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rosh 직장인 Jun 15. 2024

주체가 되어가는 과정 : 소설<완구점 여인>-오정희

오정희의 <완구점 여인>을 통해 인생을 알아보자.


1. 오정희는 누구인가?


 오정희는 1947년 서울 출생이며, 서라벌예대(현 중앙대학교)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그리고 1968년 그녀의 나이 21세에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완구점 여인>이 당선됐으며, 현재까지도 한국에서 최연소 신춘문예 등단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작가이다.

 필자에게 한국 문학사에서 가장 천재적인 소설 작가가 누구냐고 물어본다면, 남자는 ‘김승옥’, 여자는 ‘오정희’라고 말할 것 같다. 오정희 작가를 꼽게 된 이유는, 그녀의 나이 21세에 신춘문예에 등단한 부분도 있겠지만, 오늘 소개할 <완구점 여인>을 보았을 때, 21살이 가질 수 없는-타고난- 작문 솜씨가 그녀의 글 속에서 엿볼 수 있었다.1)

 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위원회 위원 시절(2014년) 블랙리스트 작가 배제 지시를 적극적으로 이행한 사람 중 한 명이지만, 오정희 작가의 소설은 한국 문학사에서 상당히 중요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한다.2)

 오정희의 소설은 분량이 짧은 축에 속한다. 그렇다고 해서 휙휙 빠르게 읽을 수도 없는 소설이지만, 박완서나 도스토옙스키와 같이 방대한 분량의 서적보다는 짧은 단편 소설을 추천했을 때, 여러분들의 읽을 가능성이 커진다고 생각해, 오늘의 소설 <완구점 여인>의 재미있고 흥미로운 부분을 소개해 보고자 한다.


2. 주인공 ‘나’의 도벽3)


“태양이 마지막 자기의 빛을 거둬들이는 시각이었다. 어둠은 소리 없이 밀려와 창가를 적시고 있었다. (중략) 가로와 세로로 각각 여덟 개씩의 책상들. 나는 갑자기 모든 것이 죽음처럼 사라져 가는 어두운 교실 안에서 그것들이 서서히 살아나고 있음을 느낀다.”(p. 80)

 <완구점 여인>의 첫 장면은 주인공 ‘나’가 아무도 없는 교실에서 홀로 있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나’는 학우들의 책상을 뒤지기 시작한다.

“예순넷의 책상들이 모두 나의 차지라는 사실이 가슴을 떨리게 한다. (중략) 창가의 놓인 책상 서랍부터 휘젓기 시작했다.”(p. 81), “매끄럽고 납작하게 만져지는 것은 지갑일 것이다. 나의 손은 서랍 속에서 잠시 망설이고 있었다. (중략) 검게 번들거리는 거울 면에 나의 몸이 비쳐 있고 그 뒤로 가직하게 교실 전체가 담겨있었다. 내 손이 한 번씩 거쳐간 책상들은 완전히 먼저의 질서를 잃고 있었다.”(pp. 82~83)

 주인공 ‘나’에게는 도벽이 있다. 교실에 아무도 없는 어두컴컴한 시간에 그녀는 예순네 개의 책상들을 모두 뒤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다른 학우의 책상에 손을 넣어서 지갑도 만지고, -인용문에 쓰진 않았지만,- 필통도 만지고, 다른 사람의 덧신도 신어보고 쓰레기통을 뒤지며 음미한다.

 이렇게 주인공의 손을 거쳐간 책상들은 이전의 질서를 잃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서 말하는 ‘이전의 질서’란 자신의 영향이 미치지 않았던 영역일 것이다. 그녀가 사물에 대한 정복감을 얻으면서, 일종의 쾌감을 얻는 행위는 도벽에 있었다. 그녀는 도벽했을 당시 밖에 다른 학우들에게 들킬 뻔할 때, “이런 따위의 공포는 견딜 수 없다”(p. 82)라고 했지만, 뒤이어서 “다시 서랍들을 뒤졌다”(p. 82)

 ‘나’가 도벽의 긴장감으로 “구역질이 날 듯해서 입안의 냄새를 도저히 들여마실 수 없”게 될 때(p. 84), 도벽을 끝낸 후 주인공은 자주 들리는 학교 근처 완구점으로 갔다.


