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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 17. 2022
권력에의 갈망, 힘을 추구하는 이유
자율성을 위한 초석
예전의 나는 힘이나 권력 같은 것에 나름 부정적인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다. 조직을 대표하는 리더는 낮은 서열의 사람들에게 질책과 비난을 받기 일색이며, 사소한 실수 하나로도 여론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킬 우려가 늘 있기에 마음 편한 날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능력이나 나이에 상관없이 밥을 먹은 횟수에 따라 권력과 계급이 나뉘는 기이한 조직의 말단으로 들어오고 나서는 그러한 권력이라는 것에 관심과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내가 우쭐하며 괴롭힌 친구가 대통령의 손자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본능적으로 머리가 숙여진다.
위의 부제목은 단순히 멋들어지기 위해 돌려 표현했지만 정확히 말한다면, 단순히 왜소하고 힘없어 보이는 친구를 괴롭혔는데 그 친구가 대통령이라는 국가 최대 권력자의 손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는 위압감에 위축된 것을 표현한 것이다. 다만 이 경우에 변한 것은 그 괴롭힘을 당한 친구가 아니라 괴롭힌 자기 자신이라는 것이다. 즉 그 친구에 대한 나의 평가가 변한 것이다. 그 친구는 나보다 높은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그 친구가 아무리 몸이 약하고 말도 제대로 못 하더라도 함부로 건들지 못하는 강한 힘을 가진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나는 아무리 내키지 않더라도 그를 괴롭힐 수 없으며, 심지어는 눈치를 보며 보필까지 해야 할 수도 있다. 어쩌면 그 친구가 그 권력을 이용해 자신에게 불이익을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러한 사례를 드라마나 영화, 만화 같은 매체에서 흔히 살펴볼 수 있다. 일진들이 괴롭힌 어느 약자가 사실은 재벌의 아들이었다거나 옆동네 학교 일진들의 대장이었거나 하는 것들 말이다.
여기서 가장 주목해야 할 사실은 그 권력이라는 것은 당사자에서 나온다기보다는 그걸 보는 사람이 판단하여 생겨난다는 것이다. 어쩌면 연예인과 그의 팬에 비유할 수도 있겠다. 팬의 시각에서는 그 연예인이 권력을 지닌 존재일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자신의 동네에 그 연예인이 방문했을 때 애써 찾아가거나, 사인을 받으려고 수 시간 줄을 서거나, 손을 잡는 것만으로도 긴장하고 감격하거나, 또는 실수로 그의 옷에 물컵을 쏟은 것이 세상이 무너질 정도로 죄송한 마음이 들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권력은 단순히 갑과 을, 상사와 부하 같은 상대적인 의미가 아니라 주변에 자율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정도를 말한다. 특정 조직에서 신입사원이 아무리 신통하고 혁명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해도 그걸 받아들이고 채용하는 것은 리더다. 아무리 신입사원이 특정 문제에 관한 개선이 필요하며, 탁월한 개선책이 있다고 해도 그걸 받아들이거나 직접 실행에 옮기는 것은 리더의 몫이며 역할이다. 그에게 영향력을 발휘할 권력이 있기 때문이다.
높은 권력은 거액의 베팅과 같다.
권력을 가졌다고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다. 조직의 리더가 되거나 무수한 독자나 팬을 가지는 등의 높은 영향력, 권력을 가지는 것은 흔하게 말해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을 요구한다. 일반인의 범죄보다는 유명인의 범죄가 더욱 부각되며 더욱 부정적인 인식을 발생시킨다. 일반인의 큰 무례보다는 유명인의 사소한 무례가 더욱 비난받는다.
그리고 내가 이런 부정적인 효과를 인지하면서까지 권력을 추구하고 갈망하게 된 이유는 그만큼 내가 발휘할 수 있는 그 자율적인 영향력을 가치 있게 보았기 때문이다. 만약 누군가가 아무리 미슐랭 스타를 여럿 보유한 식당의 실력 있는 주방장이라고 해도 동네 어느 투박한 식당에 알바로 지원하면 설거지 신세를 면할 수 없다. 만약 그렇게 지내다가도 알바생의 정체를 알게 된다면 그에게 투덜대며 지시하거나 자신이 해야 할 잡일을 떠맡기던 그 식당 주방장은 90도로 허리를 숙여 그 사람에게 존경을 표할 것이다. 물론 이러한 사례는 그 사람이 누구나 인정한 실력자라는 것도 한몫하겠지만 그가 쉽게 가질 수 없는 권력에 대한 증명서를 가지고 있다는 점도 한몫한다.
증명서가 중요한 이유
자신의 권력을 입증하는 직접적인 능력보다는 그 능력을 입증하는 증명서가 더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가장 표면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어느 모르는 국가대표를 처음 볼 때 그 사람이 얼마나 잘하는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가 5 연속 금메달 자리 도전 중이라는 타이틀을 보게 된다면 그가 얼마나 대단한 실력자인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실제로 경기에서 활동한 모습을 전혀 보지 못했어도 말이다. 그러니까 쉽게 말해 '실력으로 입증'한 것을 떠나 애초에 증명서가 그를 입증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남에게 자신이 얼마나 뛰어나고 실력 있는 사람인지에 대해 일일이 설명할 수고를 덜어준다.
높은 권력은 높은 능력을 요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