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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운 Dec 28. 2024

59살, 9살, 우리는 피아노 학원 친구

네가 나의 슬픔이라 기쁘다  :  <두근두근 내 인생> 김애란



“엄마, 여기 '시랑 도', '미랑 파', 나비 같지 않아?”

“응? 오, 정말 그러네. 나비 같네.”

“그렇지? 피아노 학원에서 친구랑 같이 ‘나비야’ 치다가 발견했어. 흰나비처럼 생겼지?”

“아~ 그렇구나. 정말 흰나비 같다.”     




딸은 여덟 살 무렵부터 피아노를 배웠다. 함께 놀던 친구를 따라 얼떨결에 학원에 다녔다. 재능이나 흥미는 없었는지 다른 아이들보다 배우는 속도가 느렸다. 친정 조카가 물려준 피아노가 집에 있었지만 거실에 놓인 책꽂이와 함께 가구 노릇을 했다.     

 

우리는 산 가까이 위치한 아파트 9층에 살았다. 지대가 높아 주방 쪽 창으로 동네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읍 단위의 작은 동네답게 크기도 방향도 각각인 건물에는 다양한 간판들이 아무렇게나 단 명찰처럼 걸려 있었다. 어느 새벽, 때로 잠에서 깨어 창밖을 보면 꺼지지 않은 간판 불빛이 가물거렸다. 저 간판에는 어떤 망설임과 결단이, 얼마큼의 불안과 기대가 걸려 있을까.


우리 단지와 옆 단지를 가르는 2차선 도로 내리막길 끝에 아이가 다니는 피아노 학원이 보였다. 길 양쪽으로 줄지어 선 은행나무의 잎이 노랗게 익어 무성할 때는 길을 따라 총총총 뛰어가는 아이 다리만 겨우 나왔다.    



 


    

그녀를 알게 된 것은 딸이 아홉 살이었을 때, 가을과 겨울 사이의 ‘사이 계절’이었다. 아이와 나는 겨울과 봄 사이, 여름과 가을 사이, 가을과 겨울 사이를 ‘사이 계절’이라 불렀다. 우리는 그중에서도 가을과 겨울 사이의 팽팽한 차가움과 깊고 쨍한 파란 하늘을 좋아했다. 그해도 차고 맑은 날이 이어지고 있었다. 반은 매달리고 반은 떨어진 노란 은행잎 사이로 연보라색 경량 패딩을 입은 아이가 토닥토닥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집에 온 아이 손에는 반쯤 먹은 붕어빵이 들려 있었다.

    

"선생님이 사주셨어?"

"아니, 친구가 사줬어."

"친구가 돈이 있어?"

"응 엄청 많아. 주머니랑 지갑에 막 돈이 있어."

"그래? 벌써 용돈을 받나 보네."

"그런가?"     


그 친구를 만나면 뭔가 사줘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아이 볼에 묻은 까만 팥을 떼어주었다. 아이가 남은 붕어빵을 다 먹고 만화책을 보며 뒹구는 동안, 나는 다음 주 수업을 위해 읽고 있던 책을 다시 펼쳤다.


 



                                 

교과서에 수록된 작품은 동명 소설인 김애란의 '두근두근 내 인생'을 각색한 시나리오이다. 선천적 조로증을 앓고 있는 아이와 그 부모의 사랑이 작품의 주제이다. 주인공인 아름이 역에는 아역 배우인 조성목, 엄마 ‘미라’는 송혜교, 아빠 ‘대수’는 강동원이다. 와, 엄마가 송혜교, 아빠가 강동원이라니.          


 소설과 시나리오의 서사 맥락은 동일하다. 작품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대수와 미라는 17살에 ‘나(아름)’를 낳고 ‘나’의 외할아버지의 도움으로 소박한 행복을 느끼며 살아간다. 조로증에 걸린 '나'는 엄청난 치료비 때문에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한다. 그러던 중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되면서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병원비를 마련하여 입원한다. 방송 후 ‘나’는 자신과 비슷한 아픔을 겪고 있는 열일곱 동갑내기 소녀 '서하'와 전자 우편을 주고받으며 사춘기 소년의 설렘을 느낀다. 하지만 '서하'는 작가 지망생이 꾸며낸 가상의 소녀임이 밝혀지고, 이 사실을 알게 된 '나'는 큰 충격을 받는다. ‘나’는 점차 시력을 잃게 되는데 어느 날 병실에 낯선 사람이 찾아와 ‘나’에게 미안함을 전한다. ‘나’는 그 사람을 ‘서하’라고 생각하며 그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한다. 이후 '나'는 중환자실로 옮겨지는데 그동안 자신이 쓴 글을 인쇄해 달라고 한 후 부모님에게 보고 싶을 거란 말을 하며 눈을 감는다.