3. 완구점 여인을 사랑하는 ‘나’


“거리는 비에 젖어 흐득흐득 흐느끼고 있었다. 불빛이 환한 완구점 진열장에는 빨간 플라스틱 오뚝이들이 밖을 향해 서 있었다. 그리고 휠체어에 앉은 여인은 말끔히 씻긴듯한 표정으로 빗물이 뿌려지는 거리를 내다보고 있었다.”(p. 84)

 ‘나’에게 있어 ‘완구점 여인’의 외견은 한 개의 커다란 인형처럼 보였고, 잿빛 스웨터를 입었을 때, 그녀의 가슴 부분에는 회교도 여자들이 새겨진 펜던트를 붙이고 있었다. ‘완구점 여인’과 ‘나’가 대화를 나눌 때는 그저 일반적인 관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내가 가방으로 유리문을 밀치고 들어서면 여인은, 무얼 찾으세요, 라고 물을 것이다. 내가 이곳을 찾기 시작한 때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어김없이 빨간 플라스틱 오뚝이를 사 갔다는 걸 알면서도.”(p. 86)

 멀리서 봤을 때는 일반적인 관계이지만, ‘나’에게 있어서 ‘완구점 여인’은 사랑의 대상이다. ‘나’의 마음속에서 완구점 여인에 표정과 몸짓은 “이미 친숙한 것이었고 말할 수 없이 그리운 것이기도 했다. (중략) 완구점의 여인이 보고 싶다. 내가 찾아갔던 그녀의 방, 자잘한 꽃무늬가 찍힌 커튼과 창백한 그녀가 보고 싶다”(pp. 86~87) 실제로 그 둘은 어느 날 밤 “그녀의 체온과 뭉텅 잘린 두 다리와 또 나의 행위는 한 갓 춘화처럼 생생하게”(p. 87) ‘나’의 기억 속에 남아있었다.

 ‘완구점 여인’에게는 한 가지 특징이 있다. 그녀는 두 다리가 잘려있다는 점이다. 그녀의 두 다리가 잘려있다는 말을 잘 기억하길 바란다.


4. ‘나’의 결핍 원인과 그녀의 절규


 ‘나’의 도벽이나 동성애4)를 보았을 때, 그녀의 행동은 정상적이지 않다. 나이가 아무리 많아봤자 중학생 정도로 추측이 되는데, 보통 그 나이 때, 성에 눈을 뜬다고 하지만 보통 가정에서 사랑을 받을 나이라고 생각한다.5)

 ‘나’의 도벽이나 동성애의 원인은 ‘애정 결핍’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선 주인공의 환경을 보았을 때, 학교에서 돌아온 ‘나’를 휠체어에서 반겨주다가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 죽은 동생(p. 97), 사실상 이혼한 가정환경(p. 99), 그 이후 가정부는 “어머니의 위치로” 변했고(p. 99), 가정부-계모-가 ‘나’를 돌보지 않았고(p. 99), 가정 내 ‘나’에 대한 언어폭력(p.100), 학교 친구들은 수업 시간 때 ‘나’와 앉기 싫어했으며, 선생님은 ‘나’가 자주 학우들의 물건을 훔치는 걸 알아차렸기에, 어느 날 ‘나’의 짐을 뒤졌다.(p. 100)

 ‘나’의 가정환경 내외를 보았을 때, 누가 봐도 불우한 환경인 것은 본 작품을 보면 누구든지 알고 있다. 한 연구에 따르면, 가정환경에서 “따스하게 수용되는 경험을 가지지 못한 청소년들은 다른 곳에서 애정을 채”운다고6) 말했으며, “부모의 잘못된 양육방식과 소홀한 감독”7)은 절도의 요인 중 하나라고 한다.

