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의 실력 #7
누군가를 저주하려면 무덤을 두 개 파라.
이웃 섬나라의 속담
2016년 초겨울, 나는 ‘협박 전화’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해 늦가을에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이라는 사건이 터졌다.
뉴스에서는 ‘최순실’, ‘차은택’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사람들의 이름이 매일 거론되고 있었다.
처음에는 ‘뭐 별 일 아니겠지, 나와 전혀 무관한 뉴스들이네.’라고 생각했다.
‘문체부’라는 정부 부처의 이름이 뉴스에서 슬슬 거론되더니 점점 언급되는 빈도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그 해에는 '융합 한류 지원 사업'이라는 정부 프로젝트의 파트너로서
문체부를 비롯한 정부 부처, 기관과 함께 진행한 대형 프로젝트들이 많았다.
사무실에 묘한 긴장감과 불안감이 흘렀다.
촛불 시위가 시작됐다.
광화문 일대에 수많은 사람들이 ‘박근혜 탄핵’, ‘문체부 해체’ 같은 구호를 내뱉으며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출퇴근을 할 때면 촛불 시위에 나선 시민들의 틈에서 그들의 성난 함성을 들으며 지나쳐야만 했다.
업무 중에도 사무실 창문 너머로 그 함성들이 고스란히 들려오고 있었다.
그 거대한 사회적 분노가 응축되어 폭발하고 있는 현장,
그 한복판에서 그 분노를 여과 없이 계속 받아들이고 있자니, 죄지은 것도 없이 괜히 마음이 위축되었다.
나는 ‘그 사건’에 물리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처음부터 끝까지 한복판에 있었던 셈이다.
그날은 정말 이상한 오후였다.
아직 초겨울임에도 끔찍할 정도로 추웠고 미세먼지에 가려져 햇빛은 잿빛 먼지를 뚫지 못해 한낮인데도 사방이 어두웠다.
덩달아 기분도 우울해지는 그런 날이었다.
최순실, 차은택과 연관되어 문화체육관광부의 특혜를 받았다는 몇몇 업체들이 뉴스와 신문에 보도되고 있었다.
바로 그즈음 협박 전화가 시작됐다.
첫 협박 전화는 막내 직원이 받았다. 오후에 사무실로 걸려온 전화였다.
“아…… 저…… 저한테 말씀하셔도…… 저는 디자이너라… 그런 건 잘 몰라서……죄송합니다.……”
불과 몇 초의 짧은 통화에 막내는 잔뜩 겁에 질린 표정으로 울먹이고 있었다.
고등학교 3학년, 취업반이었던 막내는 생에 첫 직장으로 우리 회사를 택한 친구였다.
19살, 직원 중에 가장 어렸다. 아직 여리고 쉽게 상처받을 수 있는 나이였기에
모두들 그 친구를 매우 아끼면서 동시에 늘 어렵게 대하던 직원이다.
디자이너로서의 센스와 자질이 훌륭해서 이미 큰 프로젝트들을 성공적으로 마무리 짓고 있었다.
여러모로 회사의 마스코트이자 디자인 팀의 에이스였다.
그런 막내가 긴 머리를 축 늘어뜨리며 물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대표님, 대표님이 받아보셔야 될 것 같아요.……”
안 그래도 막내의 표정을 보자마자 느낌이 안 좋아 그 옆에 서 있던 참이었다.
나는 단단히 화가 나서 수화기를 건네받았다.
누군가 무심코 내 '역린'을 건드리고 있었다.
행여나 외부 사람이 내 사람에게 위해를 가하는 일이 생긴다면 나는 도무지 조금도 참지 못하고 극단적일 정도로 흥분했다.
‘어떤 자식이 우리 막내를 저렇게 겁에 질리게 한 거야. 감히.’
속으로 이를 갈며 전화를 받았다.
“누구세요.” 나는 적대감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응, 네가 대표니? 반갑다 야.”
30대 중반쯤의 목소리를 가진 여자가 비아냥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첫마디부터 반말이다. 목소리의 톤이 듣는 이의 신경을 묘하게 거스를 만큼 높았다.
지하철 플랫폼에서 전화를 받는지 수화기 너머로 열차 소리가 들렸다.
나는 사무실 인터넷 전화기를 들고 사무실 밖 복도로 나갔다.
이 전화기에는 녹음 기능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주머니에 있던 휴대전화를 꺼내 녹음 버튼을 누르고 수화기에 가까이 대며 말했다.
“네, 그렇습니다. 실례지만 누구시죠?”
“응, 내가 누군지는 네가 알 거 없고. 너는 그냥 내가 달라는 자료만 주면 돼. 알겠어?”
그 사람의 말투에서 강한 적의와 악감정이 느껴졌다.
누구지 대체, 왜 이렇게 나한테 화가 나 있는 걸까?
내가 누군가에게 이렇게까지 원한을 살 일을 벌였던가?
“자료?” 내가 물었다.
