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장인물
등장인물들과 이들의 낙원이 무엇인지, 낙원을 맞이했는지 알아보자. 그런데 벌써부터 슬프다. 좋지 않은 예감이 들어...크흡. 이럴 때 쓰는 말이 갑자기 생각난다. 찬란한 슬픔. 주입식 교육이 나쁘지 않다.
박태구 역 / 엄태구
태구의 낙원은 두 가지다. 가족의 안정, 즉 누나의 건강이다. 비록 아빠는 다르지만 같은 엄마 배에서 나온 탓인지 아니면 유일한 피붙이라 그런 것인지 누나와 조카에 대한 애정이 상당히 깊은 게 보였다. 그런 태구에게 누나의 질병과 어린 조카는 얼마나 눈에 밟히는 요소였을까. 누나와 조카를 위해서라도 이제 조폭 생활을 끝내고 싶었을 태구가 잘못 짚은 생각 하나로 낙원은커녕 죽음으로 달려가는 모습에 탄식이 흘러나왔다.
태구의 낙원은 실패한다. 누나와 지은이의 죽음 그리고 믿었던 형님인 양도수의 배신으로 완벽하게 실패한다. 그래서 영화 끝에 마상길이 했던 생각을 좀 해보라는 말이 유독 와닿았다. 조금만 더 생각해봤다면, 영화 첫 장면에 나왔던 당랑거철을 잘 생각해 보았더라면 미래가 달라졌을 것 같다. 조금 희망차게 적어본다면, 그래도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재연을 살리고 자신이 먼저 죽었다는 점이다. 태구는 재연의 말을 들으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누나, 지은이, 진성이, 그 외의 자신이 원인이 되었던 죽음들을 떠올리지 않았을까.
재연 역 / 전여빈
재연의 낙원은 애초에 없다. 살려는 의지도 없고 진짜 자신의 가족도 이미 죽은 뒤라서 재연의 낙원은 없다. 한국에선 살날이 겨우 한 달만 남은 시점에서 뾰롱 나타난 태구가 그나마 흥미를 끄는 사람이었는데, 그 사람마저도 좋은 인연이 아니었다. 영화 내내 재연은 어떤 낙원을 바랐던 걸까 생각했다. 미국에서 20%의 확률로 살기? 태구가 죽지 않는 것? 내 생각엔 자신의 인생에서 원망하는 마음이 사라지는 것 같다. 재연의 슬픔은 슬픔에 매여있던 것 자체였으니까.
재연의 낙원도 실패했다. 그럴 만도. 가족도 삼촌도 태구도 자신의 삶도 모두 제주도에서 막을 내렸다. 육지에서 관광지로 낭만 가득하게 바라보는 제주도에서 재연은 늘 슬프게만 살아갔다. 이 중에서 재연의 낙원은 별다른 선택지가 없어 보인다는 점에서 가장 성공하기 어려운 낙원으로 보인다. 그래서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통쾌한 결말이면서도 이렇게 계산한 재연에게 이해와 연민이 들었다.
마상길 역 / 차승원
마상길의 낙원은 박태구, 양도수와 얽히기 전이었을 것 같다. 오히려 마상길은 이 두 사람 때문에 낙원이 깨진 사람처럼 보인다. 뭐 그렇다고 조폭에게 낙원이랄 게 뭐냐 싶지만. 앗 그렇다면 마상길의 낙원은 계산서가 없는 삶이었나? 아니지, 계산서가 없으면 일이 없는 거잖아. 사람 욕심 많던 회장님이 당겨오고 싶던 태구를 데려오고 평소처럼 북성파의 이사로 지내다가 조용히 은퇴하는 게 그의 낙원이었을까. 영화 내내 조폭이란 것만 빼면 그냥 사고 친 것 수습하러 다니느라 현타 온 사람 같았다. 내가 이사 된 지가 언젠데 이 나이에 이런 걸, 이런 느낌? 그래서 스타일 구긴다는 대사가 텁텁한데 웃겼다.
근데 어떡하지. 그런 마상길도 실패했네. 저승에 갔던 마상길이 하얀 옷을 입고 나타나 전자담배를 피우며 버르장머리 없다고 할 것 같으니 조금 더 찾아보자. 마상길의 낙원이 성공하려면 사실 양도수만 죽었으면 됐는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그러니 마상길 입장에서 태구가 죽어야 정확한 계산법인데, 아뿔싸. 재연을 잊어버렸다. 재연의 삼촌을 죽이기 전에 왜 덤핑을 했는지 알았더라면 재연에게 빚지는 일도 없지 않았을까. 그나저나 마상길 점퍼가 되게 예뻐서 자꾸만 눈길이 갔다. 모델은 역시 멋있어.