 ‘나’의 도벽, 동성애적 사랑이 앞서 말했다시피 ‘가정환경 내외에서의 애정 결핍’에 의한 행동이라고 볼 수 있다. 어느 곳에서도 사랑을 충족시킬 수 없는 주인공은 ‘도벽’과 ‘동성애’에서 사랑을 채우려고 했다.-여기서 추가로 말할 수 있는 부분이 ‘완구점 여인’과의 사랑을 ‘동생’에 대한 사랑으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완구점 여인’과 ‘동생’의 경우 둘 다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인물이다. ‘나’가 완구점 여인을 보고 있었을 때, 그녀는 “휠체어의 바퀴를 굴리고 있는 사내아이와 벽에 가득한 그림들이 필름처럼 스쳐갔다”(p. 95)고 말했다. 더불어 완구점 여인은 ‘나’에게 “휠체어에서 살고 있던 동생”(p. 96)을 생각나게 해 줬다.

 ‘나’에게 있어 완구점 여인은 죽은 남동생과 동일시하게 만들어 준 하나의 대상이다. 위에서 말했다시피, ‘나’가 완구점 여인을 사랑한 이유 중 하나는 죽은 동생괴 동일시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만일 ‘나’에게 죽은 동생의 모습과 같은 완구점 여인을 동일시의 의미에서 사랑하고 있다면, ’나‘는 완구점 여인 이전에, 동생을 사랑하고 있던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추가로, ‘나’가 책상 속과 그 근처에 있는 물건들 그리고 쓰레기통을 뒤지며 물건들을 음미했을 때, 여기서 궁금한 점이 생긴다. 금전적 가치가 목적이라면, 굳이 그럴 필요 없이, 쓰레기통까지 뒤질 필요가 없다.

 ‘나’가 남의 물건을 훔친 이유는, 오뚝이를 사기 위한 작업이기도 하지만(“이러한 작업으로 나는 오뚝이를 사 모은다”(p. 81)라고 말한다.), 굳이 쓰레기통까지 뒤지고, 발에 맞지 않는 신발을 훔치는 것을 보았을 때, ‘나’의 욕구불만 상태인 점을 알 수 있다.8) 이 욕구불만 상태는 바로, ‘타인과의 소통 부재’이다.

 영화 <캐스트 어웨이>에서 ‘척 놀랜드’는 ‘윌슨’이란 배구공을 사람 취급하며 무인도에서 이야기한다. 이처럼 사람은 대화하고 싶어 하는 욕구가 있다. 하지만 그녀에겐 소통의 단절밖에 없다. 집에서는 계모가 자신을 못살게 굴고, 학교에선 선생이 ‘나’의 가방을 느닷없이 털어보기 때문이다. 집에서도 대화가 안 되고, 학교에서는 도둑으로 찍힌 ‘나’는 더 이상 가정과 학교에서 누구와도 소통할 수 없었다.

 어느 날 선생님이 ‘나’의 짐을 샅샅이 뒤진 이후에 ‘나’는 분필을 주머니에 넣고 화장실로 들어가 “선생님 나쁜 년, 엄마 나쁜 년, 이라고 오래오래”(p. 100) 낙서했다. 이 문장은 통해서 러시아 평론가 미하일 바흐친(Mikhail Bakhtin)의 말을 떠오르게 한다.

 바흐친은 타자와의 관계 맺기, 상호이해에 관해 “삶은 본성상 대화적이다. 산다는 것은 대화에 참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묻고 귀를 기울이고 대답하고 동의하고 하는 등등이 그것이다. 이 대화에 인간은 삶 전부를 가지고 참여한다. 눈으로, 입으로, 손으로, 영혼으로, 정신으로, 온몸으로, 행동으로, 그는 이 대화에 참여한다. 그는 자신의 전체를 말속에 집어넣으며 이 말은 인간 삶의 대화적인 직조물속으로, 세계적인 심포지엄속으로 들어간다.”9)라고 말했다.

 바흐친의 말에 미루어 보았을 때, ‘나’의 상황은 삶의 본성에 참여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즉 그녀는 몸만 살아있을 뿐, 사실상 죽은 것과 다름없는 현실을 살고 있다. ‘대화적인 직조물속으로’ ‘세계적인 심포지엄 속으로’ 참여가 불가한 ‘나’는 절규한다. 그 누구와도 대화할 수 없는 상황에서 오랫동안 “선생님 나쁜 년, 엄마 나쁜 년”이라는 말로 자신의 절망을 절규하고 있었다.


