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생겼다가, 못생겼다가, 대머리가 되었다가, 심지어는 외국인이 될 때도 있고 어린애가 될 때도 있고 어떤 때는 여자가 되기도 한다.
개인 공간에서 혼자 일을 하니 누구에게 들킬 일은 없었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나타나면서 문제가 시작된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제는 운 좋게 그 남자의 비주얼이 좋은 날이라 클럽에 가서 인기가 좋았고 그때 만난 여성과 밤을 보냈지만, 오늘 아침에 눈을 뜨니 뚱보 아저씨가 되어있다. 그는 옆 사람이 깨지 않게 조심하며 일어나서 맞지 않는 바지를 옷핀으로 고정하여 입고 작은 신을 구겨 신고 방을 나선다.
그의 이름은 김우진이고, 그에게 있어서 변하지 않는 조건은 그가 개인 작업실에서 혼자 가구를 디자인하고 만든다는 것과, 친구 상백과 그의 엄마만 그의 정체를 안다는 것이다. 그가 18세가 되는 날, 처음으로 아저씨가 되어 깨면서 이런 일이 시작됐다.
친구의 제안으로, 혼자 가구를 만들면 많이 만들 수 없고 디자인을 도용당할 수도 있다고 해서 상백이 대량생산과 판매를 맡기로 하고 우진은 디자인을 맡아 알렉스라는 회사를 함께 차린다.
어느 날, 우진은 어떤 가구대리점을 방문했는데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는 직원 이수를 보고 한눈에 반한다. 매일 달라진 모습으로 그곳을 방문해서 이수의 설명을 듣고 소가구를 사고매번 그녀의 명함을 받는데, 창고에는 소가구가 가득차고 서랍에는 명함이 수북하게 쌓일 정도가 된다.
그의 비주얼이 좋은 어느날(배우 박서준), 그는 데이트 신청을 해서 성공하고 이수를 자신의 공방으로 데려와서 초밥을 함께 먹는다. 다음날 다시 만나기로 했는데 얼굴이 변할까 봐 그는 잠을 자지 않고 버티며 그녀를 다시 만난다. 셋째 날까지 버티고 다음날 아침식사 약속까지 하고 잠을 자지 않으려고 지하철을 탔지만 깜박 졸다 깨보니 그는 대머리 아저씨로 변해있었고 결국 이수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다.
이후 여자로 변한 우진은 가구점에 수습직원으로 들어오고 저녁에 이수를 불러내서 자신의 창고로 데려가서 그동안 그녀에게 샀던 가구들을 보여준다. 그리고는 자신이 김우진이라고 고백하지만 그것을 이수가 믿지 못하자 자신이 매일 노트북으로 찍었던 셀프사진들을 보여준다.
“겉모습은 다르지만 모두 다 김우진”이라는 말을 뒤로하고 도망쳐 나온 이수는, 며칠 뒤 다시 김우진의 집을 방문하고, 일본 여자의 모습으로 자기를 맞는 우진에게 같이 밤을 보내고 아침에 그가 변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한다. 다음날 아침, 이수는 어떤 남자로 변한 그와 사귀기로 한다. 둘은 매일 데이트를 하는데, 우진은 아침에 페이스톡으로 변한 얼굴을 보여주기도 하고, 저녁때는 혼자 찍던 사진 대신에 둘이 셀피를 찍어 보관한다. 이수가 매일 달라지는 그를 길에서 알아보지 못하고 혼란에 빠지자, 그는 “내가 먼저 알아볼게”라며 그녀에게 다가가 손깍지를 낀다.
그러나 행복하기도 하지만 혼란스럽기도 한 이런 생활 때문에 그녀는 건망증이 심해지며 두통약을 달고 살게 되고 정신과 의사에게 상담을 받을 정도가 된다. 우진은 이수에게 프러포즈를 하려고 하다가 그녀의 고민을 듣게 되고, 엄마에게 찾아가서 마음을 털어놓는다. 엄마는 아빠도 비슷한 사람이었는데 결국 아내를 더 이상 불안하지 않게 하려고 떠났었다는 이야기를 처음으로 한다.
우진도 이수를 위해 떠나야겠다고 결심한다. 그는 마지막으로 이수를 위한 의자를 만들어 선물하고 이별을 통고한다.