“너희 뉴욕 타임스 스퀘어에서 광고했잖아. 문체부랑 같이, 그 자료들 나한테 보내.”
“무슨 소리 하시는 거죠? 대체 어디서 전화 주신 거죠?”
“그건 네가 알 거 없다니깐. 너 ‘정유라’ 알지? 너도 걔처럼 되고 싶지 않으면 내가 시키는 대로 해.”
정유라…?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당연히 그 이름을 모를 수가 없다. 매일 같이 뉴스와 신문에 나오고 있었으니까.
도대체 그 이름이 왜 나와 엮여서 나오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나는 그 사람처럼 금수저도 아니고, 정부나 대기업으로부터 특혜라던가 후원이라는 걸 받아 본 적도 없었다.
그랬다면 이렇게 고생만 하고 살지 않았을 터였다.
아니, 그런 사람과 부모의 도움을 받을 수 없어 대학교 학비와 생활비 전액을 학자금 대출에 의존했어야 하는 사람을 나란히 엮는 것은 해도 너무한 거 아닌가?
괜히 부아가 치밀어 올랐지만 꾹 참고 말했다.
“당신, 무슨 헛소리하는지 모르겠는데,
본인이 누군지도 못 밝히는 사람과 더 할 말 없으니 이만 끊겠습니다.”
“야, 잠깐만… 야 이… 개….”
전화기 너머에서 그리 바람직하지 못한 단어들이 들려왔다.
나는 상대의 말을 더 듣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덩달아 한바탕 욕지거리를 하려다가 간신히 참았다.
본능적으로 이 인간은 그런 식으로 대해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분명히 ‘그 사람’도 녹취를 하고 있었을 거라는 직감도 있었다.
복도에서 통화를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가자 온 직원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무슨 일이에요?” 창현이가 직원을 대표해서 물었다.
“별 일 아닙니다. 그냥 미친 사람인가 봐요.”
나는 웃으며 직원들을 바라보고 말했다.
직원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하나같이 고개를 옆으로 살짝 갸웃했다.
그들 머리 위에 물음표가 떠 있는 것만 같았다.
가뜩이나 분위기가 안 좋을 때에 쓸데없는 이야기로 괜히 직원들을 동요케 할 순 없다. 사무실에는 냉랭한 침묵이 흘렀다.
막내 직원에게 잠시 나가서 커피 한잔도 하고 기분 전환 좀 하고 오라고 했다.
“아니에요, 지금 해야 될 일도 많고, 저 괜찮아요.”
애써 마음을 잡고 그냥 일하겠다는 말에, 그 어른인 척 애쓰려는 모습에, 가슴이 미여지고 마음이 짠했다.
괜찮으니 얼른 쉬다 오라고 떠밀다시피 막내에게 자유 시간을 줬다.
직원들이 각자의 모니터로 시선을 돌리고 어느 정도 분위기가 진정되자 창현이에게 다가가 조용히 말했다.
“이창현 대리, 우리 옥상 가서 바람이나 좀 쐬고 올까요?”
옥상에 올라가자 창현이가 물었다. “형, 아까 그 전화 뭐예요?”
휴대전화에 녹음된 그 여자와의 통화 내용을 들려줬다.
“정말 미친 인간이네요.” 침착한 성격의 창현이가 평소 쓰지 않는 강한 단어를 격양된 말투로 말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누굴까요?”
“음… 전혀 모르겠어. 기자인가 싶기도 하고.”
“근데 왜 하필 뉴욕 타임스 스퀘어 광고 가지고 그럴까요?”
“글쎄다. 모델 오디션이나 광고 아이디어 공모전에서 탈락한 사람이 이때다 싶어서 분풀이하는 건가…”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광고 아이디어와 모델 오디션 과정에서 불공정, 불합리한 일은 없었다.
최종 심사에서는 객관성 유지를 위해 외부 인사들을 심사위원으로 초청하기까지 했었고.
나는 한숨을 쉰 뒤 말을 이었다.
“일단, 한 번 지켜보자. 분명히 또 전화 올 테니깐. 너무 걱정 말고.”
나는 창현이의 등을 툭 하고 치며 말했다.
예상은 반만 맞았다.
‘그 사람’에게 나 또는 사무실로 직접 전화는 오지 않았다. 그 대신 내 주변 사람들에게 협박 전화를 시작한 것이다.
‘주변 사람’에 대한 기준도 상당히 어설펐다.
첫 책에 추천사를 써준 사람들 중 고위 공직자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이 그 타깃이었다.
인터넷에 내 이름만 검색하면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정보를 토대로 멋대로 내 주변 사람을 한정한 것이다.
친분의 두터움을 떠나서 한때 나의 도전에 큰 도움과 격려를 주셨던 분들에게
이런 식으로 폐를 끼치는 일은 정말이지 속상했다.
책에 추천사를 써주셨던 분들에게서 돌아가며 연락이 왔다.
