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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자차 Jul 20. 2024

영화 낙원의 밤 후기 (3)

왜 조폭은 정장을 입는가

제목은 거창하지만 실은 정말! 영화를 볼 때마다 이해가 안 갔던 점이라서 글을 써보려고 한다. 대체 조폭은 왜 정장을 입는가!? 요즘처럼 자유복장 근무인 시대에!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 ‘정장’을 검색하면 총 9개의 동음이의어가 등장한다. 그중 네 번째 뜻의 정장이 내가 찾고자 하는 뜻의 정장이다.

     

정장은 한자로 正裝, 바를 정과 꾸밀 장 즉, 바르게 꾸민 복장을 말한다. 어휘는 명사로 분류하고 참고어휘는 ‘약장(略裝)’이 있다. 이와 비슷한 말로 양복도 있는데, 아래와 같다. 큰 바다 양과 입을 복을 합쳐 洋服을 쓰고, 서양식 의복 그리고 남성의 서양식 정장을 의미한다. 참고 어휘는 ‘한복(韓服)’이다.

 

    

출처 구글 18세기 남자 복식

이 정장은 17세기까지 화려하던 옷을 실용적으로 바꾸려던 유럽 남자들의 노력이 18세기까지 이어진 결과다. 과거의 복잡하고 화려한 옷을 어떻게 하면 어울리면서도 실용적으로 입을까를 고민했다니! 티셔츠를 만들 생각은 안 하고 어떻게든 그 시대의 복장을 활용한 점이 생활한복을 떠올리게 해서 재밌다. 과거 유럽의 귀족들을 보면 남자들도 옷이 참 화려하던데, 이 새롭게 개발된 정장은 같은 천으로 만들어 화려하진 않지만 통일된 디자인에 안정감을 주고 무엇보다도 만들기 편하다. 천 하나면 완성이니까. 피키 블라인더스의 완성의 이 현대식 정장이지.


     

출처 네이버 사내맞선, 킹더랜드, 김비서가 왜 그럴까


아무튼. 드라마 속 남자 주인공이 입고 등장하면 일단 그 역할이 무엇이든 간에 조금 더 멋있어 보이는 효과가 있는 이 옷은 인물을 가리지 않는다. 재벌 남주도 더 재벌스럽게(?) 보이게 만드는 이 정장은 대체 무슨 이유에서 그런 걸까. 드라마를 보면서도 정말 궁금했음. 가만 보자, 일상생활에서 정장을 자주 입고 다니는 사람은 재벌과 사기꾼이네. 사무직에 대한 환상의 극치를 달리는 복장이구만. 그래서인지 정장에 관한 흥미로운 책이 많다. 여기 몇 개의 책은 그 자리에 서서 후루룩 읽었던 기억이 난다. 굉장히 자세하게 나와서 읽고 나서 무척 만족스러웠다. 배부른 독서~ 냠냠~ 사각사각~

   

-슈트, 남자의 미래를 바꾸다

-지금부터 품격 있게 입는다

-남자의 복장술

-성공하는 남자는 수트를 입는다

-모던 슈트 스토리

-마흔을 완성하는 남자의 완벽한 슈트핏

-슈트 드로잉


등등 이 밖에도 내가 모르는 수트와 슈트에 관한 책이 많겠지. 그리고 ‘슈트’가 맞다. 아무튼, 이 슈트는 ‘남성’과 ‘완벽’과 ‘품격’과 ‘미래’를 연결 지으며 마치 슈트를 입거나 입을 사람은 성공의 한 척도를 이룬 것 같은 모습을 그려내게 한다. 처음 이 정장이 들어왔을 때도 이런 느낌이었을까? 지금 이 21세기에 새로운 복장을 떠올린다면...음...새로우면서도 품격있는 복장은...음 없는 것 같다. 미래의 의복은 어떨까나. 아직도 여전히 이 정장은 조금 남다른 느낌을 주곤 하는데, 대체 왜 그런 걸까. 왜 품격이 느껴지지?


     

출처 구글 영국식, 미국식, 이탈리아식 정장

가설1. 옷의 정석이라서?

