실패가 있었지만,



그래도 ‘아직’ 빚은 없었다.


몇 달 뒤,  

다음 사업이자 내 인생 최대의 도전이었던 한국문화 공유플랫폼, 애스크컬쳐 (AskCulture)를 창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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