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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를 Feb 13. 2022

괴짜가 되고 싶은 욕구, 주목과 영향력

주목받고 싶은 이유, 영향력을 발휘하고 싶은 이유


 일반적이지 않은 선택을 하는 사람, 게다가 그런 선택이 매우 기이한 편일 때 우리는 그런 사람을 '괴짜'라고 부른다. 괴짜들은 생각하거나 행동하는 방식이 매우 독특해서 일반적인 사람들의 시선으로 봤을 때 웃음을 자아내거나 때로는 논란을 자아내는 양날의 검처럼 보인다. 그런 사람은 대개 신박한 발상을 하면서 정말로 그 발상을 실현시키려는 행태를 보이는데 요즘에는 화성에 가겠다거나 사람의 뇌에 칩을 이식하겠다는 정신 나간 사람이 눈에 띈다.(사실 난 그 사람을 상당히 존경한다.) 그런 인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업적을 세우려는 사람도 존재하지만 그런 것과는 하등 관계도 없는 쓸데없는 일에만 흥미를 가지고 시간을 쏟아붓는 유형도 존재한다. 아마 내가 그쪽에 속하지 않을까.


괴짜로 통하는 사람의 본좌 중의 본좌. 물론 아인슈타인과 비슷한 유형의 위인들도 존재하겠지만 이미 유명해질 것을 예상하고 카메라에 담은 이 모습은 그가 어떤 성향인지 함축시켜준다.




주목은 받고 싶지만
일반적인 건 잘하지 못해서
항상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택했다.


내가 돌아봤을 때 난 예전부터 특출 나게 잘하는 것이 없었다.  성적도 잘해봐야 준수하거나 보통인 수준이었고 게임도 또래 친구들보다 잘하는 수준은 아니었다. 그 당시에는 지금보다 친한 친구와 함께 지내는 시간이 가족과 보내는 시간보다 월등히 많았기에 난 그 집단에서 주목을 받고 싶은 욕구를 느꼈다.


 하지만 전략적으로 봤을 때 내가 일반적인 것 즉, 공부나 게임 실력, 스포츠나 유머감각으로 주목을 받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런 능력은 실질적으로 막대한 시간을 요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다른 친구들은 그것을 전공으로 택했거나 자신과 평생을 나아갈 취미로 택해서 잘하는 것이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주목을 받는 것인데 나 같은 경우는 목적 자체가 주목이다 보니 그런 즉흥적인 가치를 위해 많은 시간을 소비한다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택한 것은 아무도 가지 않은 독특한 길을 가는 것을 택한 것이다.


일례를 살펴보자면 예전의 나는 '리그 오브 레전드'나 '오버워치'같은 게임을 할 때는 주변 친구들은 물론이며 게임을 하면서도 보기 드문 캐릭터를 하기를 즐겼고 또, 그런 캐릭터를 탐색하는 것을 즐겼다.

(아는 사람끼리의 이해를 위해 말하자면 롤은 극딜 탑 렝가나 미드 아우솔을 주로 했고, 오버워치의 경우는 초창기부터 젠야타를 위주로 플레이했다. 지금은 흔히 할 수도 있지만 옛날엔 하는 사람만 하는 비주류 캐릭터였다.)


 그림을 그리며 활동하던 시기에는 친구가 그림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여 그려달라 요청할 때 항상 그 설명에 어떻게든 부합하지만 우스꽝스럽게 그려서 보여주며 서로 장난치듯 요청과 제출을 무한 반복하는 시간을 보낸 적도 있었다.

 (예를 들면 친구가 금발의 귀여운 소녀 캐릭터를 그려달라 하면 금발의 귀여운 소녀 캐릭터의 옷을 입은 수염 난 아저씨를 그리는 식이었다. 그래서 친구가 그대로인 상태에서 얼굴을 귀여운 여자로 그려달라고 하면 그렇게 그리되. 수염은 남기는 식으로 피드백과 제출을 무한 반복했다.)