          

 


내신 시험이나 대학수학능력시험에는 원작 소설을 시나리오로 재구성할 때 연출자가 어떤 요소를 고려지는지가 주로 출제된다. 학생들이 서사 갈래와 극 갈래 각각의 특성을 알고 있는지, 두 갈래의 차이를 비교할 수 있는지 점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교과서에는 시나리오가 실려 있지만, 수능에는 소설이 출제될 확률이 더 높다. 그래서 아이들이 알아 두면 도움이 될 만한 부분을 찾으려고 김애란의 소설 '두근두근 내 인생'을 읽고 었다.


        

  

"엄마."     


열 장 남짓 읽었을 때 아이가 불렀다.

아이는 어느새 평소와 달리 피아노 연습을 하는 중이었다.     


"엄마, 피아노 배우는 것도 괜찮은 것 같아."

“오~, 그런 생각이 들었어?”

"응. 엄마, 내 친구는 손가락 8개로 쳐. 다쳐서 두 개가 잘 안 움직인대."

"정말? 와 대단하다."

"그렇지? 아직 나보다는 못 쳐. 근데 내가 오늘 이론 공부하는 거 조금 도와줬어."

"그래?"

"응, 내가 이론 공부 어떻게 하는 건지 알려줬어."

"배운 지 얼마 안 되었나 보네. 잘했네."

"저번에 월요일에 처음 왔어. 도와줘서 고맙다고 붕어빵 사준 거야."

"그랬구나, 친해졌어?"

"응, 애들이랑 다 친해졌는데, 나랑 제일 친해. 재미있는 얘기도 엄청 많이 알아."

“그렇구나. 좋겠네.”

“엄마, 디가 이십 개면 뭔지 알아?”

“응? 알파벳 D말이야? 음, 디이십? 아니면 이십디?”

“히히히, 스무디야.

“푸하하하, 웃기다.”

“그렇지? 근데 애들이 안 웃어서, 나도 안 웃으려고 했는데, 엄마랑 먹었던 거 생각나서 못 참았어.”               


아이가 말을 멈추고 피아노에 집중하는 틈을 타서 슬쩍 대화에서 빠져나왔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열일곱에 나를 가졌다.

올해 나는 열일곱이 되었다.

내가 열여덟이 될지, 열아홉이 될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런 건 우리가 정하는 게 아니다.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건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뿐이다.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란다.

그리고 나는 무럭무럭 늙는다.

누군가의 한 시간이 내겐 하루와 같고

다른 이의 한 달이 일 년쯤 된다.

이제 나는 아버지보다 늙어버렸다.     

아버지는 자기가 여든 살이 됐을 때의 얼굴을 내게서 본다.

나는 내가 서른넷이 됐을 때의 얼굴을 아버지에게서 본다.

오지 않은 미래와 겪지 못한 과거가 마주 본다.

그리고 서로에게 묻는다.

열일곱은 부모가 되기에 적당한 나이인가 그렇지 않은가.

서른넷은 자식을 잃기에 적당한 나이인가 그렇지 않은가.     


아버지가 묻는다.

다시 태어난다면 무엇이 되고 싶으냐고.

나는 큰소리로 답한다.

아버지, 나는 아버지가 되고 싶어요.

아버지가 묻는다.

더 나은 것이 많은데, 왜 당신이냐고.

나는 수줍어 조그맣게 말한다.

아버지, 나는 아버지로 태어나, 나를 낳은 뒤

아버지의 마음을 알고 싶어요.

아버지가 운다.     


이것은 가장 어린 부모와 가장 늙은 자식의 이야기다.          



 "두근두근..... 두근두근..... 두근두근....."     


'엄마..... 나 자꾸 가슴이 떨려요..... 가슴이 아프도록 뛰어요...... 숨이 넘어갈 것 같은데, 이러다 죽을 것만 같은데...... 도무지 멈출 수가 없어요.'

'아가야...... 나도, 나도 그래, 가슴이 자꾸 뛰어. 가슴이 저리도록 뛰는데 멈출 수가 없어.....          





