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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배원 Jul 10. 2023

나와 글

내가 글을 쓰는 이유


   어렸을 때 꿈은 작가였다. 어린 시절의 꿈은 자주 바뀌기 마련이라던데, 나는 장래 희망을 적을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을 시점부터 작가라는 꿈을 고수하는 뚝심 있는 어린이였다. 그렇지만, 지금은 작가라는 꿈을 접었으니 그 고집도 이젠 없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하고 주장하고 싶다. 아, 고등학교 때부터 주욱 출판 편집자라는 꿈을 꾸었으니, 여전히 어찌할 수 없는 고집쟁이인 건가?     


   과거의 나를 돌이켜보면 참 융통성 없이 완고했다. 사람을 대하는 방법을 몰라서 사람보다는 책 보기를 좋아했고 나만의 세계에 빠지는 것을 즐겼다. 부모님은 맞벌이에 외동이어서, 주변에 또래가 없어서 그랬을지도 모르고, 그때는 핸드폰도 없었을 시절이라 더더욱 책에 몰두했을지도 모른다. 어렸을 적 나의 친구는 책이었고, 나의 시간을 독점한 것도 책이었다. 책은 나의 세계였고 나의 추억의 전부였다. 나의 광적인 책 사랑을 부추긴 것은 엄마의 역할도 컸다. 하긴 지금 생각해 보면 책을 읽고 싶다는데 그것을 마다할 엄마가 세상에 없을 것이다.     


   도서정가제도 없었을 무렵, 책 10권을 사도 4만 원이 넘지 않았을 그리운 시절에 엄마는 나에게 책을 사주는 것을 망설이지 않았다. 그래서 항상 우리 집엔 책이 넘쳐났고, 매주 주말마다 나와 엄마는 인터넷으로 책을 쇼핑하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그 시간을 참 좋아했다. 해가 지는 저녁에 컴퓨터 방에 도란도란 앉아서, 서점 사이트에 올라온 책의 표지와 제목을 보고 신중하게 책을 고르는 일련의 과정들이 소중했다. 책의 가격이 싸면 궁금해서 읽어보자며 담합하고 의외의 수확을 얻어 좋은 책을 발굴하면 함께 책 이야기를 나누며 흥분했던 모든 시간을 사랑했다. 자연히 책장에 있는 모든 책을 점령하는 것이 일생의 목표였던 나는 그것을 지키기 위해 학교 쉬는 시간에도 책을 읽었다. 생각해 보면 정말 책에 진심이었던 어린이였다. 지금은 그렇게까지 열정적으로 읽진 않지만 어린 시절의 좋은 추억 때문인지 현재는 책만 보면 환장부터 하는 어른이 되어 버렸다.   



   그때 내가 최고로 좋아했던 장르는 판타지였다. 특히 ‘오톨린 시리즈’를 굉장히 좋아했는데 노르웨이에서 사는 먼로씨와 신발을 항상 짝짝이로 신고 다니며 기이한 사건을 해결하고 다니는 오톨린 콤비를 보면 나도 저런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나도 언젠가 먼로 씨와 같은 조수이자 동반자를 만나서 꼭 노르웨이의 늪을 구경하리라는 상상의 나래를 시시각각 펼쳤다. 오톨린의 지나치게 푹신해서 허리가 망가질 것만 같은 거대한 침대를 탐내는 것은 덤이었다.


   또, ‘로봇의 별’ 시리즈를 보고는 SF 판타지에 눈을 떠서 한창 헤어 나오지 못한 기억도 있다. 유년 시절의 추억이 지금의 나에게 끼치는 영향은 지대하므로 현재의 내가 김초엽의 SF 소설에 환장하는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일지 모른다. 하여간 어린 시절의 나는 판타지 소설을 읽으면서 이것이 현실이 아님을 알아도 언젠간 진짜 이런 미래가 있을 것이라 믿은 순진한 어린양이었다. 그래서 책 속에 나타나는 아름다운 우정이나 낭만적인 이야기가 실존하는 것이라 믿었다. 그때의 나는, 언젠가는 나도 이런 삶을 살리라 굳게 맹신했다.      


