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4월, 봄의 계절로 시간이 뛰어들었을 무렵. 아이스크림에 대한 마음이 커져가면서, 젤라또 수업까지 들었으니 계절 만큼이나 모든 것이 ‘시작’될 것 같은 때였다. 당장 아이스크림 사업을 크게 할 것은 아니지만, 그 언젠가 찾아올 기회를 잡아야 한다는 마음(하지만 그것이 코 앞에 있을 것만 같은 이상한 마음도)이 가장 부풀었던 때이기도 하다.
두옹즈에서 배웠던 젤라또 교육 자료를 몇 번이고 다시 보고, 그 때 만들었던 젤라또를 사진으로 몇 번이고 꺼내보며 ‘내가 꿈꾸는 나의 아이스크림’에 대해서도 정립해 나가고자 했다. 내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은 어떤 질감이고 어떤 색상들이 있으면 좋겠는지, 훗날 매장을 만든다면 어떤 분위기면 좋겠는지 끊임없이 생각하고자 했다.
그리고, 그 날도 그랬다. 무작정 아이스크림 기계를 사버린 날도.
동료와 함께 머리도 식히고 이야기도 나누며 일할 겸 어느 카페에서 앉아있던 평일 오후.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의 ‘우디스크림’에 대한 아이데이션을 나누고 있었다. 그때의 나는 ‘아이스크림을 배웠으니 기계가 있어야 뭐라도 만들어 볼 텐데.’ 하고 아쉬운 마음이 조금은 있었다. 기계 없이 아이스크림을 만들수도 있었지만, 기계가 있어야 제대로 할 수 있으니 그 마음은 당연했다. 하지만 한두푼 하는 것도 아니고 가격대가 생각보다 꽤 높았기 때문에, 금전적 여유와 기회가 왔을 때 반드시 마련하리라! 다짐을 했었더랬다.
함께 하는 동료는 중고 매물이라도 나오면 마련을 하자고 했다. 그래야 아이스크림 방법을 손에 익힐 수 있을 것이고, 계속 해 볼 수 있지 않겠냐는 의견이었다. 그리고 너무 고마운 마음이었고. 아이스크림 만들기를 ‘연습’해보고자 하는 나에게는 신품은 부담스러웠고 중고라도 구하면 더할 나위가 없었다. 그래서 아이스크림 중고 매장을 알아두었고, 중고나라며 당근이며 ‘아이스크림 기계’, ‘젤라또 기계’, ‘젤라또 머신’ 등 키워드 알람도 받아두고 있었다.
그런데 ‘시기’가 한 가지 문제였다. 여름 시즌 전이었기에 아이스크림 중고 기계 매물이 거의 전멸이었다. 중고 매장 사장님께서는 그러셨다.
‘지금은 늦었어요. 이미 다 사갔지. 아마 몇 달 뒤에 많이 나올텐데.’
중고나라에서도, 당근에서도 올라오는 족족 매물은 빠르게 사라졌다. (물론 합리적인 가격대의 기계 말이다. 내가 사고 싶은 가격대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매력적인 것이겠지.) 월하노인이 나만 빼고 다른 누군가의 손가락과 아이스크림 중고 기계에 빨간 실이라도 이어주는 것인지, 좋은 매물을 만나기가 어려웠다. 나만 없어, 나만!
그런데 그 때, 중고나라의 한 가운데에서 드디어 만나게 된 것이다.
제목 : (모델명 ㅇㅇㅇ) 젤라또 아이스크림 기계 팔아요.
심지어 판매완료 딱지가 붙지 않은 게시글이었던데다 가격대도 딱 내 운명과도 같던 글을!
2구짜리인데 외관도 괜찮아보였다. 무엇보다 가격대가 굉장히 합리적이었기에 마음이 드는 물건이었다. 혹시라도 호들갑 피우면 그 사이 팔렸다는 이야기를 듣게 될까봐 최대한 차분한 마음으로 판매자 분께 연락을 드렸다.
-안녕하세요. 글 올리신 거 보고 연락드려요. 혹시 젤라또 기계 팔렸나요?
