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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배원 Feb 22. 2024

인과 연

관계의 지속성에 관해

   인연이라는 것이 참 기이하다. 나는 운명론자는 아닌데, 인연의 힘은 믿는 편이다. 인간관계에서 특히. 첫인상부터 이 사람이 나와 잘 맞을 것 같다는 것을 판단하지는 못하지만, 같이 지내다 보면 오는 이 사람과는 오래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직감을 믿곤 한다. 만날 때는 아리송하다가 어느샌가 확신이 생기면, 그 사람은 내 사람이 되는 것이다. 스쳐 가는 인(因) 사이에서 나와 연(緣)이 될 수 있는 사람을 찾다보면 나는 극성 인연론자가 된다.


   나는 소위 말하는 ‘찐친’이 많은 편이다. 어른들이 하시는 말씀 중에 마음에 맞는 친구 한 명만 있으면 인생을 잘 산 거라는 말이 있는데, 그렇게 따지면 나는 3명… 아니 5명? 8명인가? 하여튼 꽤 많이 있으니 벌써부터 성공한 인생을 살고있는 셈이지. 실제로 나 또한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힘들게 인으로 맺어진 관계여도 연은 항상 유동적이고 불확실하다. 그러니 연은 언제든 아무 때고 갑자기 끊어질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 사실은 종종 나를 우울하게 만들곤 한다. 친구의 소중함을 깨달은 시간들이 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이사를 가게 되면서 중학교 친구들과 이별을 하게 되었다. 물론 친구들 모두가 같은 고등학교를 갔던 것은 아니었으나 아는 친구가 없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소심한 성격이었던 내가 겁에 질리기엔 충분했다. 그래서 입학했을 때는 친구를 사귀어야 한다는 강박과 혼자라는 외로움에 현실이 너무 힘들었다. 초기에는 정신적으로 힘들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해서 스트레스를 받다가 살이 10kg나 쪘다. 그리고 나의 이상을 알아챈 엄마가 나를 침대 밖으로 끌어내려 애썼지만 결국엔 실패했다. 그 시절 나의 유일한 위안은 중학교 때 친구들이었다. 주말마다 40분 거리를 나가서 친구들을 만나고 오면 마음이 편해졌고 재미있었다. 그 시간이 나에게는 너무나도 숨통이 트였던 조각들이라 아직까지도 의미가 깊고 소중하다.


   그러나 그렇게 위안을 주던 친구들도 종국엔 3명만이 남았다. 관계에는 유효 기한이 있어서 일정 기간을 넘으면 애정은 결국 정으로 변모한다. 그것은 비단 사랑뿐만 아니라 우정도 그렇다. 중학교 친구들은 어느새 9년 지기 친구들이 됐다. 햇수로 9년이니 진득하게도 붙어 다녔다. 우리가 처음 만난 것은 중학교 2학년 때였다. 같은 관심사를 공유하며 무리를 지어다녔던 우리는 본래 10명이었다. 그러나 중학교를 졸업하자 9명이 되고, 20살이 되자 5명이 남았다. 그리고 지금은 4명이 되었다.


 보통 권태기가 3년마다 온다는 정설이 있듯 나는 친구 관계에 있어서도 3년의 유효 기간이 있다고 생각한다. 무엇을 해도 즐거웠던 마음은 3년이 지나면 잿빛으로 변한다. 3년 차에 멀어진 한 명 또한 그러했을 것이고 또다시 온 3년 차에서도 어쩔 수 없을 것이다. 항상 붙어있을 수 없는 우리이기에 각자의 삶을 살다보면 마음은 변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 시간을 견디면 우리는 각자의 자리를 서로에게 내어주고 마음을 나눌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대부분은 그 시간을 견디지 못한다. 나 또한 2번의 고비를 겪었기 때문에 연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사실 나는 무엇이든 쉽게 질리는 체질이긴 하지만 인간관계에 있어서는 집요하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떠나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고, 애초에 잘못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권태가 오더라도 혼자 견뎌내고 이겨내는 편이다. 만나는 것이 재미있지 않더라도 만나서 놀려고 하고, 억지로 적막을 깨부수려고 한다. 그러나 3년마다 인원이 줄어드는 이 사이클을 보다 보면, 내년부터 걱정하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9년 차가 된 우리는 여전히 4명일까?


 인연의 힘은 어디까지 작용될까. 잘 모르겠다. 9년 차가 되면 징크스처럼 권태가 올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오랜 세월이 지나서 영원한 관계로 마무리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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