이 소설은 아름이의 시점으로 서술된다. 엄마 뱃속에 아름이가 처음 생겼을 때부터 부모에게 보고 싶을 거라는 말을 남기고 생을 마감할 때까지, 아름이가 경험하고, 느끼고, 생각한 삶에 대한 서사이다.


아름이는 엄마의 뱃속에서 '두근두근... 두근두근...', 엄마의 소리일 수도, 자기의 소리일 수도 있는 심장이 뛰는 소리를 들으며 생을 시작한다.


나는 작가가 작품을 서술한 방식에 대해 학생들이 공부해 두면 좋을 만한 것들을 메모했다.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서술하되, 대수나 미라가 아닌 아름의 시점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지, 그래서 독자는 어떻게 받아들이게 되는지 학생들과 이야기해 보면 좋을 것 같았다.


언제 떠날지 모르는 자식을 키우는 부모의 입장에서 서술했다면 어땠을까.


대수와 미라는 어린 나이에 부모가 되었지만, 부모가 되면서 어른이 된다. 대수와 미라가 부모로서 성장하는 과정, ‘아름’에 대한 부모의 사랑, 아이를 보내는 부모의 슬픔도 아름마음으로 독자에게 전달된다. 그래서 독자는 아름이 느끼는 부모의 깊은 사랑과, 그런 부모를 ‘아이처럼’ 투명하게 사랑하는 아름에게 공감하게 된다.         

 



아름이는 서하에게 쓰는 편지라며 아버지에게 자신의 말을 적어 달라 한다. 아버지는 아름이가 여전히 서하를 불치병에 걸린 소녀로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받아 적는다. 아름이는 중환자실에 있는 내내 정성스럽게 만지작거린 말을 아버지에게 남긴다.     

 


‘……어릴 때 나는 까꿍놀이라는 걸 좋아했대. 아버지가 문 뒤에서 ’‘까꿍!’하고 나타나면 까르르 웃고, 감쪽같이 사라진 뒤 다시 ‘까꿍!’하고 나타나면 더 크게 또 웃었다나 봐. 그런데 어느 책에서 보니까, 그건 아이가 눈에 보이지 않는 사물도 사라지지 않는다는 기억을 저장하는 거라더라. 그런 걸 배워야 알 수 있다니. 그렇게 작은 바보들이 어떻게 나중에 기술자도 되고 학자도 되는지 모르겠어. 나는 처음부터 내가 나인 줄 알았는데, 내가 나이기까지 대체 얼마나 많은 손을 타야 했던 걸까. 내가 잠든 새 부모님이 하신 일들을 생각하면 가끔 놀라워.     


…… 오늘은 네게 꼭 할 말이 있어 편지를 써. 어쩌면 앞으로 네게 메일을 못 보내게 될지도 몰라. 며칠 전 나도 중환자실에 들어오게 됐거든. 그렇지만 다시 나갈 때를 대비해 이곳에서 나, 항상, 네게 쓸 편지를 궁리해두고 있을게. 그리고 이곳을 벗어나면 제일 먼저 너에게 소식을 전할게. 그러니 당분간 내가 네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해도, ‘까꿍’하고 짓궂게 사라진다 해도, 어릴 때 우리가 애써 배운 것들을 잊지 말아 줄래? 그사이 나는 네게 들려줄 얘기들을 계속 모아두고 있을게. 그리고 언제고 너의 행운을 빌게. 그럼 또 봐. 안녕.’     


아버지는 내 말을 받아 적는 사이, 거의 한마디도 안 하셨다. 하지만 나는 어느 순간 아버지가 울고 있다는 걸 알았다.                                                 






"엄마, 근데 그 친구는 엄마가 없대. 떠났대."

"뭐? 정말? 저런."     


아직 죽음에 대한 개념이 없는 딸은 사람이 죽는 것을 어디론가 떠난다고 생각했다. 세상에, 9살이면 엄마 손이 한창 필요할 때인데, 나는 어린아이에게 엄마가 없다는 말만으로도 코끝이 찡하고 눈이 시렸다. 아이를 낳은 후 마음이 물렁해지기도 했지만, 엄마와 아이의 이야기에는 스치는 풍문에도 지나치게 감정이입이 되곤 했다.          


"어릴 때 엄마가‘나비야’ 불러줬는데, 그래서 지금 ‘나비야’가 제일 좋대"

"아~  ‘나비야’ 같이 친 친구구나."