“웬 이상한 여자에게서 이러 이런 전화를 받았는데 무슨 일이냐”
걱정과 우려가 섞인 말을 전해주셨다.
또 다른 어떤 분은 ‘그 사람’에게 걸려온 통화 내용을 전달하며 자초지종을 요구했다.
“자네가 정유라 같은 사람이라는 거 알고 있냐고,
자네에 대해 어떤 이야기라도 본인한테 해주지 않으면
나에게도 피해가 갈 거라고 잘 처신하라는데…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
나는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뒤로 있는 힘껏 젖혔다가 차분하게 답했다.
"염려 끼쳐서 죄송합니다. 잘 해결 후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뒤 전화를 끊었다.
책에 추천사를 써주셨던 모교의 교수님께도 전화가 왔다.
교수님께서는 “어떤 이상한 여자에게 교수 연구실로 수차례 전화가 왔는데 너에 대해서 아는 대로 다 실토하라는 등,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황당한 말들을 하기에 영 마음이 쓰여 걱정돼 전화해봤다”라고 하셨다.
괜히 나 때문에 겪지 않아야 될 일을 겪게 하는 것 같아 송구했다. 분노는 그다음이었다.
감정적으로 대응할 일이 아니었다.
법조계에 있는 사람을 소개받아 정식으로 법률 상담을 받았다.
‘그 사람’의 행위가 분명히 위법이라는 것을 확인한 후,
법적으로 대응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생각을 정리했다.
이 사람 도대체 누굴까, 도무지 나한테 왜 이러는 걸까?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30대 중반 전후의 여성과 일로서나 사생활로서나 당최 연결 고리를 찾을 수가 없었다.
범위를 넓혀 친구나 주변 지인을 돌아봐도 짐작 가는 사람이 없었다.
결국 아무런 실마리도 잡지 못한 채, 고민은 원점에서 헛바퀴만 돌뿐이었다.
나는 ‘그 사람’의 뒤틀림을 교정할 자신도 없었고
거기에 익숙해질 수도 없었기에 이제는 정면으로 맞서 응수할 수밖에 없었다.
사무실의 인터넷 전화기에 남아있던 ‘그 사람’의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어머, 웬일이야? 먼저 전화를 하고? 이제 생각이 바뀌었니?”
‘그 사람’이 바로 전화를 받았다. 어이없을 정도로 밝은 목소리였다.
자기가 지금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지 모르는 것 같았다.
“이 통화 내용 녹음하겠습니다.”
나는 일부러 녹취하겠다고 ‘그 사람’에게 알려줌으로써 이제 정식으로 대응하겠다는 뜻을 비쳤다.
“당신, 본인이 누군지 밝히지도 못하면서 내 주변 분들한테까지 협박 전화 걸고 욕설을 하고 있던데.
참는 것도 여기까지 입니다. 앞으로 한 번만 더 이런 식으로 주변 분들에게 무례한 연락을 한다면
그땐 법적으로 단호하게 대응하겠습니다. 분명히 말씀드렸습니다.”
“…….”
‘그 사람’은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이제야 실감을 하는 걸까,
자기가 광기로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 건지.
나는 그대로 전화를 끊었다. 모두 진심이었다.
정말이지 진즉에 협박, 허위사실 유포,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하든, 찾아가 싸우든 했을 터였지만
꾹 참고 또 참아서 최후통첩으로 대신한 것이다.
그 뒤로 ‘그 사람’에게 다시 연락이 오는 일은 없었다.
지난 몇 주간했던 짓을 봐서는 결국 경찰서나 법정까지 갈 줄 알았건만,
일은 그렇게 최후통첩 한 번으로 허무하리만치 쉽게 일단락되었다.
***
6년여 시간이 흐른 최근 그때를 떠올리다가 그래서 ‘그 사람’ 도대체 뭐하는 사람일까 문득 궁금해졌다.
‘그 사람’의 당시 휴대전화 번호를 구글에서 검색해봤다.
지금은 경기도 지역에서 1인 예술·콘텐츠·게임 관련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것 같았다.
당장 전화를 걸어 “당신 도대체 그때 무슨 생각으로 나한테 그랬던 거냐”라고. “늦었지만 사과할 생각은 없냐”라고, 묻고 싶었지만 관뒀다.
경험 상 사람은 쉽게 안 변한다.
그렇게 막무가내에 비이성적으로 행동하는 사람과는 그저 안 엮이는 게 가장 상책이다.
누군가를 물에 빠트리려 하면서 내 옷은 젖지 않으려는 것은 욕심이니까.
부디 ‘그 사람’이 하고 있는 사업이 앞으로 잘 풀려서 마음의 여유를 찾길 바랄 뿐이었다.
진심이다.
나는 ‘그 사람’의 전화번호를 영구히 삭제했다.
진짜 고난은 그런 어설픈 협박 전화 따위가 아니었다. 그다음이었다.
그해 겨울은 유별나게 눈이 많이 내렸고, 유달리 추웠으며, 유난히 외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