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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를 Apr 24. 2022

폭식하는 마술사

단편소설

 



세상에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기상천외한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그것은 광장 길거리에서 관중들의 이목을 끌고 있는 이 마술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마른하늘 아래 무지개를 그리며 뿜어대는 분수대 앞에 간이 책상을 설치하고서는 그 위에 자신이 메고 온 거대한 배낭에서 갖가지 조리되거나 손질된 음식들을 나열하기 시작한다. 지나가던 길에 눈독 들여 모여든 관중들은 과연 저것들로 어떤 쇼를 선보여줄 것인지에 대해 옆사람과 이야기를 나눈다. 이내 마술사는 지팡이로 책상을 가볍게 세 번 내리치며 관중들을 주목시키면서 선언한다.

 "지금부터 여러분 눈앞에서 이 모든 음식이 사라지도록 해 보이죠!"

 마술사는 옆걸음으로 기다란 간이 책상의 왼편으로 몸을 옮기고서는 이내 심호흡을 하기 시작하더니 자신의 눈앞에 보이는 음식들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우기 시작한다. 관중들에게 말을 할 때만 하더라도 쿠키 하나 한입에 못 먹을 것 같았던 작고도 왜소한 입이 마술공연을 시작한 후에는 거대한 햄버거와 통닭, 피자 한 판을 한입 두입에 모두 먹어치울 정도로 비대해졌다. 왼손에 든 음식을 먹고 나면 오른손에 미리 들고 있던 음식을 입으로 집어넣고, 그러고 나면 무의식적으로 잡아 올린 왼손의 음식을 향해 입을 뻗어대는 것이다. 그의 공연을 감상하는 관중들은 손을 치켜들어 응원하는 건지 조롱하는 건지 알 수 없는 고함을 지르며 손을 치켜들어 흔들고 있었으며, 그런 관중들 사이에는 마술사의 매니저 역할을 하며 오래전부터 절친이었던 청년도 함께 그들 사이에 끼어 공연을 감상하고 있었다. 청년은 공연에 좋은 뜻으로든 그렇지 않든 적극적으로 반응하고 호응하는 관중들에 비해 상당히 착잡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는 뒤늦게서야 자신이 그러한 식으로 안면을 긴장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다시 힘을 풀었다. 그에게서 마술사를 바라보는 그런 걱정이 녹아 있는 표정은 자각하기도, 고치기도 힘든 일종의 생활습관으로 자리 잡게 된 듯하다. 그러는 사이 이미 마술사는 오른편까지 몸을 옮기며 음식을 모조리 집어삼켰으며 먹는 속도는 느려지기는커녕 더욱 빨라진 반면, 그의 얼굴은 점점 창백해지고 수척해지면서 병자의 모습을 띄는 것처럼 보였다. 그가 먹어댄 음식의 종류는 그리 다양한 편은 아니었는데 설탕으로 버무린 파이, 초콜릿이 이리저리 박혀있는 둥근 모카빵, 면도날처럼 날카로워 입안을 모조리 베어버릴 것만 같은 얇은 감자칩, 그리고 비대한 크기의 패스트푸드가 있었다. 그는 순번을 가리지 않고 이것들을 보이는 대로 집어 들어 입속에 집어넣고 있었던 것이다. 마술사는 끝내 책상 위에 올려놓은 음식들을 모두 먹어치우는 데 성공하고는 이렇게 외친다.

 "보셨습니까, 여러분? 제가 말씀드린 대로 결코 길지 않은 시간 안에 여러분들께 보여드린 음식을 모두 사라지게 만드는 데 성공했습니다! 과연 이 많은 음식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어디에서 어떤 식으로 작용하고 있을지 짐작이나 하실 수 있을까요? 아마 그런 것들을 추측하는 것은 무의미할지도 모르겠죠. 저에게 있어서는 이 마술이 성공했다는 점과 그 사실을 여러분 모두에게 식별할 수 있도록 증명해낸 것만으로 이미 충분하니까요."

