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역시 대중탕의 매력
집정리를 하고 이것저것 적응을 하는동안 수면의 질이 많이 떨어졌다. 도시의 일상이란 완전한 고요를 기대할 수 없는 것이기에 익숙해져야 하는데 그럼에도 스트레스가 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나보다.
노르웨이에 있을때는 농담삼아 그곳이 평화로운 지옥이라고 말한 적이 있을 정도로 고요가 일상이었다. 일반적으로 주택가는 한 여름 잔디깎는 시간 외에 크게 소리나는 일이 없다. 가끔 누군가의 생일파티가 있을때는 한 달 전부터 이웃 우체통에 손으로 쓴 알림편지를 넣어놓는다. 몇날 몇일 몇시부터 몇시까지 정원에서 파티를 할 것이고, 음악을 틀 예정이니 같이 축하해달라는 귀여운 양해편지를 받을때는 약간 기대를 할 정도다.
돌아온 이곳은 배달 오토바이 소리가 늦은 밤에도 울리고, 좀 떨어진 대로에는 하루종일 차들이 지나간다. 아파트 내에서도 각종 소리들에 가끔은 깜짝 놀랄때도 있지만 벽과 벽이 연결된 이 공간들 안에 수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거주한다고 볼때 놀랄일은 아닌것 같다. 그렇다고 그 소리가 좋지도 않다.
내 귀에서 지잉하는 이명이 들리기 시작했다. 귀가 피곤을 호소하는가보다.
침대에 누워 잠시 더 잘까 하다 유령처럼 거실을 헤맸다. 이른 아침, 출근도 등교도 않는 아줌마가 할 수 있는 일은 몇가지나 될까. 등산하기, 새벽기도, 아침밥준비... 이것도 저것도 맘에 들지 않을땐 노란 때수건과 샴푸와 크림을 챙겨들고 그곳으로 가자.
내가 할머니 손을 잡고 다니던 그곳은 이제 주차빌딩이 있을 만큼 커다란 건물을 두르고 있다. 편리하게 리모델링한 외관에 잠시 이질감을 느꼈지만 일단 입구에서 결제를 하고 입장권을 받아 들어간 여탕은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수건과 여러 일회용품이 진열된 매대 뒤에는 늘 바쁜 여사님이 계시고, 옷장도, 돌돌말린 줄에 달린 열쇠도 그대로다. 무엇보다 유황인지 비누일지 모르는 목욕탕 냄새가 여전하다.
탕 내부의 주인공은 여전사 같은 세신사 여사님들이다. 마치 글라디에이터의 갑옷입은 전사처럼 그들의 화려한 목욕탕 룩은 여사님들의 전투력을 강조하는데 완벽하게 어울린다. 타일벽으로 둘러싼 여사님의 영역안에서 갓난아기처럼 내 몸을 맡기는데 그 순간 평화를 느꼈다. 그들의 넘쳐나는 에너지가 나의 무기력한 마음을 충전하는 기분이랄까. 삶의 치열함과 고단함도 촤악하며 뿌려지는 물줄기에 쓸려내려가는 듯하다.
아프지만 아프다고 말하면 안될것 같은 때수건의 따가움을 견디고 나면 해방의 기쁨이 찾아온다. 서비스로 살짝 안마도 해 주신다. 마치 때리고 달래는 것도 같다.
모든 절차를 마치고 탕을 나올때의 가뿐함이란. 일주일 뒤 혹은 더 가까운 어느 날을 기약할 수 밖에 없는 중독성을 내뿜는 나의 안식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