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과 상상의 사이 어디쯤
굳이 오이디푸스 신화를 거론하지 않아도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녹록지 않다.
누구나 어릴 때는 거대한 아버지의 존재에 압도되지만 커가면서 아버지는 초라해지고 힘은 줄어들기 마련이다.
팀 버튼 감독은 보편적인 부자 관계에 대한 영화를 자기만의 기억까지 버무려 아름다운 우화의 형식으로 만들었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윌 블룸은 자라면서 아버지 에드워드 블룸이 하는 허황된 이야기를 들으며 살아왔다.
“아버지는 과거 어릴 때 운동이면 운동, 공부면 공부 모든 것을 잘했다고 한다. 너무 빨리 성장해서 몇 년간 침대에 묶어두어야 할 정도였다. 친구들과 마녀의 집도 용감하게 방문하고 그녀의 유리 눈을 통해 자기가 죽는 장면도 미리 보았단다. 불난 집 강아지도 용감하게 구조하고, 여자들에게도 최고로 인기였다. 성인이 되고 마을에서 말썽을 피우던 거인을 데리고 고향을 떠나 도시로 떠났다. 가는 도중 모두가 행복하고 만족하며 사는 유령 마을을 거친다.
서커스를 보러 온 어머니 산드라를 처음 보고 반하고, 그녀의 주소를 알기 위해 서커스단에서 3년간 무급으로 일하며 주소를 알아냈고, 그녀의 마음을 얻기 위해 그녀의 집 앞에 세 도시에서 모은 황수선화로 거대한 꽃밭을 만들어 그녀의 마음을 얻었다고 한다. 군대에 징집되었을 때 공연하던 샴쌍둥이 자매 이야기도 빠지지 않는다. 아들 윌이 태어날 때 강에서 결혼반지를 미끼로 빅 피쉬를 잡았다가 놓아준 이야기도 단골 메뉴이다.”
윌은 어릴 때는 재미있게 들었지만, 많은 사람에게 이런 이야기를 무한 반복하며 들려주는 바람에 어느 순간 질리고 아버지는 거짓말만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마침내 자신의 결혼식 축사에서까지도 웃기는 빅 피쉬 이야기를 늘어놓는 아버지와 싸우고 몇 년간 소식을 끊는다.
그러다가 윌은 아버지가 병에 걸려 위중하다는 전화를 받고 부모님 집에 아내와 함께 내려온다. 그리고 아버지의 이야기를 검증하기 시작한다. 아버지가 유령마을의 토지증서를 가진 것을 보고 아버지의 외도를 의심하고 그 마을의 여자를 찾아가기도 한다. 그 여자는 자신은 아버지를 좋아했지만 아버지가 엄마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신의를 저버리는 일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려준다.
아버지의 임종 순간에 아버지는 자신의 이야기를 완결해 달라고 아들에게 부탁하고 아들은 아버지의 방식으로 그가 그동안의 이야기에 나왔던 모든 인물들의 배웅을 받으며 빅 피쉬가 되어 물로 돌아가는 엔딩을 만든다.
장례식이 열리자 허구라고 생각했던 인물들이 모두 참석한다. 물론 거인은 아버지 이야기보다는 작았고, 샴쌍둥이 대신에 그냥 쌍둥이 자매가 왔다. 그제야 아들은 아버지가 거짓만을 말하지는 않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도 잠자리에서 아들에게 아버지의 이야기를 그대로 들려준다.
세일즈맨이었던 아버지는 무엇이든 상상을 섞어 과장했지만 사실 그의 이야기의 핵심이 거짓이었던 적은 없었다. 지루한 사실에 의미와 재미를 섞어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었을 뿐이다. 당연히 많은 과장이 섞여 있었다. 그가 어른일 때의 키를 보면 보통인데 이야기에서는 너무 빨리 자라서 걱정일 정도라고 한다던가, 개인이 모으기에는 말도 안되게 많은 황수선화를 아내의 집 앞에 심어놓고 청혼했다던가, 비행기 꼬리의 연기로 하늘에 사랑한다는 고백을 썼다던가, 거인의 키가 현실에서는 불가능할 정도의 크기라던가, 그냥 쌍둥이를 샴쌍둥이라고 한다던가 하는 표현으로 과장한다.
이런 아버지를 사실을 중시하는 신문기자 아들은 한심하게 바라본다. 아버지의 허풍에 질린 아들은 아버지에게 거짓말 좀 그만하라며 스스로 부끄럽게 여기고 진정한 자신이 되라고 충고한다.
이에 엄마는 아버지의 말이 다 거짓은 아니라며 둘을 중재하고 아버지를 변호한다. 엄마는 남편의 사랑이 진심이라는 것을 믿기 때문에 약간의 과장은 다 참고 들을 수 있다. 엄마는, 그녀를 사랑하고 낭만적으로 청혼하고 외부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고 가정을 지킨 남편을 영원히 사랑한다.
또한 자신이 태어날 때 받아준 의사도 아버지가 아들이 태어날 때 같이 있어 주지 못한 미안한 마음에 빅 피쉬 이야기를 지어낸 것이라고 말한다. 의사는 만일 선택해야 한다면 일하느라 아들이 태어날 때 일하느라 아내와 함께 있지 못했던 팍팍한 현실과, 아들이 태어나는 순간 강에서 큰 물고기를 잡았다는 상상 중 후자를 선택할 것이라고 말한다.
결국 인생은 일상에서 일어나는 지루한 현실이기도 하지만 그것에 의미를 주면 멋진 판타지가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아버지가 엄마를 처음 본 순간은 기억 속에서 시간이 멈추었던 영원으로 남고, 황수선화 꽃다발은 동네를 가득 채웠던 꽃밭으로 마음에 남는다.
아이들에게 잠잘때 침대에서 보여주는 손그림자 연극에서 원래는 손이지만 그림자를 보면 늑대이듯이, 사실을 상상과 버무려야지 인생이 풍요로워진다. 인생은 사실이지만도, 판타지이지만도 않은 것이다. 둘을 조화롭게 섞어야 멋진 인생이 된다. 이런 역할을 하는 것이 문학이나 영화 같은 예술이다.
사실만을 강조하던 아들이 상상력이 풍부했던 아버지를 마지막 순간에 받아들이며 화해한다. 아들은 아버지의 마지막 이야기를 아버지의 방식으로 완결해 준다. 이제 아들은 사실만을 고집하며 인생을 살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같은 방식으로 자신의 아들에게 해준다. 이렇게 아버지는 후대에 이야기로 기억되고, 영원히 전설이 되어 살아남는다.
*에드워드가 산드라를 만났을때 둘만을 제외하고 모든것이 멈추는 장면과, 청혼할 때 온동네를 황수선화밭으로 만든 장면은 영화사상 가장 로맨틱한 장면으로 관객의 마음에 영원히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