 이 말이 끝나자 마술사는 자신의 얼굴에 묻은 음식물들의 잔해를 닦을 새도 없이 옆으로 고꾸라 쓰러졌다. 광장의 분수는 여전히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듯 큰 소음을 내며 물줄기를 뿜어대고 있었지만 무지개는 더 이상 모습 보이지 않았다. 광장에는 마술사와 그의 친구인 청년만이 남아있다. 마술사의 공연을 지켜보던 관중들은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에만 소리를 지르거나 몸짓을 해 보였을 뿐, 그가 공연을 마치고 마무리 인사를 할 때에는 이미 자신들의 일터로 이리저리 흩어져 사라지고 없었다. 청년은 우스꽝스럽게 넘어져서 책상다리에 머리가 닿아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밀리는 책상을 들어 옆으로 옮기고는 말없이 마술사를 응시한다. 어쩌면 청년은 마술사에게 이러니 저러니 말을 하는 것조차 이제는 부질없고 무가치한 일이라는 것을 깨달은 듯 보였다. 광장은 고요하다 못해 적막하고 허망한 느낌을 주었으며 단지 분수대의 꺼림칙한 물줄기 소리만이 공기를 가득 메꿀 뿐이었다. 기어코 죽어가는 병아리처럼 처량하게 희미한 숨을 헐떡이며 마술사는 입을 연다.

 "알아요, 안다고요. 당신은 전과 같이 나를 향해 이러한 멍청한 공연을 그만두라고 호통을 치겠죠. 보아하니 이제는 그럴 가치조차 느끼지 못하는 듯 보이는군요. 내가 이 공연을 처음 기획 당시에는 당신의 조언과 아이디어가 상당히 큰 도움이 되었다는 것은 나도 인정해요. 아니, 오히려 당신이 이 모든 것을 기획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죠. 당신의 존재로 난 이 공연을 펼치는 것이 가능했어요. 하지만 당신은 그 뒤로 온갖 술수를 써서라도 나를 막으려 들었어요. 그러한 당신의 행동과 판단으로 인해 당신을 향한 일종의 파괴 욕구가 솟아난 것은 어찌 보면 그리 부자연스러운 일도 아니겠네요. 그만큼 당신은 도를 넘어 나의 존재를 간섭하려 들었어요. 그럼에도 당신의 그러한 행동으로 인해 공연을 강행하려는 나의 욕구는 더욱 샘솟았고, 결국 나는 지금의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이겠죠. 한편으로는 당신에게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있어요. 오, 이런. 공연이 끝나기 무섭게 이토록 팔자 좋게 누워버리는 건 생각보다 좋지 않군요. 몸을 일으켜 달라고 부탁드리고 싶지만 지금의 저로서는 몸을 옆으로 기울이는 것조차 불가능하고 설령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당신은 나를 부축해줄 생각이 없어 보이는군요."

 청년은 오랜만에 마술사와 근접하여 그의 얘기를 들었는데 가까이서 보니 그의 육체는 매우 형편없는 모습이었다. 그의 얼굴은 축 처지는 주름이 가득하며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고름을 머금은 붉은 염증들이 곳곳에 튀어나와 있었다. 멀리서 보았을 때 그는 꽤나 다부진 것처럼 비쳤는데 청년은 그가 후덥지근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매우 두꺼운 코트를 겹겹이 입은 줄로만 알았다. 아마 코트를 이용한 매우 기막힌 마술을 선보일 거라는 나름의 기대감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가까이서 확인해보니 마술사는 매우 얇은 코트 한 겹만을 입고 있을 뿐이었으며 그 코트는 몸에 매우 꽉 껴서 힘겹게 지탱하고 있는 단추가 금방이라도 터질 지경이었다. 그의 얼굴과 배는 지나치리만큼 비대했고, 그의 불균형하고 거대한 몸집에 비하면 청년은 한낱 난쟁이로 비칠 뿐이었다.