"피아노 소리가 엄마 목소리 같아서 피아노 치면 행복하대. 나는 엄마도 있고, 원래 행복한데...... 엄마, 사실 전에는 피아노 치기 싫었는데, 지금은 조금 좋아졌어."

“그랬구나, 다행이네.”          


동네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노는 소리가 들렸다. 딸이 창밖을 내다보더니 아는 얼굴이 있는지 나가겠다고 했다. 쌀쌀하긴 해도 뛰어놀기 좋은 날씨라서 해가 사라지기 전에 들어와야 한다는 당부를 하고 내보냈다. 어두워지려면 두 시간 정도 남았으니 그 정도면 다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아이들이 관심을 보일 만한 부분, 인상적인 표현이 있는 부분, 주제가 잘 드러나는 부분에 붙임 쪽지를 붙이고 메모했다.      





               

"그런데 나이를 먹으면 있잖니, 자꾸 슬픈 노래가 좋아진다? 그리고 세상에서 제일 슬픈 노래는 술 먹고 듣는 노래야. 그러니까 너도 어른이 되면 발라드는 무조건 술 마시고 들어라, 알았지?"

"네, 아빠."

나는 얼마 안 남은 이를 드러내며 상긋 웃었다.

"아빠."

"엉?"

"지금 슬퍼요?"

"응."

"나 때문에 그래요?"

"응."

"제가 뭘 해드리면 좋을까요?"

아버지가 멀뚱 나를 쳐다봤다. 그러곤 뭔가 고민하다 차분하게 답했다.

"네가 뭘 해야 좋을지 나도 모르지만, 네가 하지 말아야 할 것은 좀 알지.

"그게 뭔데요?"

"미안해하지 않는 거야."

"왜요?"

"사람이 누군가를 위해 슬퍼할 수 있다는 건, "

"네."

"흔치 않은 일이니까......"

"네가 나의 슬픔이라 기쁘다, 나는."

"........."

"그러니까 너는, "

"네, 아빠."

"자라서 꼭 누군가의 슬픔이 되렴."

"........."

"그리고 마음이 아플 땐 반드시 아이처럼 울어라."

"아빠?"

"응?"

"전 이미 아이인걸요."

"그래, 그렇지......"  


             


‘네가 나의 슬픔이라 기쁘다.’라는 문장에 형광펜으로 줄을 긋고 한참 생각했다.  ‘네가 나의 슬픔이라 기쁘다.’ '네가 나의 슬픔이라 기쁘다.'라...... 대수 말처럼 누군가를 위해 슬퍼할 수 있다는 건 흔하지 않은 일이다. 슬퍼한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것이므로.


가물어가는 의식 속에서 아름이는 엄마인 ‘미라’에게 묻는다. 무섭지 않았냐고, 자신이 병들어서가 아니라, 그런 자신을 사랑하지 못할까 봐 두렵지 않았냐고. 미라 쪽에서는 아무 말도 들리지 않는다. 아름이는 엄마가 울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빠”

“응?”

“그리고 엄마.”

“그래.”

그러곤 남아 있는 힘을 가까스로 짜내 말했다.

“보고 싶을 거예요.”         



          




제법 쌀쌀한 날씨인데도 아이가 벗어 놓은 윗옷이 축축했다. 엄마가 떠났다는 친구가 생각났는지 말갛게 씻고 나온 아이가 식탁 의자에 앉으면서 물었다.    

 

"엄마, 엄마는 외할아버지가 떠나셨을 때 어땠어?"          


"음...... 처음에는 많이 슬펐지. 외할아버지가 늘 힘들게 일하시고, 외할머니랑 사이도 안 좋아 보여서 많이 불행하게 살다 돌아가신 것 같아서 슬펐어. 그런데 지인이가 세상에 나오고, 지인이랑 같이 시간을 보내면서, '아~ 이런 게 행복한 거구나'를 알았지. 오늘 좀 힘이 들든, 안 좋은 일이 있든,  지인이가 있어서 행복한 거는 변하지 않더라고. 엄마가 어릴 때, 이모랑 엄마랑 삼촌이랑 외할아버지 등에 올라타기도 하고 재미있게 논 기억도 있는데, 그때 외할아버지가 참 행복하셨겠구나. 이런 생각을 하니까 괜찮아졌어.”     


"아~~ 그렇구나.”     


