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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배원 Jul 15. 2023

오타와 스티커

완벽하지 않은 것이야말로 귀엽다 그렇기에 나 역시 귀엽다


   오늘은 책을 읽는데 의문의 테이프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오타를 감추기 위해 붙인 한 장의 스티커였다. '하얬다.'라는 글자 가운데 '얬'이라는 단어가 이질적으로 튀어나와 있었다. 작은 실수를 감추기 위해 수십 혹은 수 백 권의 초판본에 스티커를 붙였을 작가님이 절로 상상됐다. 그래서 작고 소중한 네모를 보자마자 웃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완벽하지 못한 것을 감추기 위한 완벽함이 너무나도 귀여웠기 때문이다.



   언젠가, 친한 독립 출판 작가 언니가 쓴 글에 이런 이야기가 있었다.


종이책은 고칠 수 없다는 점에서 선언문과 같다. 한 번 세상 밖으로 나온 책은 지워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 말에 어느 정도 동의한다. 종이책은 완벽해야 한다는 물성을 가진다. 그것은 한 번 세상으로 나온 책은 수정할 수 없다는 것이 첫 번째 근거이고, 나의 실수를 "앗 죄송합니다. 제가 농담 안 하고 한 천 번은 넘게 읽어본 것 같은데 제 눈이 어떻게 된 것인지 무심코 오탈자를 내어버렸네요. 사죄하는 마음으로 라식이라도 하고 오겠으니, 넓은 마음으로 봐주시길 바랍니다."라고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 두 번째 이유이다. 그러므로 나 같은 덜렁 인간에 무슨 일이든 즉흥적이게 벌리고 보는 사람은 독립 출판과는 좋은 인연을 맺으래야 맺기 힘들 것이 분명하다. 물론 시도도 안 해보고 이런 말을 하는 지점에서 이 모든 것은 "의미 없음"이다.


   나는 완벽하지 않음이 익숙한 사람이다. 죄송할 일이 어찌나 많은 지 이제는 나의 사죄가 필요하지 않은 일에도 대단히 죄송하다며 나서는 사람이 되었다. 왜 나는 나의 잘못이 아닌 일에도 사죄하며, 잘못의 원인에 대해 분개하지 못하는가. 처음에는 이러한 나의 소시민적 답답함이 그저, 남들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개인적 욕망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이는 완벽함을 추구한다는 거창한 욕망 같은 게 아니라 단순히 타인이 내게 실망하는 것이 두려워서 임을 알고 있다.


   사죄가 통하지 않는 상황은 두렵다. 아니 두렵다기보다는 무섭다. 그것이 아주 사소한 것이든 엄청난 것이든 간에 내가 완벽하지 않다는 사람이라는 것에 어떤 이들이 실망하고 뒤돌아 결국 혼자만 남게 될까 봐 무섭다. 나는 내가 혼자서는 절대 살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서, 그래서 타인에게 흠 잡히기 싫어 지레 먼저 사과를 건네고 만다. 그러면 사과를 받는 사람은 나에게 위로를 건네주기 때문이다. 감정의 기브 앤 테이크인 셈이다. 어쩌면 나는 위로에 담긴 따뜻함에 중독되어 자꾸만 선뜻 사과나 심심치 않은 위로를 건네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죄가 통하지 않는 상황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럴 때 나는 나만의 위안을 건네고는 한다. "뭐 어때요. 인간은 원래 완벽하지 않은 존재랍니다." 그러니까 완벽해야 한다는 물성을 가진 책이라고 해도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 완벽하지 않은 책이 나왔을 때는 자그마한 스티커를 하나 붙이면서 화해의 시도를 건네면 된다. 사죄는 비굴해 보이지만, 사실은 강력한 무기이다. 나는 당신을 헤칠 만큼 대단하다거나 강력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어필하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사죄를 건네는 것에 어떠한 비굴함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실수에 사죄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용기이며, 당신과의 관계를 지속하고 싶다는 메시지이며, 이 실수를 통해 한층 더 강한 인간이 되겠다는 다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완벽하지 않은 것이야말로 인간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인간적인 실수를 회복하려는 그의 노력을 보면 되려 응원하고 싶어 진다. 2쇄에서는 꼭 수정하시길 바라요.라는 심심찮은 위로를 건네고 싶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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