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의 실력 #6
실패의 실력
그날 나는 프랑스 파리에서 '그녀'를 만났다.
그보다 한 달 전인 5월이었다. 한류 관련 사업과 프로젝트를 담당하는 정부 부처의 공무원에게서 연락이 왔다.
“대표님, 이번 프랑스 KCON 행사에 참가기업으로 가시죠?”
“네, 행사 기획 담당자에게서 연락받았습니다. 저희가 뭘 할지 고민하고 준비 중입니다.”
“현장에서 VIP가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VIP?
“VIP라 하면……, 제가 떠올리는 그분 맞나요?”
“네, 맞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정리되면 알려드릴게요. 곧 대본도 보내드리겠습니다.”
대본?
나는 일단 알겠다고 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어쨌든 심장이 뛰는 맥박 소리가 귀에 까지 들릴 정도로 흥분되고 호흡이 가빠져왔다.
TV로만 봤던 대한민국의 1인자, 대통령이 날 만나고 싶어 한다.
모든 대기업들이 그런 방식으로 성장한 건 아니지만 대한민국의 손꼽히는 재벌 대기업 그룹들은 대부분 산업화 시대에 저마다 크든 작든 정부와의 커넥션으로 성장했다.
이제 막 성장하려고 하는 내 회사에도 그런 기회가 온 것 같았다.
프랑스 KCON 행사는 CJ E&M의 주관으로 유럽에서 처음으로 개최되는 대규모 한류 콘서트였다.
방탄소년단, 블락비, 샤이니, 아이오아이, F(X), 등등…. 당시 국내외에서 한류 붐을 주도하는 K-POP 대표 가수들의 종합 콘서트였다.
이 행사에 정부기관이 함께 했다.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산업교류재단, 농림축산 식품부, 한국관광공사, 한국콘텐츠진흥원, 한국무역협회 등등.
‘한류’와 연관된 정부 부처가 함께 하여 한국의 엔터테인먼트뿐만 아니라 문화, 한식, 뷰티, 벤처까지.
거의 전 분야에 걸쳐 유럽에 한국을 홍보하는 포괄적인 한류축제였다.
애스크컬쳐(AskCulture)는 창조경제 모델의 대표 사례로 한국의 문화 체험을 제공받거나 요청할 수 있는 IT 플랫폼 기업 자격으로 참가하게 되었다.
콘서트장인 프랑스 파리 아레나 호텔의 행사장에서 꽤 큰 부스를 제공받아 플랫폼을 홍보할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홍보할 기회?
정부의 특혜나 호의가 아니었다.
애초에 한국에 있는 한국인 현지 사람들과 한국 문화를 교류할 수 있는 우리 플랫폼 안에는 문화, 식품, 뷰티, 레저, 관광을 전부 포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온갖 문화 체험을 할 수 있는 우리의 플랫폼은 한류 축제의 ‘종합 백화점’ 역할에 최적화되어 있었다.
한국 정부에서 운영하는 통합 한국 문화 체험 플랫폼이라고 해도 어색할 게 없을 정도였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행사장을 찾아와 대화를 나눌 기업으로 애스크컬쳐가 결정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행사 당일, 프랑스 파리의 아레나 호텔 컨벤션 홀은 축제 분위기였다.
이미 행사장 밖에는 며칠 전부터 텐트를 치고 행사를 기다리는 한류 팬들의 줄이 끝도 없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전부 유럽 현지인들이었다. 타문화에 배타적이고 문화적 자긍심이 오만에 가까운 프랑스 파리에서 이런 풍경이라니. 신기할 따름이다.
한식을 알리는 K-Food 존(zone)에서는 CJ제일제당의 ‘비비고’ 브랜드 홍보관을 비롯해서 각종 한식과 농축산 특산품이 조리되고 있었다.
맛있는 냄새가 행사장 곳곳에 은은하게 퍼졌다. 자타공인 미식의 본고장인 프랑스 파리에서 한식을 이렇게 공격적으로 홍보하다니, 대담했다.