아이는 자기를 낳아서 행복하다는 대목에서 소복한 볼미소를 지었다. 혼자 두 발 자전거 타기에 성공했을 때보다도 뿌듯한 얼굴이었다.     






"사람들은 왜 아이를 만들까"

"자기가 기억하지 못하는 생을 다시 살고 싶어서."


그렇게 써놓고 보니 정말 그런 것 같았다. 누구도 본인의 어린 시절을 또렷하게 기억하지는 못하니까, 특히 서너 살 이전의 경험은 온전히 복원될 수 없는 거니까, 자식을 통해 그걸 보는 거다. 그 시간을 다시 겪는 거다. 아, 내가 젖을 물었구나. 아, 나는 이맘때 목을 가눴구나. 아, 내가 저런 눈으로 엄마를 봤구나, 하고. 자기가 보지 못한 자기를 다시 보는 것. 부모가 됨으로써 한번 더 자식이 되는 것. 사람들이 자식을 낳는 이유는 그 때문이지 않을까? 그러면 세 살 무렵부터 늙기 시작한 아기를 가진 우리 부모님은 나를 통해 무엇을 보았을까..... 곧이어 나는 다른 문제에 봉착했다.


'하느님은 왜 나를 만드셨을까.'

불행히 그 해답은 아직 찾지 못했다.




아름이가 부모에게 남긴 소설의 제목은 '두근두근 그 여름'이다. 미라와 대수가 만나 초록으로 무성한 사랑을 나누는 이야기이다. 그 여름, 어디로 흐를지 모르는 세 명의 인생이 시작된다. 아름이의 소설은 '하느님은 왜 나를 만드셨을까'라는 질문에 아름이가 찾은 답이자 김애란 작가의 소설 '두근두근 내 인생'의 완성이다. 하지만 십 대인 학생들과 함께 읽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읽어보고 싶도록 어떤 내용인지만 넌지시 언급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틀 뒤, 딸은 이제 막 편의점에서 팔기 시작한 호빵을 두 손으로 들고 왔다. 친구가 이번에는 학원 친구들 모두에게 사주었다고 .   

  

"어떻게 모두한테 사줘?"

"돈이 많으니까 그렇지."

"어떻게 아이가 돈이 그렇게 많아?"

"아이 아닌데, 그리고 돈 많아. 차병원 의사래"

"응? 아이 아니라고? 차병원 의사?"

", 아이 아닌데. 엄마보다 흰머리도 많은데."

"엥? 그럼 어른이야? 친구라며"

"응, 친구야. 나랑 나이도 같다고 했어, 나는 9살, 친구도 앞 숫자 빼면 9살이니까 친구래, 나한테 먼저 친구 하자고 그랬어."     


어른이라는 말에 '그러셨어'라고 고쳐 주려고 입을 떼려는데, 아이가 이어 말했다.     


"엄마, 피아노는 내가 선배라는데, 선배가 뭐야?"

                        





다음 날 피아노 학원에 교육비를 결제하러 가서야 아이가 했던 말의 조각들을 맞출 수 있었다. 아이의 친구는 59세의 여자 분이었다. 자기 나이에도 피아노를 배울 수 있느냐며 수줍게 찾아왔더란다. 우리 동네 큰길가에 있는 '정비 기능공 남0선 정비소’의 사장님이었다. 그러니 아이 말대로 자동'차' 병원 의사였다. 우리 집에서도 흐릿하게 간판의 일부가 보이는 곳이었. 원장 선생님을 통해 들은 그녀의 이야기는 이러했다.      


          

가을이 시작될 무렵 수녀님 두 분이 그녀가 일하는 곳에 찾아왔다.  그리고 그녀의 엄마 이야기를 했다. 혹시 자신에게도 부모나 형제자매가 있을까 하는 마음에 아들의 도움으로 DNA등록을  둔지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서였다.


         

그녀의 엄마는 전쟁으로 부모를 잃고 부산에 있는 수녀원이 운영하던 고아원에서 자랐다. 고된 삶이지만 다정하고 성실 남자를 만나서 가정을 꾸렸고 아이를 낳았다.


 아홉 어린 엄마와 스물 다섯의 젊은 아빠는 오래된 주택 문간방에 세 들어 살았다. 몽글몽글한 아기의 사랑스러움과 생명이 주는 경이로움에 그들은 매일매일 눈이 부셨다. 마당에 있는 커다란 은행나무가 아기의 뒤집기와 배밀이를 창밖에서 지켜봤다.     