정장은 디자인이 간결하고 단순하다. 딱 필요한 길이에 딱 필요한 만큼의 천만 사용되었다. 소매길이도 자켓의 총장도 바짓단도 딱 알맞은 길이다. 적정선을 잘 지킨 옷이라 굉장히 시각적으로 안정적이고 무게가 느껴진다. 소매가 짧았더라면? 총장 길이가 조금 더 길었더라면? 바짓단이 너무 퍼지거나 발목이 보였더라면? 아마 정장이 주는 분위기는 느끼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 옛날에 봤던 책에서 영국식 정장이랑 미국식 정장의 이미지를 비교하는 내용을 본적이 있었는데, 미국식 정장은 품이 크고 직선이라 남성적인 느낌을 주고 영국식은 몸 선을 부드럽게 흐르면서 과하지 않고 부족하지도 않은 품을 추구해서 훨씬 캐주얼한 느낌을 준다고 했던 것 같다. 너무 오래전에 읽어서 정확하진 않음. 그래서 요즘 정장 중에 바짓단이 좀 짧거나 통이 너무 좁으면 옛날 중고등학교의 남학생들이 입던 쫄쫄이 교복이 생각난다. 그땐 몰랐는데 교복은 정장의 연습 같다고 생각돼서 완벽한 정석의 모양 그대로 입는 게 가장 예쁘다.


출처 네이버 연인, 신입사관 구해령

가설2. 노동에 불편한 복장은 곧 신분을 드러내서?

간결한 디자인과는 별개로 절대 편안한 복장은 아니다. 불편한 복장은 평상시에 입지 않는다. 불편한 옷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린 어느 시대나 모양만 다를 뿐 평범하지 않은 복장을 봐왔다.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평범하지 않으면서 노동에도 적합하지 않은 옷. 예로부터 머리에 각인된 불편한 복장의 의미가 신분이지 않았을까. 옛날엔 신분이 극명하게 갈려 생활에도 영향을 끼쳤을 테니, 지배 계급이 입던 화려하고 노동에 걸맞지 않은 옷은 곧 귀한 신분, 부귀, 지배계층이란 의미를 은연중에 전달했을 테다. 그런 세월이 길고 길었으니까 인류의 유전자에 남겨진 것은 아닐까? 잉여 생산물이 생겼을 때부터 권력 다툼이 시작되었을 텐데, 청동 거울 걸고 있었으면 농사짓기 어려웠을 것 같다. 짚신 신고 밭일하지, 갖신 신고 하진 않으니까.


     

출처 네이버 이리와 안아줘, 써치

가설3. 제복과 비슷해서?

정장과 가장 비슷한 옷을 따지자면 현대에선 제복을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구성하고 있는 것도 비슷하고 모양도 비슷하다. 제복은 특수한 목적이 있을 때만 입고, 어떤 분위기를 조성한다. 똑같은 티셔츠를 단체로 입고 있으면 단체관광 온 것 같지, 어떤 특수한 목적이 느껴지진 않는다. 하지만 제복을 입은 직업군은 한 사람만 있어도 그 느낌이 다르다. 절벽에 매달려 있는데 티셔츠 입은 사람이 오면 ‘누구지?’ 싶지만 구조대 옷을 입은 사람이 오면 ‘살았다’ 싶은 생각이 들지 않나. 꿈에서 누가 흰옷을 입고 나오면 ‘가위 눌렸네’ 하고 검은색 옷 입고 나오면 ‘벌써 간다고?’하잖나. 정장이 제복과 비슷하니까 머리에서도 제복과 비슷한 인식을 하지 않을까 싶다. 일단 그런 인식이 먼저 들어오니까 그 인식으로 만들어진 그림 위에 정장이라는 현대적 의미가 들어가면서 합쳐진 거다.


     

흠 일단 이 정도만 생각이 난다. 하지만 위 가설은 조폭이 왜 정장을 입는지에 대해 뭔가 납득되지 않는다. 뭔가 부족해!


     

사람1 [반바지],[반팔 티셔츠],[모자],[신발],[아메리카노]

사람2 [정장],[검정색],[구두],[주간시사경제지]

사람3 [자켓],[회색],[바지],[서류가방]

사람4 [추리닝],[운동화],[슬리퍼],[샌드위치]

사람5 [크룩스],[잠옷세트],[애착이불],[곰인형] 

    

문제. 이들 중 마피아와 경찰을 찾아라.

