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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기쓰는 복학생 Dec 27. 2023

영화관과 팝콘

영화를 볼 때도 미국 물가는 적응이 안된다

전역 후 미국 가기 전에 자주 영화관에 갈 때는 혼자냐 둘이냐 관계없이 매번 팝콘 세트를 사먹곤 했다. 지금 보면 약간 팝콘이 정말 맛있어서였다기 보다는 그냥 영화관이 갔기 때문에 관성적으로 사먹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여기 와서는 그런 관성을 완벽하게 차단해주는 비싼 가격 때문에 혼자서는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


20달러, AMC에서 고메 팝콘과 음료(라지 사이즈 기준) 가격이다. 물론 달콤짭짤한 팝콘과 입안에서 톡쏘는 탄산음료가 영화를 보는 동안 가져다주는 즐거운 미각적 자극은 영화가 가져다주는 긍정적인 느낌을 극대화 시켜준다. 게다가 팝콘을 먹느라 손가락에 치즈나 마늘, 혹은 양파 가루가 묻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핸드폰을 못 만지게 돼 영화라는 제한된 시공간적 경험에 좀 더 깊게 몰입하게 만들어주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팝콘은 최소한 나에게만큼은 단순한 미각적 즐거움을 넘어 부족한 집중력으로도 2시간 넘는 영화에 몰입하게 만들어주는 중요한 장치로서 역할을 한다.


그러나 그런 이점들을 생각해도 매번 20달러를 내야하는 건 큰 부담이다. 특히 방학에는 샌프란시스코까지 가서 영화를 자주 보는데, 한 번에 왕복 교통비 10달러에다가 20달러 팝콘 세트를 내면 최소 30달러는 나가는 꼴이니(거기다가 외식까지 하면 으…), 학교 수업과 과제라는 시간상의 제약 없이 주변을 돌아다니는 게 일상의 대부분인 방학에는 시간과 비례해서 올라가는 비용적인 부담이 특히 크게 느껴진다.


처음에는 한 달에 25달러만 내고 일주일에 3번씩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게 매우 가성비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높은 효율과는 별개로 집과 학교만 오가던 학기 중과 달리 훨씬 밖을 자주 나돌아다니는 지금 상황이 더 많은 소비의 기회를 창출하기 때문에 0에 수렴하던 평소와 비교하면 비용 자체는 더 많이 나가는 것 같다.


그래서 어떻게든 군것질 없는 영화 관람에 익숙해지려고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다. 콜라는 물병을 따로 챙겨와서 상영 도중에 마시고, 팝콘은 바나나 같은 과일로 대체한다. 이런 식으로 행동 양식을 바꿔나가면서 쓸데 없는 소비를 최소화하는 동시에 만족도를 떨어뜨리지 않으려고 하는데, 역시 필요한 거, 갖고 싶은 거 대부분 얻으면서 살아온 나에게 절약이 배어있는 생활은 너무나 힘들다. 지금 와서 평소에 엄마가 나를 대하는 태도를 돌아보면, 이런 나의 습성을 제대로 꿰뚫고 있던 것 같다. 딱히 사치는 안 하지만 다양한 곳에 씀씀이가 있는 탓에 돈을 아끼지는 못하는, 전형적인 남편감으로서 꽝인 그런 유형.


마침 오늘은 물병을 집에 두고 왔고, 그렇다고 물 마시러 상영 도중에 나가기는 싫어서 저녁은 외식 안하고 집에서 먹는다고 합리화하면서 한 컵에 8달러짜리 콜라 슬러시 음료를 사먹었다. 음료 큰 컵 하나에 8달러…. 한국이었다면 무슨 일이 있더라도 절대 안 사먹었을텐데 보상심리라는 게 이래서 참 무섭다. 괜히 아까운 마음에 영화가 끝나고 나가는 길에 음료를 리필해갈까 싶었지만, 이게 뭐라고 한 번 더 먹어봤자 달라질 거 없다는 한계효용의 법칙을 떠올리고는 빈 컵을 마음 속에 남아있던 미련과 함께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그래도 이 콜라 슬러시, 나폴레옹과 조세핀의 롤러코스터 같은 사랑과는 달리 일관적으로 맛있었다. 이러다 다음에 또 사먹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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