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티스트 Oct 05. 2023

회상

2019년 9월 7일

2019년도 9월 7일 태풍 링링이 지나간 날

이날 연세대학교 어딘가에 앉아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딸아이의 모교는 아니지만, 촬영 관계로 태풍 링링이 한반도에 상륙한 날임에도 어쩔 수 없이 지하철을 타고 연세대학교로 가게 되었다. 밖은 아직 고요했으며 태풍의 낌새는 보이지 않았다. 오전 나절이라 문을 열지 않은 가게들도 많았지만, 손님을 맞는 카페가 있어서 딸과 가볍게 차 한 잔을 마실 수 있는 여유도 있었다. 

     

많은 시간이 지나고 그때를 회상하다 보니 기록처럼 그려놓은 스케치한 작품들을 들춰보면 뚜렷한 이미지가 새록새록 느껴졌다.


      

‘그날이 무슨 요일이었지?’   

  

휴대전화로 요일을 찾아보니 그날은 토요일이었다.     

대학교 휴게실 통창 앞에 앉아 서서히 흔들리는 나무를 보며 바람이 점점 거세지는 걸 선명하게 지켜볼 수 있었다. 잠잠했던 바람의 세기가 시간이 지나면서 거세지자 심장도 조금씩 쿵쾅거리며 요동쳤다. 나도 바람의 강도만큼 태풍에 민감하게 동요되고 있었다. 그런 광경을 학교 휴게실에서 생생하게 지켜보고 있다니 눈앞의 나무들은 성난 사자의 갈기처럼 사정없이 마구 흔들리기 시작했다. 


'나야 상황이 여의치 않아 딸과 함께 이곳에 왔다지만......, '

 

실내를 둘러보니 젊은이들도 꽤 많이 있었는데 왠지 무척 덤덤했으며 태연스러웠다.  

    

‘이런 날도 학교를 오다니 대단하네. 젊음이란 이런 걸까?’      


무의식 중에 나 또한 그들을 따라 마음의 여유가 조금씩 생겨났다. 같은 공간 다른 사고의 동떨어진 세상에서 서서히 그들과 같은 색으로 물들었다. 문득 학창 시절의 풋풋한 그때를 돌이켜 보기도 하며 젊은이들 속에서 자리하나를 차지하고 나 또한 나의 시간을 보내보기로 했다.

짊어지고 온 가방에서 스케치할 도구를 꺼내고 모퉁이에 앉아 작업하기 시작했다. 작업을 하다 보면 보이지 않던 것 또한 유달리 선명해지고 촉각마저 섬세해진다. 한 장 두 장 그림을 그리다 잠시 밖으로 시선이 멈추었다.

창밖으로 무섭게 몰아치는 바람의 세기에 전율을 느끼며 바라보는 저 나무가 휘어져 부러질까 염려되었다. 난 마구 흔들리는 나무를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려야 했다.      


‘아휴! 이러다 유리창이 와장창 깨지기라도 하면 큰일이야.’     

 

난 상상에 상상을 거듭하며 혼자서 재난 영화 몇 편은 거뜬히 만들었다. 하지만 다시 주위를 둘러봐도 바깥 날씨에 그렇게 동요하는 젊은이는 없었다.


난 잠시 생각을 떨쳐내고 스케치 작업에 몰두하며 바쁘게 손을 움직였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세차게 흔들리던 나무 가지들도 어느새 조용해지고 바람도 잦아들기 시작했다. 난 그런 변화를 지켜보며 젊은이들 속에 섞여 나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갈 즈음에는 바람세기도 훨씬 잦아들어 태풍이 정말 지나갔나 싶었지만, 실외로 나와보니 쓰러져있는 나무가 꽤 보였고 어수선한 바깥 풍경은 태풍이 훑고 간 자리가 역력히 남아있었다. 


‘아휴!’


자연 앞에선 한낱 작은 개미처럼 미약한 인간인 우리, 한숨이 툭 튀어나왔다. 

난 눈길을 거두며 더한 피해가 없길 바라며 딸과 함께 학교 밖으로 나가는데 순간 머릿속에 스치는 하나가 있었다.     


‘우리 집 유리창도 괜찮을까?’    

 

이런 생각에 미치자 내 걸음은 이내 어느 때보다 빨라졌다.          

작가의 이전글 어린 왕자의 선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