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표에 대한 기대감을 가져야 하는 이유

열정의 근원은 목표에 대한 기대감과 그것에 대한 긍정적인 상상이다.

by 카를

난 뭔가 성취하고픈 장대한 목표와 계획을 설정했더라도 그것이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특정 사건이나 생각으로 인해 발생한 열정과 동기부여를 통해 미래의 일을 계획하게 되었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얼마 동안 노력하는 것도 가능했지만 날이 갈수록 그 열정은 식어버렸고, 그 식어버린 김 빠진 계획은 더 이상 눈앞에 존재하는 게임과 유튜브 영상보다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이러한 유형의 계획 실패는 스스로 자책하기의 탁월한 소재였지만 이런 실패가 나의 문제가 아닌 계획 설정이나 전제된 주변 환경의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몇 년도 채 되지 않았다.


나나 주변 사람들이 스스로 설정한 계획이나 목표가 쉽사리 실패하거나 좌절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일단 그것을 구체적인 계획이나 목표로 설정했다는 것 자체가 그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도대체 누가 부엌 냉장고에 있는 오렌지 주스를 마시러, 혹은 확신해 보니 없어서 집 앞 마트에 가 오렌지 주스를 사 오기 위해 구체적인 계획안을 작성하겠는가?


그런데 나에게 있어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할 점은 사실 계획 실패가 아니라 계획 그 자체이다. 비만인 사람은 식이요법이나 운동을 통해 체중을 줄이고자 한다. 골초는 금연을 하려 하고 알코올 중독자는 술을 그만 마시려 한다. 만약 그들이 먹거나 피우거나 마시는 것을 정말 좋아하지만 이것들을 '건강'이라는 명목으로 절제하고 중단하려 한다면 이 사람들은 가장 비참한 사람들이다. 건강을 위해 실행하는 계획이라면 그 계획은 죽을 때까지 결코 마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만약 이런 유형의 계획을 실천하다가 그만두게 된다면 이는 '계획 실패'가 아니라 '계획 망각'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합당하다고 본다. 건강에 대해 유념하지 않게 되고, 자신이 왜 이런 절제를 하게 됐는지 크게 신경 쓰지 않게 되고, 가끔은 이렇게 폭식하고 피우고 마시는 것도 정신건강에 이롭다며 자기 합리화를 한다.(스스로가 실패한 것에 대해 책망과 비하를 하지 않기 위한 방어기제로 여겨진다.)


허나 오히려 절제를 그만두는 것이 더욱 현명한 선택일지도 모른다. 표본만 보더라도 금주나 금연, 절식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 수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이에 매료되거나 중독되는 것도 그만큼 상쇄시키고픈 고통이나 도피하고 싶은 문제들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체로 그 문제들은 개인의 힘이나 조직의 힘으로도 변화시키거나 개선시킬 수 없는 문제일 확률이 높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를 성공적으로 실천하는 사람이 있다면 자신의 계획과 목표에 큰 가치를 두고 있을 뿐 아니라 그 가치를 토대로 열정적으로 실천하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왜냐하면 절식, 금주, 금연 등의 절제와 관련된 목표는 조금만 안일해져도 유혹에 홀려 손이 가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똑같이 유혹에 시달리고 금단증상에 시달리는데 대부분의 사람이 실패하는 반면, 아주 성공적으로 실천하는 사람도 종종 보인다. 과연 이 두 부류의 차이가 단순히 환경의 차이일지에 대해서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아무튼 계획과 목표라는 것에 대해 고찰을 해봤는데 내가 중심적으로 다루고자 하는 것은 건강적인 측면이 아니라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즉 생산적인 측면이나 사업적인 측면이라는 점을 염두에 뒀으면 한다.


열정과 동기부여는 불타는 종이조각과 다를 바 없다. 화력(열정)은 강하지만 종이조각(가치, 목표)은 오래가지 않아 재가 되어 사라져 버린다. 수많은 종이조각을 끊임없이 넣던지, 거대한 통나무를 넣던지, 혹은 화력을 약하게 할지 강하게 할지는 본인 하기 나름이다. (개인적으로 난 거대한 통나무를 끊임없이 넣으며 불사 지르고 싶긴 하다.)




열정이 없는 걸 탓할 게 아니라 그 계획에 대한 가능성의 기대를 망각한 것을 탓해야 한다.


인생이 낙을 추구하는 것이라면 모두가 흡연을 하고 음주를 하고 마약을 하며 매일같이 파티를 벌이려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다. 몇몇 사람은 자신의 계획과 목표를 위해 고통받기를 택하고 과로로 인해 몸이 망가지는 것조차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 사람이 유독 열정적인 성향의 사람이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보기에는 논리가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난 스스로가 열정을 발휘하는 시기가 찾아오면 그것을 되돌아보며 도대체 그 열정의 근원이 무엇인지, 무엇이 나를 열정적이게 만들며 그 즐겨하던 게임마저 내던져버릴 수 있게 되는지를 사색해봤다. 무엇이 선제적으로 작용한 것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특정 사건을 겪었기 때문인지, 사사로운 수많은 조건이 우연히 충족된 것인지, 걱정이나 근심 같은 것들이 없어서 몰입이 가능했던 것인지 근원이라 할 만한 특정 요소를 콕 집어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내가 지나칠 정도로 열정적인 시기에는 공통적인 사고방식이 있었다. 모든 열정적인 시기에 나는 이 계획을 달성함으로써 일어날 긍정적인 상황에 대해 연상하고 그것에 대해 큰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나의 프로젝트가, 나의 계획과 목표가 사람들로부터 큰 인정과 주목을 받거나 현재의 나의 처절하고 초라한 모습을 혁명적으로 개선시켜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었다. 난 그것에 거의 매달리듯 믿었고 딱히 의심을 품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미래에 대한 그 믿음에 한 치의 의심이 발생하기만 해도 믿음은 더 이상 믿음이라 칭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아무튼 지금의 나는 이것을 열정의 근원이라 결론을 지었고, 내가 설계한 계획과 목표를 실현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지나칠 정도로 낙관적이고 비현실적인 미래를 상상하고 있다.