아빠는 밤낮 없이 일했다. 새벽에는 신문을 배달하고, 낮에는 공장에 갔다. 조금 더 잘 살아보겠다고, 철야 작업을 하지 않는 밤에는 야학에 나가 공부했다. 엄마는 아기를 업고 주인집 살림 품을 팔았다. 그 집에는 교회나 성당에서만 보던 풍금이 있었다. 일곱 살, 다섯 살 여자 아이들이 풍금을 치면서 '나비야, 나비야, 이리 날아 오너라'를 불렀다. 엄마는 아기를 업고 빨래를 널면서, 마당에 떨어진 은행잎을 쓸면서  흥얼흥얼 따라 불렀다.


 '나비야 나비야 이리 날아 오너라, 노랑나비 흰나비 춤을 추며 오너라.' 엄마 등에 한쪽 뺨을 대고 아기는 환한 빛과 풍금소리 사이로 날아다니는 나비를 보았다. 엄마의 노랫소리와 심장 소리, 노랑나비 흰나비가 아기의 잠 속으로 쏟아졌다. 하늘색 하얀색 노란색 빛이 엄마와 아기를 동그랗게 감쌌다.

 

공장에서 사람들이 아빠의 부고를 가지고 왔다. 사고였다. 엄마는 아기와 살기 위해 다시 수녀원으로 갔다. 엄마를 딱해하는 사람들이 한 마디 두 마디 엄마와 아기의 인생에 말을 얹기 시작했다. 아기를 더 좋은 곳으로 보내야 한다고. 아이가 없는 부유한 부부를 알고 있다는 사람도 나섰다. 결국 아기는 엄마가 없는 곳에서 걷고, 뛰고, 나이를 먹었다.                     




수녀님을 따라 들어간 병실은 환했다. 엄마는 잠들어 있었다. 하얗고 마른 얼굴에 주름이 가득했지만 고운 얼굴이었다.


엄마가 깨어났다. 여든에 가까운 엄마는 59살 아기의 손을 잡고

세상에 태어나 숨을, 처음 쉬는 사람처럼 그렇게, 푸후우 푸후우 숨만 내쉬었다고 한다.

엄마는 가슴에 꼭 안고 있던 나비를 놓아주었다.      



엄마가 떠나고 그녀는 피아노 앞에 앉았다.

나비야 나비야 이리 날아 오너라     


우리 엄마 마음이 어땠을꼬, 우리 엄마 마음이 어땠을꼬.     


세상을 많이 산 아기는 어린 엄마가 가여워서 푸우푸우 숨을 내쉬었다.                              





그녀를 데려간 부부의 형편이 어려워지자 그녀는 수원에 있는 보육시설에 보내졌다고 한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남편을 따라 정비 일을 배우다 손가락 두 개를 잃기도 했다. 남편이 먼저 떠나고 밤이 무거워 새벽에 깨기도 많이 깼다. 잠든 아이 곁에서 크고 깊은 숨을 쉬며 억척같이 살았다. 그리고 자기 이름을 내세운 간판을 단 정비소 사장님이 되었다.



“원장님. 나는 진짜 원망한 적 없어요. 날 버렸을 리가 없다는 걸, 내가 아주 철썩같이 믿었어요. 아무 기억도 안 나는데, 엄마 생각하면 세상에, 그렇게 따뜻할 수가 없어. 그냥  하얗고 따뜻해요. 온 세상이 그냥 하얀데 노란색 나뭇잎인지 나비인지가 쏟아지고 날고, 이게 꿈인지 뭔지. 내가요, 내가 참, 살면서 숨이 턱턱 막힐 때마다 그 장면만 수천 번, 수만 번 떠올리면서 살았어요.”                    







나는 그렇게 딸의 친구를 알게 되었다. 피아노 학원에서 나와 은행나무 길을 따라 걸었다. 은행잎은 노란색보다는 흰빛에 가까웠다. 얼마 남지 않은 잎들이 ‘우리 엄마 마음이 어땠을꼬’ 하며 내려앉았다. 겨울 초입에 다가서는 바람이 땅에 떨어진 나뭇잎 둘레를 동들 동글 감쌌다. 나는 숨이 차서, 그날 따라 집으로 뻗은 오르막이 너무 가팔라서, 집에 가는 내내 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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