 ‘나’가 소통할 수 있는 상대는 당시에 ‘완구점 여인’ 말고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완구점 여인에게 “어제도 나는 당신의 꿈을 꾸었습니다. 매일 밤 나는 발가벗은 당신의 꿈을 꿉니다. 그리고 부끄러움을 견디지 못해 괴로워합니다. 언젠가 당신을 찾아갔던 날, 기억하시는지요? 그렇다면 잊어 주십시오, 잊어 주십시오, 그래서 다시금 당신의 세계에 나를 맞아 주십시오.”(p 101)이란 편지를 작성해 그녀에게 전해주려고 했다. -이렇게 ‘나’는 ‘완구점 여인’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 삶을 찾으려고 했다.


5. 주인공의 홀로서기 시작


 편지를 다 쓴 ‘나’는 ‘완구점 여인’을 만나러 갔지만, 완구점은 “며칠째 내부 수리 중이라는 쪽지를 달고 문이 닫혀있었다.”(p.101) 그리고 완구점이 있었던 곳에는 다방으로 변했다. 그곳의 “문이 열리고 축제처럼 흥청거렸다”(p. 101) ‘나’는 다방 안으로 들어가, 화환들이 진열되어 있는 문을 지나면 “불빛이 환한 완구점”(p. 101)을 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다방 안에 들어간 ‘나’의 눈앞에는 “붉고 푸른 색등이 실내를 밝히고 있고, 열대어들이 끊임없이 물방울을 만드는 커다란 어항”(p. 102)이 채우고 있었지만, 완구점 시절 “항상 여인이 있던 자리를, 목발이 있던 자리를, 저마다 살아 있던 장난감들이 놓였던 자리”(p. 102)는 사라졌다. 그리고 ‘나’는 다방을 나온다.

 ‘나’는 해방감을 느꼈으나 그 기분은 오래가지 않고, 끝없는 고독을 느낀다. 그리고서 그녀는 완구점이 있었던 시절 그곳에서 구매한 100개 넘는 붉은색 오뚝이들을 버려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은 “나에게 있어서 상실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도 안 될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생각 역시 나에게 아무런 위안을 주지 못했다.”(p. 103)

 ‘나’는 이제 주체로서의 삶을 살기 시작한다. 한 개인이 주체로서의 출발 즉 홀로서기를 시작한다는 것은, 인생이란 자신의 극에서 도망치는 것이 아닌, 오만가지 시나리오가 있다는 것을 직시하고 인정했을 때 가능해진다.

 작중 오뚝이를 다 버릴 준비를 할 주인공의 가슴이 “버석버석 소리를 내며 부서져 버릴 듯 건조”해졌다.(p. 103) 주인공이 이런 기분을 느낀 이유는 홀로 서기가 완구점 여인과 일탈에서가 아닌, 현실을 직시했을 때 가능하다는 것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홀로 서기’는 것은 행복과 거리가 있다. 일반적으로 한 가정의 어머니, 아버지를 보게 된다면 우리는 보통 이 말을 이해할 수 있다. 내 인생을 책임지는 것, 도망치지 않는 것이 참으로 어렵고 힘들지만, 결국엔 홀로서기가 평생 숙고해야 할 인생의 숙제라는 것을 <완구점 여인> 통해 알 수 있다.



참고하면 좋을 말


1. <완구점 여인> 아버지 : “어머니도 없는 남매를 가정부에게만 맡기고, 집에는 거의 들어오지 않은 채 늘 바깥 생활만 합니다. 그러다 남동생이 죽은 후에 집에 들어와 한동안 ‘나’와 더불어 단란하게 지내지만, 가정부였던 여성과 부부 관계를 맺은 후 ‘나’와 멀어집니다. ‘나’가 가족으로부터 소외되도록 만드는 데 주요한 역할을 한 인물입니다.”(p. 106)