어쩌면 그런 비현실적이고 기준치가 높은 미래를 상상하게 되면 정작 목표에 도달했을 때 느껴지는 상실감과 배신감이 크지 않을 거라 반론할 수도 있다. 그리고 나 역시 그런 낙관적인 미래가 올 거라 지나치게 믿은 탓에 프로젝트를 끝내고 나면 변하지 않은 나와 현실에 큰 배신감과 허무감을 느끼며 않아 누운 경험도 적지 않다.(정확히는 무기력에 시달려 얼마간 이불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계획과 계획 실천은 완전히 다른 관점으로 봐야 한다. 계획의 용도는 빠른 시간 안에 하고자 하는 일을 효율적으로 이루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그리고 그 계획은 실제로 도래하지도 않았으며 도래할 지도 절대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계획은 정해진 시간 안에 성공하지 못할 확률이 높다. 위에서 말했듯이 계획은 결코 쉽지 않은 것이다. 손쉽게 성공할 계획이었다면 애초에 계획을 세울 필요도 이유도 없다. 즉, 계획은 현재의 내가 노력하게 할 수단 중에 비중을 많이 차지하는 것일 뿐이다. 만약 목표가 있고 내가 그 목표를 위해 평소에 하던 게임도 유튜브 시청도 그만두고 매일 10시간씩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집중하여 실천하고 있다면 이미 목표의 역할은 끝났다고 봐도 된다. 내가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를 위해 현재의 내가 한 발짝 정도 앞으로 걸어 나갔기 때문이다. 만약 목표만 거창하고 지금에 내가 목표를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면 그 목표는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다. 혹은 하루에 한 시간씩만 꾸준히 투자해도 문제없지 않겠냐고 말할 수도 있다. 허나 생각해봤을 때, 만약 하루에 10시간씩 실천해서 10년 만에 다다를 수 있는 목표라면 그것을 하루에 1시간씩만 한다면 100년의 시간이 걸린다.

(다만 이는 높은 목표를 가진 사람에게 해당되는 논리일 뿐이다. 조각, 그림, 책이나 영상 등 가벼운 것을 적당히 만드는 것이 목표라면 하루에 한 시간씩만 투자해도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나의 경우에는 만들고 싶은 것들이 조금 많을 뿐이다.)

목표의 존재 의의는 시간 단축이라 봐도 무방하다. 만약 인간의 수명이 300살이었다면 그리 서두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 분야도 저 분야도 모두 통달하고도 남을 시간일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시간은 짧고 우리는 한 분야를 통달하는 것도 전전긍긍하며 생을 마감하고 만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하나의 특출난 재능을 집중적으로 개발해야 한다거나 하나나 둘의 비슷한 분야에서 종사하거나 전공을 해야 한다는 생각은 짧은 생의 기간으로 인해 생겨난 고정관념이자 편견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요약하자면 우리가 무언가 원하는 것에 목표로 설정하는 이유는 그것을 빠르고 효율적으로 달성하기 위해서이며 그 목표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그 목표에 가치를 느끼고 열정을 발휘해야 하는데 그 열정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목표에 달성했을 때의 자기 자신과 주변 상황을 지나칠 정도로 낙관적이고 긍정적으로 상상하고 기대하는 것이다. 이상적으로 성장한 자신, 나를 향한 사람들의 환호와 박수갈채, 나로 인해 영향을 받고 변화하며 개선된 사회 등.


이러한 기대가 너무 지나쳐서 달성했을 때의 허무감과 배신감이 클 거라고 염려할 필요는 딱히 없다. 애초에 그런 기대감이 없었다면 계획을 위해 실천하지도 않았을 테니까.




아무튼 이런 이론과 통찰을 토대로 열심히 하려 노력하는 중이다. 미래에 대해 비현실적인 수준으로 낙관하고 긍정하는 것이 염려되기는 했지만 솔직히 말해 인간이라는 생물만이 가능한 이 상상이라는 사고는 말 그대로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을 떠올리는 것이다. 미래는 물론이며 지나간 과거조차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내가 5초 전에 본 사과와 지금 본 사과는 시공간적인 관점에서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5초 전의 사과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지금 내가 보는 사과는 5초 더 노화된 사과다. 우리가 과거를 회상하거나 미래를 상상할 수 있는 것은 뇌에 정보를 저장하는 기관이 있고 존재하는 것을 연상할 수 있는 기관이 존재하기 때문일 뿐이다. 다른 생물들은 그 기관이 없거나 둔해서 못하는 것이고.


그래서 미래는 결국 아무리 계산적으로 추려낸 정확한 미래 예언일지라도 그것이 현실로 찾아오지 않는 이상 정확한지를 판단하는 것은 결코 불가능하다. 그것은 나나 다른 개인의 미래도 마찬가지다. 어느 누가 도대체 지금의 자신이 이러고나 있을 거라고 10대나 20대 시절에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래서 나는 그 목표가 실현될지에 관해서는 딱히 신경 쓰지 않는다. 애초에 실패 확률이 높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그 목표의 존재와 그것에 대한 기대와 상상이 지금의 나를 열정적으로 만들어줄 유용한 수단임에는 변함이 없다. 목표는 달성하기 위해 세우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나를 움직이게 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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