야간 자율학습을 시작하긴 전 도시락을 시켜먹을 때면 다른 친구들은 고등어나 불고기 등이 메인인 도시락을 시켰는데 난 맛없고 냄새난다고 그 누구도 먹지 않던 삼치 도시락을 시켜서 주목을 받은 적이 있다.(솔직히 난 맛있었다. 물론 이것을 먹을 돈이 있다면 다른 것을 먹는 편이 더 낫겠지만.)



유행 같은 일반적인 것은 어린 시절부터 반감이 있었고, 학교에서 글이나 그림 같은 창작하는 시간에는 '어떻게 하면 독특해 보일까' 머리를 짜내다가 결국 어중간하게 제출한 적이 태반이었다. 친구와 대전 게임을 할 때에 아무도 하지 않는 저성능 캐릭터로 본 적도 없는 이상한 기술을 선보일 때는(이기고 싶은 게임에 누가 그런 저성능 캐릭터를 해봤겠는가?) 항상 보는 친구들로 하여금 폭소를 자아내게 만들었다. 그런 독특한 길을 가며 얻는 주목이 나는 만족스러웠다.


지금의 나에게 있어서는 그런 방식이 더 이상 만족스럽지 못하다. 물론 인터넷 방송 같은 경우에는 긍정적인 영향을 발휘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가장 큰 문제가 있다면 독특한 방식도 독특한 방식이지만 그 속에서도 난 '잘하고 싶다.'라는 욕구를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그걸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막대한 시간을 성장에 소비해야만 한다. 그것이 딱히 달갑지 않은 것은 아니다. 난 내가 나름 주목받고자 하는 일이 내 가치에 부합하는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글쓰기, 그림 그리기, 영상 만들기, 작곡하기 등 이런 활동은 평생을 쥐고 가도 좋다고 생각할 만큼 지금의 나에게는 그것을 성장시키는 것에 있어 상당히 가치를 느끼는 일이다. 내가 열정을 느끼는 시기는 항상 나의 결과물이 내가 봤을 때 상당히 만족스럽거나 남들에게 적잖은 영향을 주었을 모습을 상상할 때다. 그 영향을 두고 주목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지만 반 친구들 같은 지인의 주목이 아닌 사회생활에서의 모르는 대중들의 주목은 나에겐 상당히 부담스럽기 짝이 없다. 학창 시절이 끝나며 점점 나 자신을 감추려 한 것도, 최대한 주목받지 않고 일반적인 것을 의도적으로 선택하여 집단 속에 자신을 녹이려 노력한  것도 그러한 요인에 의한 것일 테다.


솔직히 사람들이 하는 것 중에 주류와 비주류가 있을 뿐이지 그 누구도 하지 않는 길을 가려고 하는 건 독특을 넘어 어리석고 생각한다. 실제로 내가 일삼아했던 독특한 선택도 소수의 몇몇이 이미 실행하고 심지어는 구체적인 전략도 존재했던 길이다. 결국 내가 선택한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은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그저 많은 사람이 가지 않는 비일반적인 길일뿐이라는 것이다.




주목을 받고자 하는 욕구와
세상에 영향력을 끼치려는 욕구는
같은 메커니즘을 다르게 설명한 것일 뿐이다.


