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어기제 활용법

합리화는 스트레스를 상쇄시키는 데 유용하다.

by 카를

방어기제는 말 그대로 자기 자신에 대한 외부의 공격에 대항하고 방어할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이다. 사람들 사이에서는 방어기제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지만 그들이 생각하는 방어기제의 범주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타인이 나 자신에 관해 이야기할 때 내가 취하는 모든 반응이 방어기제라고 생각한다. 남들이 나를 칭찬할 때 나는 그 말에 반박하며 자신이 얼마나 초라한 사람인지 설명하는 것도, 혹은 남들이 나를 향해 무능한 인간이라고 손가락질할 때, 그 말을 깔끔하게 인정하는 것도 방어기제라고 생각한다.


난 이러한 방어기제들이 스스로에 대한 정신적 자해, 즉 자책감이나 자괴감, 자기 비하 등을 미연에 방지해주는 역할을 해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것이 정신적 자해로 스스로를 궁지로 몰아가는 것보다 나은 이유는 말 그대로 스스로가 더 나아질 여지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자기 탓이고, 자신의 무능에서 비롯되었으며, 자신이 남들로부터 매도당해도 싸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그 사람이 자신이 처한 문제에 대해 스스로 피드백을 하며 현재 상황을 더 개선할 수 있을까? 적어도 나는 그렇게 할 수 없다.


갑옷은 외부 공격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해주며, 최악의 상황에도 큰 상처를 입지 않고 나아갈 수 있게 해준다. 우리가 취하는 방어기제도 이와 역할이 같다.

내가 내 삶을 살아가는 데 적잖은 도움을 주고 있는 자기 계발 코치는 이러한 방어기제를 에고(ego)라고 표현하며 갑옷을 둘러싼 사람으로 묘사한다. 이 갑옷의 이름은 방어기제이자 합리화이다. 그는 이런 (약간의 피해의식이 가미된) 방어기제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이 갑옷은 자신에 대한 타인의 공격뿐만 아니라 자신에 대한 자신의 공격도 방어해준다. 그런 공격들로 인해 날아오는 화살을 갑옷이 없는 맨몸으로 받아들이는 자세와 그로 인한 결과를 감히 상상할 수나 있겠는가? 가끔은 행복하고 유쾌하지만 대부분은 전쟁이나 투쟁과 다를 바 없는 이 세상과 사회에서 이런 스스로를 보호하는 갑옷은 좋지 않은 상황에 대비한 보험이자 효과적인 자기 방어법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정신 나간 사람을 봐도 그러려니 하라고 말하는 이유


세상을 살다 보면 윤리적으로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대책이나 행실, 생각과 관념을 보이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들을 보는 우리들은 대체로 그 사람을 욕하거나 그 사람의 존재를 이해할 수 없다고까지 말하며 비하한다. 특히 뉴스를 보는 사람의 입에서 그런 말이 자주 나오는데 그런 식으로 말해도 이상하게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은 뉴스에 보도된 정신 나간 살인마나 사기꾼이 아닌 그 뉴스를 보는 시청자다. 세상이 말세라느니 정부는 대체 어떻게 대처를 하고 있느냐느니 여러 불만이 터져 나오고 욕하기 바쁘다. 하지만 현명한 사람, 특히 현재까지도 널리 읽히는 책을 쓴 과거의 현자들은 그런 사람이나 상황을 만나도 그저 그러려니 하며 초연하게 받아들이라고 입을 모아 말한다. 그리고 이 대처법은 위에서 설명한 불평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애초에 발생조차 하지 못하게 방지해준다. 또한 이 대처법은 일종의 방어기제와 다르지 않다. 방어기제의 가장 대표적인 방법인 '합리화' 방식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합리화는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양날의 검이기도 하겠지만 우리는 늘 이런 합리화를 활용하며 생활해간다. 내가 마트에서 계란 한 판을 7000원에 샀는데 돌아오는 길에 시장을 둘러보니 똑같은 양과 질의 계란 한 판을 5000천 원에 팔고 있는 것을 보고는 약간의 불합리한 고통, 후회의 고통이 밀려오지만 이 사실을 일찍이 알았기에 다음에는 여기서 사면 되겠다면서 생활의 지혜를 깨달은 듯이 받아들일 수도 있고, 마트가 바가지를 씌우고 있다고 혐의를 제기할 수도 있으며, 지나치게 화가 난 나머지 계란 자체를 다시는 안 먹겠다고 어리석은 다짐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여러 대처법 중 첫 번째 대처방식이 가장 현명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그 외의 대처법도 포함해서 이런 반응은 모두 방어기제이며 자기 자신에 대한 공격을 방지해주는 효과를 지닌다. 자신의 실수에 대해 자신을 탓하지 않고 외부로 그 탓을 돌린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정신 나간 사람을 보거나 이해할 수 없는 행실을 보이는 사람을 봐도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미리 깔아 둔 전제가 존재하기에 가능하다. 요컨대, 세상에는 원래 그런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로 가득하다거나, 통계학적으로 봐도 일반적인 범주에서 벗어난 비정상적인 부류는 늘 일정 비율 존재해왔다거나, 세상엔 의외로 바보가 많고 명철한 사람은 드물다거나 하는 전제들이 존재할 것이다. 이런 전제의 인지는 어떤 사람을 만나도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초연하게 대처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며 실제로 나는 이 방식을 잘 활용하고 있다. 되려 이 방식을 사용해서 사람들에게 특이하다는 말이나 시선을 받거나, 남들이 불만으로 목소리를 높일 때 적극적으로 동조하지 않는다고 질책받은 적도 적지 않을 정도면 이미 말 다했다.