   그러나 현실과 이야기 사이의 괴리는 큰 법이다. 성장하면서 그 이치를 자연스럽게 깨우쳤고, 책을 바탕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글을 쓰기 좋아했던 나는 작가라는 꿈을 자연스러운 수순으로 포기했다. 낭만이 가득한 이야기 속 세계가 현실이 아니라는 것을 깨우치니 전에는 잘만 썼던 이야기들의 뒷이야기를 도무지 써 내려갈 수 없었다. 현실‘도’ 그럴 것이라는 믿음이 사라지니 글을 쓰는 원동력은 사라졌고 자신도 떨어졌다. 그래서 나는 절필을 선언했다. 그러면서도 나는 작가의 세계를 온전히 포기하지 못했다. 그래서 몇 번의 방황 끝에 출판사의 직원이 되기를 소망하게 되었다. 꿈은 크게 꾸는 것이라는 것이라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꿈을 작게 꿀수록 실망도 적은 편이다. 다만 작가에 대한 동경의 이면에는 내심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고등학교 때 친구랑 ‘자캐 커뮤니티’라는 엄청난 음지 소굴을 접하게 되어서 우연히 글을 쓰게 되었다. 자캐는 자신의 캐릭터의 준말인데, 자캐 커뮤니티란 하나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자캐를 만들어 여러 사람들과 소통하는 커뮤니티를 일컬었다. 자신의 캐릭터로 소통하는 방식은 주로 그림이었고, 간간이 글도 있었다. 다른 사람들의 그림 솜씨를 보며 ‘존잘님’이라 추켜세우고 그들의 세계를 염탐하는 것을 좋아했다. 함께 자캐 커뮤니티를 한 친구는 그림을 잘 그렸고, 나는 그림을 못 그리니 그림을 부수적인 수단으로, 글을 썼다. 커뮤니티를 하면서 내가 쓴 글을 친구가 많이 보게 되었는데, 친구는 그때마다 나더러 글을 너무 잘 쓴다면서 제발 소설 연재해 달라는 부탁을 농담 삼아하곤 했다. 나는 그런 부분에서 본인에 대한 자신이 0에 수렴하는지라 하하 웃으며 넘겼다. 그러면서 뒤로는 정말 내가 글을 잘 쓰나? 하고 몰래 글을 쓰다가 초반에만 휘황찬란하게 전개를 잇고 뒤를 이어나가지 못하는 나에 절망하여 또다시 절망의 늪에 빠졌다. 결론적으로 진단하자면, 나는 긴 글을 쓸 인내심도 없었고, 상상력도 부족했다.


   그런데 나는 왜 지금 브런치에 글을 올리고 있는 것일까. 사실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한 지는 꽤 됐다. 앞에서 절필을 선언했다며 구구절절 이야기한 것이 무색하긴 하지만, 현재 나는 같은 학과 사람들과 앤솔로지도 만들어 보았고, 동화책을 출판해 보기도 했으며, 뉴스레터의 글을 발행하는 에디터로도 활동하는 중이다. 나도 내가 이렇게 활발하게 글을 쓰며 설치고 다닐 줄 몰랐는데 사람의 인생이라는 것은 참 모를 일이다. 여러 편의 글을 쓰며 느낀 점은, 나는 글을 쓸 때 살아있음을 느낀다는 것이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들과 순간의 추억들, 그리고 휘발되는 공상을 마구 적어 내리는 것에 희열을 느낀다. 내가 지음으로써 관찰할 수 있는 세계와 결과물을 사랑한다.


   브런치에 다시 글을 올리기 시작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 충동적으로 시작되었다. 내가 느낀 슬픔과 답답함을 당장 해소하고 싶었는데 그럴 수 없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말할 수 없는 사실들을 속에 썩히다가 죽을 것만 같아서 컴퓨터를 켰다. 정지음 작가의 <젊은 ADHD의 슬픔>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내가 남이 되길 원했다면 소설을 시도했을 거다. 하지만 나 자신이 되고 싶었기 때문에 에세이를 쓰고 있다. 돌이켜 보면, 나는 나를 원했다기 보다 나 자신을 구하길 원한 것 같다." (217)


 이 말을 보고 뒤통수를 한 대 퍽하고 맞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그러니까 나를 되찾고 싶어서 글을 다시 쓰기 시작했다. 절필 이후의 삶은 암흑기 그 자체였다. 무엇을 해도 재미가 없었고,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많이 읽는다는 행위로는 내가 될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다시 나를 외치기 시작했다. 나 여기 있어요. 나 이렇게 존재하고 있어요. 사실은 나도 누군가에게 나를 보여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그러니까 다시 글을 쓰는 매일이 재미있다. 삶의 모든 것이 소재이며, 누군가가 상상하지도 못할 이야기들을 남몰래 생각하는 것이 웃기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쓴다. 그것이 나를 찾기 위한 정답이며, 내가 글을 쓰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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