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눈이이

배려의 상대적 의미

by 독거부인

캐리어 하나만 끌고 새 집으로 이사를 왔다. 침실 세개와 화장실 두개인 아파트에서 나 혼자 지내자니 침실은 쓸 일이 없고, 거실 소파만 사용하는 원룸생활이 되었다. 유럽의 중산층들이 사는 주택가는 어두워지면 개미 지나가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고요하기에, 여기서도 저녁식사 시간 이후로는 음악을 틀거나 청소를 하는 일은 자제하면서 살고 있다.


가끔 화장실에서 아이들 떠드는 소리가 날 때도 있지만 이것은 구조적 문제인지라 그러려니 한다. 다행히 이웃집 아이들은 아홉시 이후에는 잠이 드는 것 같다. 아이들이 잠이 들면 부모들은 자연히 숨을 죽인다. 그들에게 찾아온 평화를 온전히 누리기 위해 함께 조용해 질 것이다. 그래서 나도 화장실에서 물을 틀때도 절반정도만 틀며 세수를 할 때도 있다.


그런데 오히려 새벽이 되면 시끄러워지는 이웃이 있다. 새벽 한시 넘어 들려오는 고성과 "죽어, 아잇...."하는 걸걸한 남성의 욕설에 공포에 사로잡힌다. 적어도 장년이상의 남성의 목소리다. 며칠간 이어지는 새벽의 고성과 둥둥하는 기계음으로 보아 가까운 층에 있는 이웃같았다.


처음에는 주먹으로 벽을 쿵쿵 쳐 보았다. 두 시간이나 기다린 끝에 벌인 소심한 표시였다. 무섭게도 더 큰 소리가 돌아왔다. 문도 쾅 닫는 것 같았다. 손발이 떨리기 시작했다. 소심하기도 하지만 그 남성의 목소리와 어투는 폭력적이었기에 무시무시한 폭력배의 모습이 연상되었기 때문이다.


이사가나.... 등기한지 한달 되었는데 벌써 매매를 해야할까. 요즘은 집을 사지도, 팔지도 않는다던데. 그렇게 불편한 마음으로 관리사무소에 연락을 했다. 소장님은 아주 즉각적으로 공고를 써서 붙여주셨다. 한국의 층간소음분쟁이 흔하지만 심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빨간 글씨로 '열한시 이후 고성'이라는 강조까지 해주었다.

심각한 가운데 소장님의 센스에 마음이 조금 풀어지는듯 했다.


반전인가...


남편이 한국에 다니러 왔던 기간중 다툼이 있었다. 남편은 평소에도 목소리가 너무 크다. 와인 한병을 마셨더니 목소리가 더 커졌다. 평소라면 열시에 잠이 드는 습관이지만 그날은 이벤트가 있어 늦게까지 설왕설래가 이어졌다. 아무튼...


말다툼의 주제는 너무나 사소했지만 이웃의 소음을 전해들은 남편은 겸사겸사 아주 우렁차게 외쳤다.


엄청난 밤이었다. 10분 정도 지켜보다 저정도면 분노조절이 안된다 싶어 진정을 시켰고 그 와중에도 나는 이웃집들에 아주 미안하고 부끄러워 눈물이 났다. 소리는 지르면서 슬리퍼는 안벗는 남편의 모습에 웃는데 눈물은 흘렀다. 이런......


목소리가 사라졌다. 문쾅 소리는 가끔 들린다.


남편은 돌아갔고, 다시 혼자다.


전화위복이라고 해야 하나. 난동을 피운죄로 남편은 나에게 아주 공손해져서 나의 부탁같은 명령을 잘 이행하고 있다. 양심은 있지만 목소리가 큰 죄인이다.


밤마다 소리지르는 그 아저씨의 부인에게 심심한 위로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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