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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버레터 Sep 23. 2023

질문의 품격

“택시요금이 얼마인지 아십니까?”라는 질문이 부적절한 이유

요즘은 좀 뜸해졌다고는 하지만,

국회에서 장관이나 총리 등을 대상으로 청문회할 때면

자주 나오는 질문이 있다.


“택시요금이 얼마인지 아십니까?”

아니면 “버스요금이 얼마인지 아십니까?”이다.


자기가 이용하는 교통수단의 기본요금이 얼마인지 아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택시나 버스를 이용할 때 기본요금이 얼마인지를 크게 의식하지 않는다.


필요하면 이용하는 것이다.

교통수단 선택이 요금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내가 목적하는 바를 충족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빨리 갈 수 있는가? 아니면 편하게 갈 수 있는가?


더구나 요즘은 기본요금보다 목적지까지 갈 때 예상되는 요금을 알려주기 때문에 기본요금은 더 의식하지 않게 된다.


그러면 왜 그러한 질문을 하는가?

우선은 자신은 잘 안다고 인식시키며,

질문을 받는 상대에게 창피를 주는 게 목적인 것 같다.

그러나 질문을 하는 본인도 답을 잘 알지 못하다

질문을 위해 답을 알았을 수 있다.

자신도 평소 잘 모르는 것을 아니 신경쓰지 않는 것을

상대는 꼭 알아야 하는 것처럼 여기는 것은 폭력이다.


물론 그러한 질문은 다른 중요한 얘기를 꺼내기 위한 도입부일 수도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부적절한 질문이다.

대화의 기본은 공감과 소통이다.

상대를 면박한 후에 이어지는 대화가

아무리 국정을 논하는 자리라 해도 온전할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만약 서민경제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 본론이었다면

“임금보다 물가가 더 빠르게 오르는데 그에 대한 대책은 무엇입니까?“라거나 ”종업원의 평균 연봉에 비해 사장의 연봉은 몇 배이며 적정하다고 생각합니까?“ 등 본질적인 질문을 해야 할 것이다.


굳이 도입부의 대화가 필요하다면 “택시 기본요금이 얼마입니까?” 대신에 “앱을 이용해서 택시를 이용해봤습니까?”라고 묻자. 그리고 우선 상대의 긴장을 풀어주고 마음으로 소통하자.


정기국회가 시작되어 많은 질의가 쏟아져 나올 텐데,

알맹이 없는 질의로 시간을 때우기보다

국민을 위해 진정으로 필요한 질의를 하여

국회의원으로서 남은 임기를 잘 마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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