혼자가 되자 거짓말처럼 증상이 좋아진 이수는 운동도 하며 평상을 회복하고 그들의 관계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다. 10개월 후 이수는 가구 잡지에서 익숙한 디자인을 발견하고, 거래차 알렉스 공방을 방문했을 때 친구 상백이 그녀에게 우진의 행방을 묻지 말라고 한다. 그곳에는 체코에서 온 물건들이 있었고 그녀는 그가 체코에 있을 거라고 짐작한다.
체코의 공방으로 찾아간 이수는 거기서 한 젊은 남자(배우 유연석)를 만난다. 그녀는 가구를 구경하겠다고 하고 그는 직원인 척하지만, 잠시 뒤 그녀는 그가 우진임을 안다고 말한다. 이번에는 그녀가 그를 알아본 것이다. 그녀는 매일 다른 그를 보는 게 힘들었지만 그와 떨어져 있는 게 더 힘들었다고 말하며 다시 시작하자고 한다.
“네 안의 한결같은 김우진을 사랑해. 미안해, 오래 걸려서.”라고 말하며 둘은 포옹하고, 우진은 과거 프러포즈하려고 만들어 놓았던 반지를 꺼내서 그녀에게 끼워준다.
심리학에서 페르소나라고 하면 속마음을 가리는 가면을 의미한다. 속으로는 무슨 생각을 하든 사회적 역할을 해야 하니 가면을 쓰고 그것을 가리는 것이다. 속으로는 일탈을 꿈꾸어도 가장의 역할을 해야 하니 아버지의 페르소나를 써야 하고, 화가 나도 착한 며느리의 가면을 써야 한다. 이것이 반드시 나쁜 것도 아니다. 만일 페르소나를 제대로 발달시키지 못하면 사회 생활을 못하고 마음대로 사는 사람이 될 것이다.
영화를 표면적으로 보면 우진은 마치 수백 개의 페르소나를 바꿔 쓰는 인물로 보인다. 그러나 더 깊이 들여다보면, 오히려 우진은 페르소나가 아예 없는 인물이다. 마음속에 존재하는 여러 파편들을 가릴 수 있는 단단한 가면이 없어서, 늘 속마음이 투명하게 그대로 드러나는 인물인 것이다.
사람들의 무의식 속에는 여러 인격이 존재한다. 때로는 멋진 자아가 느껴지기도 하고 어떤 날에는 여린 아이가 나오기도 한다. 어떤 때는 (남성이지만) 여성적인 면이 튀어나오기도 하고 노인의 측면이나 이방인 같은 존재도 들어있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은 이런 것들을 페르소나 뒤에 숨기고 똑같은 얼굴로 사회에서 생활한다.
우진은 이런 여러 인격들이 그대로 드러나는 사람이다. 지금까지는 내향적이고 비사회적인 사람이어서 혼자 생활하고 혼자 일하니 페르소나 없이 여러 측면이 드러나는 것이 별 문제가 되지 않았었다.
그러나 사랑하는 이수를 만나고 나니 그녀와 함께 하는 삶은 그렇게 보호막이 없으면 평탄하지 않을 것임을 알게 된다. 그는 결국 혼란스럽고 힘들어하는 그녀를 떠나는 것이 그녀를 위하는 길이라고 판단한다.
이수도 우진을 사랑하지만 그의 안에 들어있는 많은 파편들이 혼란스럽기도 하고 그것들을 다 보듬고 견딜 자신이 없어져서 고민한다. 그러나 그와 헤어진 시간 동안 그를 떠올리며, 그녀는 그의 다양한 모습에도 불구하고 그의 마음 한가운데 존재하는 한결같은 우진의 중심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누구라도 중요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마음의 모든 부분을 보여주지 않는다. 우진도 그의 마음 전부를 유일하게 이수에게만 보여주었다. 처음에 이수는 길에서 마주친 사람이 우진인지 아닌지 알아볼 수 없었지만, 나중에는(체코에서) 처음 본 남자가 우진임을 그녀가 먼저 알아본다.
이런 과정이 사랑이지 않을까? 상대의 단면만 보고 반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측면을 보고, 받아들이고,중심을 알아보는 것이 사랑일 것이다. 거기에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마지막 장면에서 이수는 그동안 만났던 모든 우진들과 키스한다.
잘생긴 우진, 못생긴 우진, 여자 우진, 아줌마 우진, 할아버지 우진, 꼬마 우진 등 수십 명의 우진과 포옹하며 우진의 모든 부분을 받아들이는 이수의 내면이 너무도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