-주말에 사러 오신다는 분이 계세요.
아, 역시 나와는 운명이 아닌 것일까. 누군가 벌써 빠르게 찜을 해놨다니.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아쉽지만 차분한 마음인 척, 동료에게 그 친구는 주말에 다른 주인을 만날 것이며 나와의 운명이 아니라는 소식을 전했다.
그러자 내 앞에 앉아있던 동료는 고민도 않고 나에게 말했다.
“오늘 가죠. 지금 사러 가죠. 오늘 가면 살 수 있냐고 물어봐봐요.”
“오늘?”
놀랄 수 밖에 없었다. 기계 특성상 직거래로 가지고 와야 하는데 우리는 서울이었고 판매자는 지방에 있었다. 퇴근 시간이 거의 다 되가는 무렵이었고, 이렇게 바로 사러 갈 거란 생각을 못 했으니까.
“네. 그리고 조금 더 주고 산다고 우리한테 팔아달라고 해요.”
심지어 더 주고 산다니! 동료의 당찬 실행력에 판매자분께 다시 연락을 드렸고, 그렇게 ‘쿨거래’를 하게 된 판매자분은 바로 찾아 갈 주소지를 문자로 보내주었다. 지금 오신다고요? 어디신데요? 서울이요? 서울에서 지금? 하면서 놀라긴 하셨지만.
월하노인이 손가락에 실을 안 걸어준다면, 그냥 내가 알아서 걸면 되는 거구나! 우리는 바로 카페에서 일어나 운명의 아이스크림의 기계를 만나기 위해 떠났다.
퇴근 시간에 출발하여 해가 지는 것을 바라보며 고속도로를 달렸다. 이렇게 갑자기 살 수도 있구나, 이 상황들이 재밌고 또 신기해서 얼떨떨했다. 아직 아이스크림 기계에 대해 잘 아는 것도 아니었는데, 그 기계가 정말 괜찮은 건지 아닌 지 알 수도 없는데 무작정 가는게 맞는 건가 싶기도 했다. 아이스크림에 대해서는 (아직 아는 게 많지도 않은) 내가 제일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온전히 나의 판단에 의해서 그 기계를 사야하는데 우려가 되기도 했다. 나는 그 기계 작동법도 모르니까.
그렇게 서울에서 출발한 지 몇 시간이 흘러, 판매자의 주소로 도착했다. 서울에서 온 우리를 대단하며 반겨주던 판매자분은 불 꺼진 카페로 우리를 데리고 갔다. 운영하던 카페를 폐업하시면서 각종 주방 기기들을 정리하고 계신다고 했다. 그 중에 젤라또 기계도 하나였던 것. 젤라또를 계속 만들어서 판매했고 잘 썼던거라 쓰기에는 문제가 없을 거라며 구매자인 우리를 안심 시키는 말도 해주셨다.
간단히 체크해야 할 것들을 살펴보았다. 2구짜리 였고, 뚜껑도 모두 있었고 간단한 조작 버튼이 달려있었다. 그 물건 내가 당장 살 테니까, 심지어 더 주고 살 테니까 나한테 파세요! 라고 당당하게 말 한 것 치고는 황당한 질문을 드렸다. 판매자분이 사용하셨을테니까 간단하게 여쭤보면 될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이거, 어떻게 사용하나요?”
“아. 글쎄요. 다른 직원이 썼어서 저는 잘 모르겠네요.”
아뿔싸.
“하지만 잘 작동은 됩니다!”
정말로, 잘 알지도 못하는 기계를 사서 돌아가야하는구나. 오는 내내 했던 걱정이 조금씩 피어올랐다.
실제로 만난 아이스크림 기계는 생각보다 더욱 크고 웅장했다. 정말로, 이런 것이, 나에게? 그 사실을 실감하는 것이 벅찰 정도로 대단한 위용을 자랑하는 크기였다. 그리고 그 크기만큼이나 무게도 엄청 나 사람 셋이 매달려 옮겨야 했다. 자칫 잘못하다 떨어뜨리면 기계가 망가지는 건 물론이고 발등까지 으스러질 것이었다. 이 아이스크림 기계를 진짜. 진짜로. 산다고? 기계를 들고 한 발자국씩 움직이는데, 그 무게는 나에게 묘한 설렘과 책임감 같은 것들로 치환되어 손을 묵직하게 누르는 것 같았다.