사람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 그러니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기 짝이 없다.


사람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변하는 것은 오직 생각과 행동뿐이다. 개인의 깊은 내면에 각인되어 있는 유전 정보에 기인한, 혹은 무의식에 기인한 반응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 팔이 절단되면 누구나 끔찍한 고통에 몸부림칠 것이다. 강제 수용소에 수감되어 착취되면 누구나 괴로움에 미칠 것이다. 무인도에 혼자 갇히면 누구나 우울감과 고독감을 느낀다. 사회생활 속에서도 이는 크게 다르지 않다. 사업에 실패하면 누구나 좌절하고 위축된다. 멋지게 설계했다고 생각한 계획이 작심삼일로 끝나버리면 누구나 자신감을 잃는다. 소중했던 연인과 갑작스레 헤어지면 누구나 괴롭다. 팬이나 시청자, 구독자, 시민들에게 악플 세례를 받으면 누구나 괴롭고 우울해진다. 그런데 이런 모든 불의를 두고서 자기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여 자책하고 자기 비하를 하는 것은 과연 합리적인 방법인가? 내가 보기엔 그 문제에 책임을 묻는 방향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쉽게 말해 나의 탓이 아닌 외부의 탓으로 돌리라는 말이다.


위에서 말했듯 우리의 유전 정보나 깊은 무의식에서 비롯된 반응은 바꿀 수 없다. 하지만 대체로 자책을 한다면 이 부분을 책망하게 된다. 어떤 계획이나 프로젝트가 실패하면 자기 자신의 실존이나 가치에 대해 의문하게 되며 자존감에 타격을 입은 듯한 결과를 맞이한다. 하지만 엄연히 말해 내가 스스로 설계한 계획이 실패한 이유는, 나의 신년 계획이 작심삼일로 끝난 이유는 단순히 그런 결과가 통계적으로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신년 계획을 대표적인 예시로 들어보자면, 우선 주변 사람을 돌아보며 그들이 선언한 거창한 신년 계획이 아직까지도 원활하게 실현되고 있는가? 내 주변 사람은 그렇지 않다. 심지어 나도 마찬가지다. (물론 포기했다는 건 아니다. 다만 만족스럽게 실천되고 있는 것은 딱히 아니다.)


작심삼일이라는 말이 괜하게 나온 사자성어가 아님을 인지하자. 열정과 동기부여에 도취되어 스스로 세운 계획이 짧은 기간에 무산되어버리는 것은 지나치게 당연한 결과이기에 이것은 스스로를 탓하고 책망할 이유조차 되지 못한다. 다만 문제는 그것을 실행하기 위한 전략의 문제이며, 스스로가 그 계획에 내린 가치랑 그 계획을 포기하고 행하는 현재의 유흥과의 저울질의 문제이며, 그것들로 인한 자신의 생각과 판단, 행동의 문제일 뿐이다. 그리고 그런 생각, 판단, 행동은 의식적으로 변화와 개선을 꾀할 수 있다.


이런 생각들도 자기 자신에게 정신적 자해를 하지 않기 위한 방어기제의 하나라고 볼 수 있겠지만 난 이 합리화가 왜곡되었다거나 그릇되었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그래서 더더욱 자기 자신을 자책하고 비하하는 것이 어리석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명백한 잘못을 타인의 탓으로 돌리거나 그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왜곡하는 등의 합리화는 전혀 효과적이지 않다. 내가 이 글에서 말한 방어기제는 자신이 자신에게 가하는 고통을 상쇄시키는 방어기제에 한한다. 다만 그 명분을 제공하는 것은 외부 환경이다. 계획 실패에 대한 조롱이나 그 외의 나를 향한 악플, 질책, 비난, 불합리한 누명 등에 대해 스스로가 견딜 수 없는 것은 그들이 나를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공격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들이 나에게 한 짓은 울림이 그닥 좋지 않은 소리를 나를 향해 내거나 그닥 논리적이지 않은 왜곡된 사실을 나열한 글을 나에게 보낸 것뿐이다. 그것을 보고는 스스로에게 의문을 품거나 그로 인해 혼란에 빠져 적잖은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것이다.


하지만 사전에 '세상에는 의외로 편파적인 정보에 혹하여 선동되는 사람이 많다'거나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타인의 성공에 호의적이지 않다', 혹은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감정에 휘둘려 살며 그 감정에 이성적으로 반응하고 대처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는 등의 전제를 인지하고 있는다면 외부에서 오는 문제에 대해 초연하게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스스로 설정한 계획도 마찬가지다. '열정이나 동기부여로 설계된 이상적인 계획은 한 달도 채 가지 못한다'거나 '실질적으로 처음 실행하는 사업이나 일이 원활하게 진척될 리가 만무하다.', 혹은 '쉽지 않은 계획의 실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열정과 의지, 동기부여가 아닌 일일계획 등의 계획 세분화, 시간관리, 유흥의 절제, 미래에 대한 기대가 중요하다'는 전제를 미리 인지하고 있다면 자신의 계획을 더 순탄하게 실행해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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