한식 외에도 한국의 VR 기술을 홍보하는 체험관, 한국 공예품들 전시관, 한국의 화장품과 의약품 홍보관까지.
가히 아레나 호텔 컨벤션은 한류 천국이었다.
애스크컬쳐(AskCulture)의 한국문화 체험 플랫폼 홍보관은 그 중심에 있었다.
홍보관의 부스 벽에는 카테고리 별로 한국의 문화체험 사진들을 빼곡하게 새겨두었고,
부스 중심에는 대형 모니터를 통해 홍보 영상과 웹 사이트 화면을 틀어 놓고 있었다.
CJ E&M 측의 안배로 당시 가장 핫 했던 걸 그룹인 ‘아이오아이’의 김세정, 청아, 정채연
이렇게 세 사람이 애스크컬쳐의 부스에 이벤트성으로 함께 해줬다. 수많은 한류 팬들이 구름같이 몰려들었다.
“창현아, 너 선글라스는 절대 벗지 마. 송중기 팬들한테 테러당할 수도 있어.” 내가 웃으며 말했다.
이창현 대리는 군복을 입고 있었다.
당시 전 세계적으로 히트한 한국 드라마인 <태양의 후예>의 송중기, 진구 배역을 코스프레한 것인데 반응이 꽤 좋았다.
그 외에 함께 있던 직원들은 드레스 한복을 입고 있었다.
걸그룹 아이오아이와 군복 입은 한국 남자, 전통미와 현대미가 조화를 이룬 드레스 한복을 입고 있는 한국 여성의 조합은
한국 문화에 우호적인 외국인들의 이목을 끌기 충분했다.
다른 부스처럼 맛있는 요리를 주는 것도 아니었고, VR 체험처럼 재미있는 것도 없었지만,
우리 부스에는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은 유럽 현지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일반 관람객의 입장이 시작되기 전에 만났다.
모든 부스의 행사 준비가 끝났을 때, 장내에 안내 방송이 울렸다.
한국과 프랑스의 VIP들이 방문할 예정이라 ‘테러 방지’를 위해 폭발물 점검을 한다고,
모든 인원들은 짐은 그대로 둔 채 행사장 밖으로 나가 있으라는 내용이었다.
30분 정도의 점검이 끝나고 다시 안으로 들어가자 얼마 안 되어
수많은 수행원에 둘러싸인 박근혜 전 대통령과 프랑스의 총리급 최고 공직자가 나란히 행사장으로 들어왔다.
행사장 바닥에는 미리 정해둔 그들의 동선을 표시한 테이프가 붙어있었다. 노란색 화살표 모양이었다.
마치 운전면허시험장의 장내 기능 시험 코스처럼, 그들은 정해진 화살표를 정해진 속도로 걷고 있었다.
나는 잔뜩 긴장하며 미리 준비되어있던 ‘대본’을 다시 한번 읽어보고 있었다.
대본에는 ‘자리에 함께 있던 모두가 박수를 치며 살짝 웃는다’라는 것까지 적혀 있었다.
마치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읽는 기분이었다. 그게 비극인지 희극인지는 모르겠지만.
(사진출처 : 뉴시스)
“안녕하세요.” 박근혜 前 대통령이 우리 부스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말했다.
그는 정확히 멈추기로 표시된 붉은색의 발자국 모양 테이프 위에 서 있었다.
“네, 안녕하세요….” 나는 꽤 떨며 대답했다.
그를 코앞에서 보게 된 첫 느낌은 생각보다 너무 왜소하고 표정에 생기가 없다는 것이다. 체구가 작고 왜소한 평범한 중년이었다.
“저희 기업의 핵심 서비스는 이런 겁니다. … 중략…”
나는 준비된 대본대로 말했다.