트렁크에 딱 맞게 싣고 판매자분께 돈을 드리고, 우리는 다시 차에 올랐다. 아이스크림 기계의 무게 때문에 확실히 차는 묵직해져 있었고 엑셀을 밟는 발에도 더욱 더 힘이 들어갔다. 처음 와보는 지방의 동네까지 와서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물건을 사서 돌아간다니. 참, 어이없고 또 재미있는 순간이었다.
서울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하루가 넘어 간 늦은 밤이었다. 아이스크림 기계를 놓을 공간조차 마련하지 않은 상태여서 그 날은 트렁크에 보관해두고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침대에 누웠는데 잠이 쉽게 오지 않았다. 그러니까 우리 집 지하 주차장에, 나의 아이스크림 기계가 놓여있다는 거잖아? 오랜 시간 운전을 하고 돌아왔는데도 아이스크림이 주는 도파민에 내내 각성 상태였다.
살다보면 ‘무모함’이라는 게 필요할 때가 있는 법이다. 그런데 쉽게 무모할 수도 없는 법이다. 어떤 일이든 결과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하는데, 무모한 일에는 책임이 더 커질 것 같으니 말이다. 그러니 멋지게 무모하려면, 믿는 구석이 필요하다. 믿는 구석이 있으면 쉽게 무모한 일들을 많이 벌릴 수 있겠지. 믿는 구석은 나의 경제력 혹은 부모의 경제력, 집안, 인증된 커리어, 대단한 운빨 같은 것들이 있겠으나 그 때의 나에게 (그리고 지금의 나에게도) 해당 될 만한 건 없었다. 그런데도, 이렇게 무작정 무모해져도 되는 걸까?
딱 하나, 이상한 자신감이라는 게 있었다. 무작정 젤라또 교육을 들어도 되고 아이스크림 기계를 사도 된다는 자신감. 이건 아이스크림을 하고자 하는 나의 마음을 잘 세심하게 알아주는 든든한 지원군인 우리 동료 덕분이었다. 나보다 인생의 많은 단면에서도, 일적으로도 더 넓은 경험과 식견을 가지고 있어 하염없이 따르는 동료다. 아이스크림을 하기 전, 모든 일(심지어 스스로 조차에게도)에 자신감이 없어하던 나에게 그랬다.
“나는 우디를 믿어요. 그러니까 스스로 자신감이 없어지면, 우디를 믿는 나를 믿어요.”
살면서 들어봤던 말 중에 이만한 위로, 감동, 믿음, 소망, 사랑 기타 등등 좋은 모든 말,, 같은 것이 없었다.
그러니까, 나에게 믿는 구석은 나에게 자신감을 심어준 ‘사람’에 있었다. 이 날 갑작스럽게 아이스크림 기계를 사러 가야한다는, 무모해질 타이밍까지도 알려주는 나의 든든한 동료 덕분. 앞으로 어떻게 일이 풀릴 지 모르지만 나를 믿고 우리를 믿는 마음으로, 나는 그렇게 무작정 아이스크림 기계를 사버렸다.
그 후 냉동고도 구매하여 아이스크림 기계와 함께 자리를 잡았다. 매뉴얼을 찾고 유튜브를 뒤져 아이스크림 기계 작동법을 알아냈고 아이스크림 기계는 다행히 잘 작동되었다. 내가 ‘우디’라는 닉네임을 쓰고 있어, 영혼의 단짝마냥 아이스크림 기계에는 ‘버즈’라는 이름도 붙여주었다.
이제 아이스크림을 만들고 하고 싶은 걸 하기만 하면 될 것 같았는데, 나를 믿는 구석에 무모함도 있었는데. 너무 ‘무작정’ 했던 걸까. 그 ‘무작정’했더니 탈이 나고야 말았다. (다음 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