양도수 역 / 박호산
양 사장의 낙원은 너무너무 투명하다. 나가려는 태구 붙잡는 것 그리고 사업에 지장을 준 북성파를 태구의 손으로 손 봐주는 것. 성공하면 좋고, 실패하면 태구에게 넘기기. 손 안 대고 코 풀기가 양 사장의 낙원이다. 애초에 양 사장은 봐주는 사람이 있어서 안 죽으니까, 양아치 짓을 하며 태구를 대신 보낸 거다. 그리고 어찌저찌 영화 내내 양 사장의 낙원은 고비를 넘기며 성공을 점쳤다.
그러나 양 사장 또한 낙원이 닿은 순간 실패하고 만다. 마상길의 계산법은 일대일의 계산법이라면, 양 사장은 카드 돌려막기 같았다. 언젠가는 터질 문제를 계속해서 안고 가는 양 사장의 해결법이 떨떠름하고 신경이 쓰였다. 돈이나 물건으로 돌려막는 것도 찜찜한데 사람으로 막으니 인재가 발생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양 사장은 당장은 살아도 언젠가 죽게 되지 않았을까. 마상길이 지켜보다가 죽였을 수도. 그리고 양 사장의 얄팍한 꾀에 충성심으로 넘어간 태구와 진성이의 스러진 죽음이 안됐다.
쿠토 역 / 이기영
쿠토의 낙원은 재연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애초에 낙원이랄 게 없는 것이 쿠토의 낙원이다. 자신 때문에 형제와 가족이 죽어버렸고, 남은 조카는 아픈데다 원망을 들을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자신으로 인해 생긴 참극을 늘 마음에 담아두고 살았을 테고, 그 죄책감을 씻어내기 위해 조카 재연을 살리는 데에 온 힘을 다하며 목숨을 건 덤핑을 한다.
쿠토의 낙원이 실패한 이유는 무리한 덤핑을 써서 그런 것 같다. 중간에서 너무 마진을 많이 떼먹어서 양쪽에서 눈초리를 받은 까닭이 아닐까 싶다. 애초에 북성파에서 눈여겨보던 인물이었는데, 마침 양 사장이 얽히면서 엮어버렸을 것 같다. 쿠토의 죽음이 재연의 복수를 가져왔지만, 만약 재연이 복수하지 않았더라면 꽤 만족스러운 거래였겠지? 쿠토네 가족과 태구의 가족은 평행이론이 있어 더 슬픈 관계다.
진성 역 / 조동인
영화에 자주 나오진 않지만, 초반부 형님의 조카인 지은이에게 두 팔을 번쩍 흔들며 바보같이 웃는 것이나 끝까지 태구를 배신하지 않고 충심을 지키는 모습이 비슷하게 보였다. 충심은 눈에 보이지 않는 거라 태구도 진성이가 배신했다는 말에 반신반의하던데, 태구나 진성이나 성격 참 똑같다. 조금 더 살폈더라면 낙원이 이뤄졌을까. 태구와 함께 북성파에서 시작하기엔 두 사람의 충성심이 눈 앞을 가렸다. 주변을 살피지 않고 너무 사람을 믿은 죄다.
부산 깡패 역 / 현봉식
북성파와 러시아 사이에 끼어서 이득을 보려고 했던 황 사장과 그 부하들. 이미 다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만 올려놓으면 됐을 테니 속으로 얼마나 좋아했을까. 하지만 애초에 계산이 잘못된 곳에 발을 들인 탓에 재연의 총알을 피하지 못했다.
이 밖에도 박 과장, 도 회장, 태구의 누나 재경과 지은이까지... 도 회장은 왜 목욕탕에서 그런 말을 해서 태구에게 진짜 오해를 사버리고, 박 과장이야 뭐...승진에서 또 밀리겠고, 재경은 너무 안 되었다...살 날도 얼마 안 남았지만 지은이는...? 아이패드를 선물로 받고 미니미니를 실컷 보게 되어 즐거워했던 까만 차 안의 지은이의 얼굴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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