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그림책 『나의 집』과 2018년도 몽골여행
2018년도 여름 한 달 간 몽골 여행을 했다. 몽골여행을 하고 난 후 우연히 한 권으 그림책을 접했다. 바로 이름도 길고 생소한 몽골 작가가 그리고 쓴 『나의 집』이라는 그림책이다. 유목민 가족이 수백마리의 양, 염소, 말 등을 데리고 이동하면서 살아가는 이야기다. 그 와중에 잘루라는 남자 아이가 태어나고 가축들과 함께 튼튼하게 자라간다.
이 책에서 볼 수 있는 유목민의 집 ‘게르’에서 나도 생활해본 적 있다. 게르의 문을 열고 나가면 세상 천지가 앞마당이 되었다. 불편함은 컸지만 쉽사리 경험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다양한 에피소드가 많았으나 그 중 직접 양을 잡아서 전통요리인 허르헉을 만들어 먹었던 밤을 잊을 수 없다.
양을 키우는 사람들은 모두 양을 능숙하게 잡는다. 그들의 삶이기 때문이다. 죽음과 삶은 항상 가까이에 있다. 죽음이 멀지 않기에 삶 역시 자연스럽다. 허르헉을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기회다. 심지어 양을 잡는 과정을 직접 눈 앞에서 볼 수 있었다. 30분이면 양 한 마리가 해체가 되고, 1시간 후에는 허르헉이 완성이 되어 요리를 먹을 수 있다. 심지어 피 한 방울 땅에 흘리지 않은 채 양고기 요리 허르헉이 내 눈 앞에 나타났다.
“생각했던 것보다 잔인하지 않았어. 그리고 이곳 유목민들은 다 먹고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거잖아. 가족처럼 몇 년 동안 같이 지냈긴 했지만. 서로 살기 위해 그런 거지” 라고 이해해주면서 양고기를 가장 맛있게 먹었다.
허르헉을 위해 준비된 양 한 마리, 묶여진 채로 들고 와서 뒷다리와 앞다리를 움직이지 못하게 잡아야 한다. 가족의 도움이 필요하다. 양을 직접 키우는 주인은 칼로 가슴의 피부만 작게 절개한 뒤 손을 집어 넣었다. 양의 가슴 안에 손을 집어 넣어 대동맥의 숨을 멈추게 하는 것이다. 작은 떨림이 몇 번 있은 후 양은 움직임을 멈추었다. 숨이 금방 끊어졌다. 흥건한 피바다가 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그 다음부터는 양의 가죽을 벗긴다. 북실북실한 양털 가죽이 온전히 벗겨지며 살만 드러난다. 가슴을 잘라 내장, 간, 심장 등의 장기를 하나씩 꺼낸다. 어마어마하게 큰 양의 위를 볼 수 있었다. 하루 종일 풀을 먹는 양의 위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컸다. 축구공 크기 만한 위 속에는 소화액과 함께 풀이 섞여 있었다. 소장이나 대장도 꼬불꼬불하고 길게 이어져 있다. 남편이 양고기를 해체할 동안 부인은 내장을 정리했다. 손으로 쭉쭉 내장의 찌꺼기를 짜내면서 깨끗하게 만든다. 순대의 기원이 바로 몽골이다. 순대와 내장탕 요리가 이곳에서 왔다. 인간을 위해 양 한 마리는 아낌없이 자신의 몸 전체를 내어 준다.
어느 정도 양이 해체되어 가면 난롯불을 지핀다. 소나 말 등의 가축똥 말린 것, 나뭇가지를 함께 넣어 불을 때우는데 이 때 까만색 주먹만한 돌을 넣어 뜨겁게 달군다. 허르헉 요리를 할 때 달군 돌을 넣기 때문이다. 돌이 오븐의 기능을 한다. 흥미진진한 쇼를 보듯 가족 모두 옹기종기 모여 요리 과정을 지켜본다. 동그란 게르에서 동그랗게 모인 사람들이 허르헉을 기다린다. 이들에게 양을 죽이는 일과 먹는 일이 하나다. 삶을 위한 모든 과정을 분리하여 생각할 수가 없다.
완성된 허르헉을 주인이 내왔다. 솥에 가득 담긴 고기의 양은 한 눈에 보기에도 많아 보인다. 고기 한 점을 뜯어 먹는데 정말 맛있다. 초원 가득한 풀을 먹고 자란 신선한 양고기. 그것도 조금 전 생을 마감한 양을 내 손으로 뜯어 먹고 있는다는 게 미묘하다. 양고기로 만든 허르헉으로 만찬을 하고 밤새 별을 보았던 그날 밤. 10초마다 떨어지는 별똥별, 놀라운 우주쇼가 펼쳐졌다.
그림책으로 인해 몽골여행의 추억이 다시금 떠올랐다. 그림책 『나의 집』은 낯선 몽골이라는 나라의 전통문화를 알게 해 준다. 지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모두 자기만의 방식으로 삶을 이어간다. 여전히 말, 양, 소, 염소, 낙타 등과 함께 살아가는 몽골의 유목민은 자연의 일부로서 살아간다. 땅을 소유하지 않기에 집을 짓는 것도 간소하다. 동그랗고 아담한 몽골 유목민의 집 ‘게르’는 성인남자 두 명이 두 세 시간 정도면 짓을 수 있다고 한다. 이동을 할 때면 또다시 집을 해체한다. 어디론가 떠나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들이다.
몽골 울란바타르에서 가보았던 INTELLECTUAL MUSEUM 에서는 좀더 자세히 ‘게르’라는 몽골 전통집에 대한 이해를 얻을 수 있었다. 세계에서 하나밖에 없다는 퍼즐박물관이었는데 몽골의 명소 중 하나다. 대통령이나 해외 각국 유명인사들도 이곳 박물관을 후원했다. 건물 규모나 전시의 퀄리티는 떨어지나 퍼즐이라는 테마로 몽골인들의 삶을 보여주었다. 2조각의 퍼즐에서부터 673개의 퍼즐까지 다양했다. 심지어 5만 6천번을 움직여야 분해, 조립이 가능한 고난이도 퍼즐까지...
유목민들은 나무조각이나 동물의 뼈 등으로 다양한 퍼즐을 만들었다. 사실 게르도 퍼즐의 일종이라 할 수 있다. 정교하게 모든 조각이 딱딱 들어맞도록 만들어진 게르는 집을 짓고 해체하는 것이 하나도 어렵지 않다. 설명서도 없지만 정확하게 들어맞는 구조로 누구나 집을 쉽게 지을 수 있다. 몽골은 인도 이상으로 수학 강국으로 부상하고 있다. 아마도 어릴 때부터 퍼즐을 좋아하고, 게르를 짓는 문화 때문일 수도 있지 않을까.
좁은 국토에서 어떻게든 더 큰 평수의 아파트와 빌딩을 소유하는 것이 일반적인 한국 사회에서 『나의 집』 같은 이야기는 몽환적이고 이룰 수 없는 꿈 같은 이야기일 것이다. 끝도 없는 초원에 짓는 동그란 작은 집 하나에 온 가족이 머물고, 또다시 가축들과 이동하면서 살아가는 유목인들. 자연에서 태어나고 자연에서 배우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다. 최소한의 소유로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서 배워야 할 것들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