     

나라면 마피아를 5로 해서 ‘자고 일어나니 내가 세계 최강 마피아?’같은 것을 뚝딱 만들었겠지만, 오히려 2를 마피아로 하는 게 더 못 찾지 않을까. 도망갔을 때 잠옷은 너무 튀지만, 정장은 자켓을 벗어버리면 갑자기 회사원이 되니까 숨길 수 있을 것 같다. 경찰은 1이거나 4가 좋을 것 같다. 마치 아침에 빵 사러 나온 그 동네 주민인 것처럼 잠복하기에 딱 좋은 옷이다. 하 그럼 안 되는데. 조폭들이 자켓을 벗고 숨기 위해서 정장을 입는다고? 이미 죽었을 것이다. 그런 장면은 본 적이 없다. 뽀대나지 않아! 신세계의 정청은 빠글머리에 하~얀 정장에 기내용 슬리퍼를 신고 나타났다고.

    

이쯤에서 느닷없는 문제! 제복의 기원이 정장일까 아니면 정장의 기원이 제복일까? 정답은 정장의 기원이 제복이다. 찾아보니 재밌는 사실을 발견했다. 루이 14세가 TPO를 갖춘 복장을 선언하면서 쥐스토코르가 등장했고, 이는 근대 시대의 프락과 질레, 판타롱을 갖춘 프록 슈트로, 다시 현대의 뒤 꼬리가 긴 테일 코트로 변하다 19세기 영국에서 뒤 꼬리가 잘린 턱시도가 나오면서 점점 다양한 정장이 쏟아져 나왔다는 점. 그리고 현대식 정장에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은 바로 영국 국왕 에드워드 8세이며, 더 재밌는 것은 영국 국왕 찰스 2세가 귀족들에게 절약을 가르치기 위해 남성복 결의안을 발표했다는 점이다. 얼마나 화려하게 꾸몄으면 왕이 직접 나서서 그랬을까 싶다가도, 화려하게 입고 싶은 것이 인간의 본능이란 생각도 든다.


아무튼 가설4를 끌어내기 위해 사족을 붙여봤다. 이것이 문단의 순서를 고르는 문제로 나왔다면 고득점 문제가 아니었을까? 출처는 네이버 ‘쥐스토코르’, ‘정장의 기원’.

 

   

가설4란 즉, 사회에 올바르게 편입되지 못한 사람의 외로움과 자신의 어두운 면을 감추려는 시도이다. 아까 문제를 냈던 마피아와 경찰과 비슷한 결이다. 조폭은 사회에서 환영받는 직업군이 아니다. 직업이라고 할 수도 없다. 정장을 입는데도 타인에게 주는 공포심과 두려움은 여전하고 그들이 지나간 자리에 평화란 씨앗도 뿌리기 힘들다. 그런 조폭들도 살아남고자 권력기관과 결탁해야 했을 테고, 양지에 있는 그들과 만나면서 어떤 선을 느꼈을 것 같다. 범죄자-경찰-변호사-검사-판사는 비슷한 운명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내가 만약 조폭이라면 양지에 있는 그들을 보며 분리된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았을 테다. 이상했겠지? 가장 자주 만나는 사람들인데 누구는 음지에 누구는 양지에. 누구는 쫓기고 누구는 쫓고. 돈이나 권력 그 무엇으로도 감출 수 없는 그늘과 햇빛을 느끼며 더더욱 정장을 찾지 않았을까. 사람들 틈에 섞이면 정장을 입은 그들은 평범한 회사원처럼 보이기도 하니까. 그러면서 정장이 주는 멀끔함과 위압감은 가져가고 싶은 욕심쟁이들이 아니었을까.


     

