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가출로 그를 찾으러 엄마의 고향으로 내려간 나영은 젊은 시절의 부모를 만나게 된다.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나영이 엄마를 생각할 때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엄마가 한 장례식장에서 난동을 피우는 장면이다. 그녀는 상주에게 매달려 돈을 돌려달라고 악다구니를 치고 있다. 아버지가 친구에게 돈을 빌려주고 빚보증까지 섰는데 친구는 감당이 되지 않자 자살하고, 빚까지 아버지가 다 떠안게 된 것이다. 엄마는 궂은일을 하며 벌어서 모은 딸의 등록금까지 다 날렸다며 울부짖고,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허공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결국 나영은 대학 진학을 포기한다.
엄마는 목욕탕 위생사(속칭 때밀이)로 일하는데 사람이 없을 때 탕 속에서 들어가서 한참씩 나오지 않는다.
나영은 우체국에 취업을 하여 성실히 근무를 하고 있고 회사에서 보내주는 뉴질랜드 연수생에 선발되어 마음이 들떠 있다.
아버지는 오랫동안 근무했던 우체국에서 나이가 들어 우편물을 분류하는 파트에서 일하고 있지만, 월급은 빚을 갚느라 차압당한 상태이다.
기운 없어 보이는 아버지를 위해 삼겹살 외식을 할 때 아버지는 이제 그만 쉬고 싶다고 말하고, 엄마는 그런 아버지를 팔자 좋다고 구박한다. 아버지는 다음날 새벽 혼자 가방을 들고 집을 나간다. 딸이 아버지가 다니던 병원에 가서 알아보니 그는 암에 걸려서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한다.
나영은 남자친구를 만나서 무능한 아버지와 극성스러운 엄마에게 질렸다며 그들을 무책임한 부모라고 비난한다. 그녀는 가족의 아름다운 기억은 하나도 없이 그저 어려운 현실만 감당했었다며 그들은 부모의 자격도 없다고 매도한다. 그냥 뉴질랜드 연수를 가버리겠다고 하지만 결국 남자친구의 설득으로 포기하고 마음을 돌려서 아버지를 찾으러 엄마의 고향섬으로 향한다.
그녀는 그 섬에서 젊은 시절 우체부를 하던 아버지 진국과, 해녀 일을 하며 동생을 키우던 젊은 시절 엄마 연순을 만난다. 연순은 훤칠한 진국을 짝사랑하며 공부하러 외지에 나간 동생에게 용돈을 주어가며 편지를 매일 쓰라고 부탁하고 편지를 배달받으며 그를 매일 만날 계기를 만든다. 글을 모르는 연순은 편지를 수령했다는 사인을 해야 할 때 손이 젖어서 못한다는 핑계를 대고 진국이 대신하게 하지만, 그는 금방 그녀가 글을 모른다는 것을 눈치챈다.
그는 연순에게 1학년 국어책과 공책과 연필을 선물하고 매일 바닷가에서 사과 궤짝을 책상 삼아 글을 가르친다. 이때가 연순에게는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다.
그러나 진국이 전근 발령이 나서 섬을 떠나게 되고 너무 속상한 연순은 모든 의욕을 잃는다. 기운이 빠진 채 물질을 하다가 결국 물에서 나오지 못하고 죽을 뻔하다가 겨우 주위 해녀들에게 구조된다. 이를 알고 진국도 상심하고, 2학년 국어책과 학용품과 동화책 ‘인어공주’를 선물하고 떠난다.
얼마 후 연순은 몸을 회복하고 진국에게 “저는 괜찮습니다. 이젠 물질도 할 수 있습니다. 글자 가르쳐주셔서 감사합니다. 선물도 감사합니다. 보고 싶습니다.”라는 편지를 직접 써서 부친다.
그리고 결국 그들은 결혼했던 것이다....
나영은 섬에 머물고 있는 아픈 아버지를 바닷가 언덕에서 찾는다. 엄마에게도 그곳으로 오라고 연락을 하고 싫다고 하던 엄마도 아버지를 찾아온다. 엄마는 울면서, 미안하다는 아버지에게 그런 소리 하지 말고 죽지 말고 오래 살라고 한다.