내가 하는 일이 주변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거나 그 누구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사회적으로 만족할 수 있을까? 홀로 외딴섬에 고립되어 원시적으로 사는 사람이 만족을 느낀다면 그것은 자신이 일구어낸 터전에 대한 만족이거나 그 터전의 생각보다 만족스러운 원시적 인프라에 감사한 마음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난 그 사람이 사회적으로 고독감을 느끼거나 외로움을 느낄 것이라는 것을 확신한다. 그러한 고독의 고통은 유전자에서 비롯된 것이라 개인이 어떻게든 다른 일을 하며 잊는 것은 가능해도 의도적으로 통제할 수는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결국 사회적 동물이 스스로 사회에, 혹은 그 사회 속 특정 집단에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여기던가 실제로 영향을 발휘하는 것은 상당히 중요하다. 사실 내 솔직한 견해는 위에서 말한 외딴섬에서 고독감을 느끼며 살아가도 딱히 나쁠 것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연구 결과를 봤을 때 자신이 기부한 돈이 실제로 어떻게 사용되고 누구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도움이 됐는지 기부자에게 확인시켜 준 그룹이 그렇지 않은 그룹보다 기부한 돈의 양이 많았다는 내용을 본 적이 있다. 자신이 주변이나 세상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구체적으로 알려준 것이 더욱 적극적인 기부를 도모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딱히 얼마나 영향력을 끼쳤는지 모르거나 영향력을 끼칠 생각이 없어도 한다면 잘하겠지만 자기가 하는 일이 사회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력을 발휘하거나 실제로 그 영향력을 확인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더 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더 잘하는 것을 원한다. 더 많은 권력을 가지고 더 많은 영향력을 끼치는 인간이 되고 싶다. (여기서 말하는 권력은 억압하고 착취하는 힘이 아니라 타인의 억압과 질책을 벗어나 자율성과 주도권을 가지고 내가 할 일을 온전히 할 수 있는 힘을 말한다.)


이런 영향력이라는 것은 필연적으로 주목이 따르고 애초에 그 영향력이 없다면 주목받는 일도 없다. 어떤 영화가 많은 사람들에게 악평과 비난을 받는다면 그 영화가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큰 영향력을 발휘했기 때문이지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을 것이다.

 




솔직히 서론에 삽입된 아인슈타인의 사진은 이제는 진부하다 못해 너무 일반적이어서 괴짜인 인물의 예시로 들기에도 거부감이 들 지경이었다. 사실 나는 그러한 부류의 독특한 사람을 존경한다. 존경하는 부분은 그러한 행동 자체보다는 주변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 초연함 때문이다. 최근까지만 해도 난 특정 상황이 생겼을 때 주목받을 만한 유머가 있어도, 혹은 주목을 받고 실제로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상황이 생겨도 그것을 속으로만 곱씹으며 일반적인 집단에 자신을 감추었다. 내가 그런 독특함의 추구에 망설임을 느끼는 이유는 내가 독특한 선택을 한 걸 보고는 사람들이 나를 유쾌하고 긍정적인 이미지의 사람으로 인식해버리기 때문이다. 그러고는 염치없는 무리한 부탁이나 요청을 해버린다. 그건 내가 정말 좋아하지 않는 상황이다. 아무튼 지금의 나는 터질 것 같이 가득 차서 가끔 틈으로 내용물이 새어 나오는 판도라의 상자 같은 느낌이다.


믿기지 않겠지만 양쪽의 두 사진은 동일인물이다.

위 사진의 인물은 '키시다 메루'라는 팬 네임으로 활동하는 일러스트레이터이다. 왼쪽 사진만 보면 상당히 정상적이며 얼굴도 미남인 평범한 인물이지만 그의 트위터에는 오른쪽과 같은 기이하고 독특한 사진만이 가득하다고 한다. 심지어는 오른쪽의 사진이 화제가 되어 코스프레나 패러디를 하는 팬들도 많다고 한다.


인터넷에는 저 사람처럼 남들은 일반적으로 하지 않는 기행으로 주목을 받거나 영향력을 발휘하는 사람도 있다. (난 저분이 남들의 시선에 구애받지 않고 저렇게 하는 것이 존경스럽다.) 나의 경우에는 사실 저런 코믹스러운 방식과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미지가 너무 유쾌하고 낯을 가리지 않는다는 인식으로 정착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아니,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다.


내가 영향력을 끼치고 싶은 부분은 사소하게 익살스럽거나 즐거운 것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중요하게 여기는 가장 큰 부분은 사람들의 인식이다. 난 내가 쓴 이야기를 선보이며 사람들에게 자각시켜주고 싶다. 현재 세상에 존재하는 당신을 포함한 약 80억 명의 사람들이 150년 안에는 모두 죽을 것이라는 매우 당연하고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실을.


(그 80억 명이 죽은 뒤에는 더 많은 인구가 지구에 살 것이라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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