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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인 Jan 25. 2024

내가 선택하는 인생

《파이이야기》-얀 마텔


  얀 마텔은 1963년에 태어났고 캐나다인이다.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캐나다, 알래스카, 프랑스, 멕시코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성인이 된 후 이란, 터키, 인도 등지를 여행한다. 이 책 《파이 이야기》도 인도를 여행하면서 쓰게 된다. 1993년에 데뷔했고, 2001년에 《파이 이야기》를 출간했는데 2002년에 맨부커상을 수상했다. 이후 41개국에서 출간되고 부커상 사상 최대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2013년에 이안 감독이 <라이프 오브 파이>로 영화화해서 아카데미상 4개 부문을 석권했다. 얀 마텔은 지난 6월, 서울에서 열린 국제도서전에 참석차 방한했다. 그때 한 인터뷰에서 내년에 발간 예정인 차기작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는데, 가제는 《선 오브 노바디(Son of Nobody)》이고 트로이 전쟁을 소재로 한 것이란다.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에서는 왕이나 귀족이 발언하지만 그의 작품에서는 평민 캐릭터가 이야기를 전개한다고 한다. 기대된다.

  《파이 이야기》는 인도 소년 파이가 망망대해 태평양을 호랑이와 함께 건넌 이야기이다. 파이는 인도에서 동물원을 운영하는 부모님과 형과 함께 사는데, 그저 신을 사랑하고 싶은 마음으로 힌두교, 기독교, 이슬람교를 모두 숭배한다. 실제로야 배타적이고 유일신인 기독교나 이슬람교를 믿으면서 다신교인 힌두교를 숭배할 수는 없겠지만 파이에게는 신의 존재 자체가 최고의 보상일 뿐이다. 16세가 되던 해, 가족은 캐나다로 이주하기로 하고 태평양을 건너는 배에 오른다. 그러나 태평양 한가운데서 배가 침몰한다. 파이는 가족을 모두 잃은 채 가까스로 구명보트에 올라타지만, 거기에는 거대한 벵골 호랑이 리처드 파커가 있다. 절망과 좌절, 슬픔, 고통, 두려움 속에서 파이는 포기하지 않고 희망을 잃지 않는다. 비슈누신, 알라신, 예수님, 성모님을 외치며 기도를 한다. “난 죽지 않아. 죽음을 거부할 거야... 아무리 힘들어도 필요하다면 뭐든 할 테야. 그래, 신이 나와 함께 하는 한 난 죽지 않아. 아멘.”

  파이는 생존 계획을 세우는데 계획 6은 기다리는 게임이다. 일이 벌어지게 내버려 두는 것, 즉 가차 없는 자연의 법칙, 시간이 흐르고 축적된 자원이 고갈되는 것을 기다리는 것이다. 어찌 보면 포기한 것도 같지만 파이는 신의 손길을 믿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공포를 일으킨 장본인인 호랑이 리처드 파커가 오히려 고마운 존재가 된다. 그가 죽으면 절망뿐인 채로 혼자 남겨질 테고 절망은 호랑이보다 훨씬 무서운 것이니까. 오히려 호랑이 때문에 비극적인 상황과 가족에 대해 생각할 새도 없이, 살고자 하는 의지를 갖게 된다. 그래서 계획 7이 생겨나는데, 그를 계속 살려두라 이다. 이제 동물원의 서커스라 여기고 그를 길들일 계획을 세운다. "예상대로 풀리지 않는 세상 일을 우리가 어쩔 수 있을까? 다가오는 삶을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해 살 수밖에 없는 것을.“(35장)

 파이는 절대 고독한 망망대해에서 한 권의 책이 있었으면 하고 바란다. ‘읽고 또 읽어도 새로운 이야기가 등장하는’ 책이다. 그런 책이 나에게는 뭘까 하고 잠시 생각해 보았다. 첫 번째로 떠오르는 책은, 개성 넘치는 많은 등장인물이 나오고 무궁무진한 얘기들이 펼쳐지는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이다. 몇 번을 읽어도 재미있는 나관중의 《삼국지》도 있고, 읽을 때마다 깊게 생각하게 만드는 도스토옙스키의 작품들도 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런 책이 뭐가 있는지 궁금하다.

  이 책은 소설의 본래적인 힘, 즉 이야기의 힘을 보여준다. 상상하기도 어려운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충분히 이해가 가고 공감이 가는 것은 마텔의 필력 덕분이다. 총 3부, 100장으로 이어지는데, 작가 자신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게 아닐까 싶을 만큼 생생하게 묘사된다.  내 눈에 보이는 듯, 내 마음에 느껴지는 듯하다. 마텔은 이 글을 쓰기 위해서 종교적 사고, 동물원에서 이루어지는 동물들 돌보기, 바다의 생존 스킬 등을 연구했다고 한다. 동물의 행태와 바다에 대한 풍부하고 생생한 묘사뿐만 아니라 종교와 인생에 대한 깊은 사유, 때로는 유머감까지 곳곳에서 보여준다. 전반부에 동물원과 호텔을 비교하고 동물원의 동물들을 묘사하는 장면은 우습고 따뜻하다. “오랑우탄은 내 머리칼을 뒤지며 진드기를 찾다가 아무것도 없으면 실망하며 씨근댔다.”(4장) 바다를 묘사할 때는 내 눈으로 보는 듯하다. “바람에 앞서 다가온 구름이 겁에 질려 비틀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이어서 바다가 비틀거렸다. 바다가 위로 솟았다 밑으로 떨어지자 내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83장)

  주인공의 이름은 피신 몰리토 파텔이다. 피신은 대개 피싱(pissing 소변을 보는)으로 잘못 불리고, 그러면 웃음이 터지고 그렇게 계속 놀림을 당하는 것이 싫어서 새로 전학 간 학교에서는 스스로 만들어낸 별칭을 밝힌다. 피신 몰리토 파텔, 간단히 파이 파텔이라고. 수학기호 π=3.14까지 덧붙여서. 그리하여 파이라고 불리게 된다. 파이는 몇 개의 숫자로 딱 떨어지지 않고 끝없이 이어지는 무리수이다. 이 점은 지은이 마텔의 숨은 의도가 아닐까. 바로 우리 인생의 이야기는 무한하며 어느 이야기를 선택하느냐는 우리의 의지라고. 이 이야기의 끝에서도 화자는 묻는다. 어느 이야기가 맘에 드느냐고. 살아남겠다는 굳은 의지가 있다면 이야기는 해피엔딩이다. 자 선택해 보자, 나의 인생을 어떤 이야기로 끌어갈 것인지.

  사족. 우리나라에는 박경리 문학상이 있는데 세계인을 대상으로 하는 국제상이다. 지난 2017년 제7회에서 얀 마텔이 후보 작가 5인에 선정되었는데 수상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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