중간중간 그가 ‘예정된 질문’을 하고,
내가 다시 ‘정해둔 답’을 읊조리기를 반복하는 사이에 수많은 언론사의 플래시가 여기저기서 터지고 있었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마치 객석이 꽉 찬 무대에서 결말이 빤한 연극을 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재미없고 시시하고 따분한.
이런 생각이 들 때쯤에 그가 갑자기 대본에 없던 ‘애드리브’를 했다.
“정말 좋은 취지의 재미있는 사업 아이디어네요. 정부 입장에서는 말이죠.”
그때까지 생기 없이 말하던 그가 딱 한번 매서운 눈으로 눈빛을 흘리며 물었다.
“그런데, 기업은 이윤을 추구해야 하지 않아요? 이 플랫폼은 어떤 식으로 수익을 창출하게 되나요?”
대본에 없는 질문이다.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긴장감과 당혹감이 엄습했다. 모두의 시선이 한순간에 나에게 집중된 것만 같았다.
“아, 네, 그게… 저희는…” 나는 말을 끌며 머릿속으로 재빠르게 할 말을 정리하고는 겨우 입을 열었다.
“1차적으로 문화체험이 매칭 될 때마다 현지 주민과 방문자에게서 수수료를 받게 됩니다. 양쪽에서 각각 15%씩을요. 문화 체험 서비스는 유저를 모으기 위한 선제적 사업이고, 유저가 모이고 활발히 문화 체험이 진행되면 2차 콘텐츠를 제작해 그걸로 본격적인 수익을 창출하려 합니다. 이후 비즈니스 모델들도 준비해두었고요.” 내가 간신히 답했다.
“그렇군요. 말씀하신 계획들이 잘 이뤄져서 우리 문화도 더 널리 세상에 알려지고 기업도 성장하는 좋은 성과가 있길 바랄게요. 지켜보겠습니다.”
그가 다시 대본대로 말했다.
“네, 격려 감사합니다.”
나도 다시 대본대로 답했다.
그가 발걸음을 옮겨 행사장 밖으로 향하자 뒤에 있던 한 중년 남자가 수고 많았다며 자기 명함을 건네고 갔다.
뒤따라오던 다른 고위공직자가 다가와 방금 명함을 건넨 분이 무슨 말을 했냐고 물었다. 나는 “별말 없이 명함만 주고 갔다”라고 답했다.
“방금 그 사람이 이 정권의 이거입니다.”
고위공직자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말했다.
어쩌라는 건지.
나머지 행사는 특별한 일 없이 끝났다.
아니, 특별한 일이 하나 있긴 했다.
정장 재킷의 안 주머니에 있던 지갑이 사라진 것이다. 프랑스 경찰들이 테러방지를 위해 점검을 한다고 장내를 떠나 있으라고 했던 그 직후였다.
지갑에는 출장 경비로 인출해둔 현금이 1,500유로(한화로 약 200만 원) 정도 있었는데 다시 장내로 돌아와 보니 지갑 채로 없어졌다.
직원들한테 내 지갑 이야기는 하지 않고, 다들 잃어버린 것 없냐고 물었다. 다행히 다른 직원들은 분실물이 없는 모양이었다.
행사장을 정리한 후, 직원들과 CJ E&M에서 제공해준 관계자 전용 VIP 티켓을 들고 콘서트를 보러 갔다.
나는 방탄소년단의 무대만 보고 숙소로 돌아와 기절하듯 잠들었다.
다음날 국내 언론사들의 기사를 통해 대통령의 프랑스 방한과 KCON행사장 사진이 공개되었다.
(출처 : <정책브리핑>, <뉴스 1>에서 발췌)
여러 뉴스에 당시 대통령과 대담하고 있는 내 모습이 함께 실렸다.
며칠 뒤 나는 기사에 실려 있던 그와 함께 찍힌 사진을 휴대전화 메신저 프로필 사진으로 해두고
SNS에도 몇 장 올렸다.