출처 네이버 낙원의 밤 / 무서운 마상길의 패션들...하지만 키가 커서 정말 멋져


그런데 영화 속 마상길은 자장면을 먹으러 갈 때를 빼고는 캐주얼하게 하얀 옷을 입고 등장했다. 아마 자신의 키가 굉장히 크기 때문에 정장을 입으면 튄다는 것을 의식해서 그랬지 않았을까. 혹은 이사라는 직함이면 누가 봐도 힘이 있으니 굳이 정장을 고집하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또 다른 이유라면 영화에서 마상길은 일반적인 조폭과는 좀 다른 태도를 보인다. 이건 영화 전반적으로 그러한데, 한국의 정서를 담은 것이 곳곳에 잘 보이고 분위기를 전환시키는 요소로도 나온다. 마상길은 조폭이지만 위아래를 따지고, 체면을 따지고, 약속을 중요하게 여기고, 나름의 인간적인 면모와 스타일 구기지 않으려는 노력도 한다. 조폭 생활에서 이사까지 달려면 얼마나 지긋지긋하게 그 생활을 해야 했을까. 오히려 정장을 안 입음으로써 일반적인 조폭과는 다른 캐릭터라는 것을 보여줬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영화 속 마상길은 나름 인간적이고 도리가 있었다. 점퍼가 계속 눈에 보였음. 좀만 짧으면 사고 싶다.


     

출처 네이버 엑소 러브샷, 코코밥 / 내가 엑소를 좋아했던 이유 중 하나는 코디가 다 너무 예뻤다는 점! 반짝반짝하고 화려했음


확실히~ 남자들도 화려하고 파격적으로 입었을 때 훨씬 더 멋있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드라마 속 양아치나 망나니로 나오는 재벌을 좋아한다. 도라이 같은 내 취향. 철없이 혹은 무섭게 막장으로 살면 살수록 옷은 화려하고 반짝이는 그들... 내 최애 캐릭터랄까. 시계와 구두도 번쩍번쩍^^ 아앗 눈부샤>_<* 그들은 정장을 입어도 수수하게 검정색 이딴 건 안 입는다. 검정을 입을 땐 상갓집에 갔을 때 혹은 청에 사진 찍히러 갈 때... 보통은 빨강, 파랑, 초록 같은 신호등 정장도 입고 은은하고 우아한 무늬가 들어간 정장도 잘 입는다. ♥정말 예뻐♥평생 입어♥ 예쁜 여자들과 파티 갈 땐 벨벳을 입고 가기도. 세로 줄무늬 정장은 너무 수수한 복장이다. 나름 조신하고 예의를 차려야 할 때 입는 듯. 그리고 정장이 아니더라도 아주 예쁜 셔츠와 바지를 쉼 없이 보여주기 때문에 아주 재밌고 신난다. 색깔도 조합이 좋아~ 머리부터 신발까지 센스가 기막혀~ 완전 ENFP 그 자체. 화려한 옷과 화려한 말투와 화려한 복장과 화려한(?) 예의를 지닌 그들을 보는 재미가 아주 쏠쏠하다는 것이지~ 그러다 갑자기 퇴마 되기라도 하면 옷이 수수해진다. 누가 애 퇴마시켰어!


 

    

출처 네이버 리디북스, 하렘의 남자들 / 리디북스는 특히 표지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렇게 그림을 잘 그린다니...! 네이버도 표지가 예쁘지만 리디북스가 짱이야

그러고 보니 예전 드라마에는 조끼를 입지 않은 정장이 많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쓰리피스의 정장을 입고 대표 냄새를 뿜뿜 풍기는 남자 주인공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한때는 누가 조끼를 입느냐며 촌스럽다고 생각했었는데, 실은 난 그때도 쓰리피스를 좋아했었다. 완벽한 정석 같아서...! 이왕 입을 거면 정석으로 올바름을 추구하는 나로서는 여성의 정장에 없는 그 조끼가 굉장히 신기했고 눈길을 끄는 요소였다. 여자들도 바지 정장을 입기 때문에 그 조끼가 아니라면 남녀 구분이 없는데, 확실히 그 조끼를 입으면 남성의 정장이라는 게 느껴진다. 뱃살이 없는 날씬하고 탄탄한 코어를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앗 참. 조끼 정장의 핵심은 배가 나오지 않아야 한다. 단추 벌어지고 접히면 재미없엉. 이걸 제일 잘 구현하는 건 리디북스나 로맨스 판타지 속 남자 주인공들이다. 하하하하하. 아무튼 여자의 복장엔 없는 거라서 신기하고 눈이 절로 간다.


     

음, 너무 길어졌다. 그만 해야지. 아무튼 그냥 간단하게 정의하자면 조폭이 정장을 입는 이유에 대한 내 생각은 가설4라는 것.

     

확실한 건 화려한 옷을 입는 캐릭터는 내 최애라는 것~ 너무 좋아~ 많이 보여줘~ 화려화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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