나영도 결혼해서 딸이 생기고 아이에게 옛날 외조부모의 사진을 보여주며 생각에 잠긴다.
그날이 아버지 제사여서 준비를 하며 그녀는 목욕탕에서 일하는 엄마에게 전화를 한다. 섬에서 처음으로 버스 개통하던 날 마을 사람들이 모여 사진을 찍을 때, 아버지가 사진에서 웃었는지 기억나냐고 묻자, 엄마는 일하느라 바쁜데 왜 전화했냐고 퉁명스럽게 말하지만 얼굴에는 행복한 웃음기가 돈다.
그리고 엄마는 탕 안의 물속으로 잠수하며 그 옛날 싱그러웠던 연순으로 변한다.
나영의 엄마는 먹고사느라 억척스럽게 굴고, 아버지는 아무 생각도 없어 보인다. 무능한 부모라서 자신을 대학에도 보내주지 못했고 처음으로 외국에 나가려는 마당에 아버지가 집을 나가서 여행도 무산이 되자, 나영은 화가 나고 왜 그들은 무책임하게 결혼해서 자식을 낳았을까 생각한다.
그녀는 자라면서 들은 이야기와 몇 장 안 되는 부모의 사진들을 기본으로 엄마의 고향섬에 갔을 때 그들의 젊은 시절을 상상하며 복원한다.
젊은 우체부 청년이었던 아버지는 섬에 근무하면서 엄마가 부모 없이 양부모의 집에 들어와서 학교도 못 다니고 어린 의붓형제를 키우며 해녀로 살아가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했다. 착한 그는 문맹인 엄마에게 글을 가르쳐준다. 자신의 이름도 못쓰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던 엄마에게 짝사랑하던 청년이 글을 가르쳐준다는 것은 어떤 연애보다도 애틋했었다.
그렇게 글을 익혀서 이름도 쓰고 간판도 읽게 된 엄마의 기쁨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였을 것이다. 결국 아버지의 전근으로 둘은 헤어지지만, 그들을 이어준 것은 엄마가 글을 알게 되어서 편지를 쓸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가 엄마에게서 본 이미지는 그가 떠날 때 그녀에게 선물한 동화책의 제목과 같은 ‘인어공주’였다.
나영은 처음에는 아버지가 대책 없이 착해서 남들에게 이용만 당하고 가족들을 고생시켰다고 생각했지만, 알고보니 젊은 시절 엄마가 아버지를 좋아한 이유가 바로 그가 착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부모의 결혼 전 풋풋한 사랑을 복원하며 자신이 바로 그 아름다운 사랑의 결실이었음을 깨닫는다.
좋아하는 사람과 결혼했지만 무능력한 아버지를 대신해서 엄마는 한평생 힘든 일을 했다. 이작품에서는 힘든 일의 종류도 여러 가지 있는데 하필 목욕탕에서 일을 한다는 설정이 중요하다. 그녀는 뼛속까지 해녀인 것이다. 해녀인 그녀에게 물은 육지사람의 공기와도 같은 핵심 물질이다. 그녀가 손님들의 때를 벗기느라 피곤해도 청소 시간에 탕 안의 물속으로 자맥질을 하면 모든 피곤을 물리칠 수 있다.
물질을 할 때 들어가는 바닷속은 인간의 무의식을 상징한다. 사람들은 미지의 깊은 바닷속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고 있지만, 엄마는 해녀여서 그 안에서 자유롭게 헤엄치며 전복 같은 보물들을 채취했었다. 그녀에게는 좋은 전복을 찾아내는 능력처럼 좋은 사람을 알아볼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그녀는 무의식속 아니무스의 이미지를 가진 세상의왕자를 알아보았다. 엄마가 먹고살기 힘든 현실에서 돈을 버느라 온갖 고생을 하고 아버지에게 거친 말들을 퍼부었지만, 그녀의 인생이 불행하게만 보이지 않는 것은 그녀가 착하고 좋은 아버지 같은 사람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엄마는 목욕탕 청소 시간에 탕에 들어갈 때마다 일종의 시간 여행을 하는 셈이다. 젊은 시절 아버지를 사랑한 시간으로 돌아가서 그 시절을 회상하면서 그녀는 피곤한 현실을 이겨낼 힘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