결국 이런 것들이 화근이 되어 불과 얼마 뒤 ‘그 사건’이 터졌을 때, 나는 상당히 난처한 일들을 겪게 된다.
아무튼, 한국으로 돌아오고 한 달이 채 안되었을 때였다.
대통령과의 독대가 준 긴장과 흥분이 모두 가라앉을 무렵,
‘이 정권의 이거’라던 사람이 서울창조경제혁신센터에 입주한 벤처기업들 ‘격려’라는 명분으로 인큐베이팅 센터를 방문했다.
이번에도 역시 많은 기자들과 함께였다.
‘이거’는 우리 사무실로 찾아와 나에게 이것저것을 의례적으로 묻고, 그 격려라는 것을 하고 기자들 앞에서 나와 기념사진을 찍고 갔다.
이후로 몇몇 장관들도 우리 사무실을 다녀갔다. 그때마다 기자들을 대동했고,
나와 직원들은 출장이나 외근을 나가지도 못한 채 그 ‘격려’라는 것을 받기 위해 시간을 할애해야 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당시의 나는 그게 내가-내 사업이- 잘하고 있다는 신호로 착각하고 있었다.
대통령과 대통령 비서실의 실세와 장관들이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벤처기업이 되었다는 것은
이제 갓 서른이 된 젊은이에게 막연히 들뜨고 헛바람 잔뜩 불어있기 딱 좋은 일이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청와대에서 사람들이 오고, 장관/차관들이 내 사무실에 방문한다.
같이 사진을 찍자 하고 괜히 열심히 해달라며 어깨를 두드리고 간다.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평범한 학교에서 학업을 마치고 평범한 사업을 하던 나에게
'뭔가 대단한 뒷 배경이라도 생긴 것 같다'는 착각을 아주 제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한창 그렇게 붕 떠 있다가 한 순간에 나락으로 추락한 건 고작 반년 뒤였다.
‘국정농단 게이트 사건’이 터졌다.
당시 내가 만났던 대통령, 장관, 그리고 소위 정권의 실세라는 사람들이 구치소로 갔다.
덕분에, 애스크컬쳐와 나는 끝도 없는 감시와 의혹을 받았다.
몇몇 인터넷 언론에서는 취재랍시고 협박에 가까운 일들을 아무렇지 않게 벌였다.
그들이 보기에 '나'라는 사람이 그 정권과 뭔가 대단한 끈이라도 있다고 단단히 착각한 모양이었다.
기가 차고 어이가 없을 노릇이었지만 그들을 나무랄 일 만은 아니었다. 나 역시 내가 그런 사람이길 바랐던 건 사실이니깐.
이건 뒤에서 다시 얘기하자.
그 정권의 말로가 어떻게 되었는지를 떠나서, 사업의 대표로서 다시 같은 상황이 생긴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해봤다.
애초에 애플리케이션이 미완성인 상태였다.
아직 원하는 모든 기능들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상태가 아니었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 서비스의 유일한 타깃층도 아닌 프랑스 파리라는 곳에서 홍보를 한답시고 굳이 그 행사에 참여한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만약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절대로 하지 않을 선택이다.
그러니까, 해당 행사와 별로 연관이 없는 기업과 대표라면 애초에 그런 자리-사업에서 득이 될 게 전혀 없는 자리-에 초대받는다 해도 사양하는 게 정상이었다. 다들 그랬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우리 회사)가 잘나서 ‘선택’된 게 아니라, 가겠다는 사람이 없어서 ‘마지못해’ 우리한테까지 차례가 돌아왔던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극에 조연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순수하고 순진하고 멍청한.
2016년 6월 초, 프랑스 파리.
그곳에서 지갑을 잃어버렸다. 적지 않은 돈이 들어있던 지갑이었다.
그렇지만 그날 그 행사장에서 없어진 현금 200만 원보다 그리고 거기까지 가기 위해 지출한 비용과 시간보다
뭔가 더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고 왔다는 느낌을 여전히 지울 수가 없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