2. 문학 평론가 김현은 그녀의 소설에서 ‘붉다’라는 말이 의미심장하다고 말했다. “‘붉다’라는 말은 피·불·노을 등과 금방 연결되는 어사다. (중략) <완구점 여인>을 조심스럽게 읽으면, 그녀가 왜 ‘붉다’라는 말에 그토록 집착되어 있는가를 짐작해낼 수가 있다.”2) ‘나’는 동생이 이 층에서 떨어져 죽은 것을 보았다. 이때 “그 동생이 죽는 장면은 붉은색으로 가득차 있다. 동생의 시멘트 바닥에 던져진 머리는 피투성이였고, 그가 손에 쥐고 있던 도화지에는 붉은 크래용으로 꽃이 그려져 있다. 그때부터 주인공의 의식 속에는 붉은색이 동생의 죽음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어 동생과 관련된 모든 것은 무의식중에 붉은색과 결부된다. 가령 동생과 같이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완구점 여인에게서 그녀가 사들이는 것도 언제나 붉은 오뚜기이다.” - 김현. (2000). 문학과 유토피아. ㈜문학과지성사. p.271.



인용문


1) 「완구점여인」의 여주인공 <나>(소녀) 의 죽은 어머니와 역시 나를 반기다 2층에서 떨어져 죽은 동생 (휠 체어) 에 대한 사무친 그리움이 역시「휠체어」 에 앉아 움직이는 알지 못할 <완구점여인> 에 대한 야릇한 애정 (일종변태성욕) 으로 나타나는 미묘한 인간성의 일면을 여성적인「뉘앙스」속에 포착하고 있다. - 중앙일보 심사평

 (https://www.joongang.co.kr/article/1148145)


2) 작가와 작품을 동일시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쉽게 말해 작가는 작가, 작품은 작품이죠.


3) 본 문장부터 ‘오정희. (2012). <오정희 중국인거리>. ㈜사피엔스 21’의 책을 인용할 때마다 책 쪽수만 표기하겠음.


4) 동성애적 사랑이 문제가 있다는 소리가 아니다. 가정에서의 사랑이 아니라 다른 여성과의 성관계를 통해서 사랑을 충족시키는 것이 문제라는 소리다. -만일 ‘나’가 남성과의 성관계에서 사랑을 충족했어도 똑같이 문제다.


5) 실제로 ‘나’와 ‘완구점 여인’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입술”(p. 92)을 맞대었고 “여인은 아주 성숙한 자세로 나의 팔 가득히 안겨 있었다”(p. 93)라고 서술한다. 또한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이러한 일을 ‘나’ 스스로도 “나의 행위는 한 갓 춘화처럼 생생하게”(p. 87)라고 말했다. - 이외에도 오정희의 다른 작품을 보면 동성애적 줄거리가 종종 있는데, <완구점 여인>에서도 서술한 부분이 앞서 말한 줄거리와 동일하다고 생각한다.


6) 이동훈 외 4명. (2011). 청소년 절도행동의 이해 : 문헌고찰을 중심으로. KYCI 청소년상담연구, p. 37.


7) 이동훈 외 4명. (2011). 앞의 자료. p. 37.


8) 실제로 한 연구에 따르면 ‘나’의 행동이 ‘병적 도벽’이라고 볼 수 있다. ‘병적 도벽’의 특징은 “‘개인적으로 쓸모가 없거나 금전적으로 가치가 없는 물건을 훔치려는 충동을 저지하는 데 반복적으로 실패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대개의 경우 그 물건을 살 만한 돈을 갖고 있는 것이 보통이며, 훔치는 행위와 함께 점차적인 긴장감에서 해방이 되다가, 나중에 죄악감, 후회감 및 우울감을 동반하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다. 도둑질한 물건 자체가 목표일 때에는 병적 도벽이 아니며, 도둑질하는 행위 그 자체가 1차적 목표일 때에만 병적 도벽이라고 한다.” - 김중영, 양종철, 강남인. (2015). 병적 도벽 환자에 대한 내재적 민감화 기법 적용 사례. 신경정신의학, 54(1), p. 127. 또한 병적 도벽의 원인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부모의 이혼, 가족의 죽음, 가정불화 등으로 인한 정신적 스트레스가 작용해 청소년기부터 도벽 증상이 나타나는 사례가 종종 있다”고 한다.

(출처 : https://m.health.chosun.com/svc/news_view.html?contid=2024041201996)


9) Mikhail Bakhtin, Esetika slove Tvorchestra, 박종서 김희숙 역, <말의 미학>, 길,  2006., p. 454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