 "당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잘 알 거 같아요. 당신은 내 눈보다는 볼과 배에 더 관심이 있어 보이는군요. 솔직히 말해 나도 이렇게 되기를 원하지 않았어요. 이런 일을 하길 원한 게 아니었다는 말이에요. 하지만 난 할 수밖에 없었어요. 모든 것을 입속으로 집어넣어야 했고, 사람들에게 박수갈채든 야유든 이목을 끌만한 공연을 했어야만 했어요. 이목을 끌만한 공연 아이디어에 관해 쿠키를 먹으며 고심하던 찰나에 사람들이 갑자기 저에게 주목하는 것이 아니겠어요! 대가족이서 나눠먹어도 남을 정도의 양의 쿠키 저의 입속으로 모두 사라져 버렸으니 말이에요. 그래서 저는 이를 계기로 사라지는 마술 공연을 시작하게 되었죠. 문제는 아까 말했듯이 제가 딱히 이러한 행위를 좋아서 하는 것이 아니었어요. 제가 고심하면서 먹은 것은 사실 쿠키가 아니라 저의 생명력과 정신력이었던 것이죠. 제가 이런 결론을 내릴 수 있는 이유는 공연을 해나가면 해나갈수록 제가 먹은 그 망할 음식들이 제 몸에 잠식하여 뇌와 장기를 서서히 갉아먹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실제로도 그렇기 때문이에요."

 말을 이어나가던 마술사는 끝내 썩은 파인애플처럼 일그러진 표정을 지으며 눈물을 흘린다.

 "부디 나를 잊지 말아 줘요. 내 공연을 항상 기억해줘요. 그리고 끝없는 야유와 비난 섞인 조롱을 보내주세요. 내 공연이 아무짝에도 의미 없었다고 말하지 말아 줘요. 난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됐어요. 나의 존재는 이 공연들을 통해서만 빛나게 되며, 이 공연들로 인해 나는 존재를 유지할 수 있었어요. 아, 하지만 더 이상 난 공연을 지속할 수 없게 되었어요. 이것 좀 보세요. 다리의 뼈와 근육은 이제 제 몸을 지탱할 수 없게 되었고, 내가 먹은 모든 음식들의 냄새가 몸에 배기라고 했는지 벌레들이 제 배와 다리를 스리슬쩍 갉아먹고 있어요. 이 망할 녀석들!"

 이렇게 말하며 마술사는 자신의 다리를 힘겹게 흔들어 벌레를 떼어내려 하지만 그의 기력만 소진시킬 뿐 벌레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제 일을 하고 있었다.

 "저는 이제 제 일에서 손을 떼려고 해요. 내가 어엿한 직장만 가졌더라도 당당하게 은퇴를 선언할 수 있었을 텐데 정말이지 어중간한 위치에 존재하는 나 자신을 어쩌면 좋을까요. 결국엔 이 모든 일들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일이었던 걸까요. 이제 당신도 제 말이 지겨워졌다는 듯이 무심하게 분수대만 바라보고 있군요. 이제 끝이에요. 더 이상 숨조차 제대로 쉴 수가 없군요. 마지막으로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이것밖에 없어요. 에라이, 이 못된 세상 같으니!"

 그러면서 마술사는 죽어가는 얼굴 근육에 온 힘을 다하여 입술 끝으로 혓바닥을 들어 올려 침을 모으더니 하늘을 향해 뚝 뱉었다. 침은 하늘 위로 비상한 듯 날아올랐지만 마치 이미 정해져 있었던 것처럼, 세상이 그의 말에 답신을 하면서 힘을 가하려는 것처럼 공중에 떠오르다가 곧 멈추었으며, 이내 추락하여 마술사의 안면에 강타한다. 그러자 마술사는 이목구비를 포함해 온몸이 부풀기 시작했고, 그의 피부 사이사이에 붉그스름하게 난 노란 고름들이 풍선처럼 부풀어올라 그의 온몸을 뒤덮었으며 더 이상 그의 형체가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청년은 뒷걸음질을 치며 물러났으며 이내 마술사는 곧 기이한 팽창음, 파열음과 함께 불꽃처럼 폭발했으며 광장 일대를 진물로 뒤덮어버렸다. 마술사는 폭발과 함께 사라졌고 부풀어 오를 때 조각조각 찢어져버린 헝겊 같은 그의 옷조각만 주변에 흩어져 있었다.  청년은 자신의 옷에 튀어버린 역겨운 이물질을 지워지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손수건으로 이곳저곳 꼼꼼히 닦았으며 그의 마지막 모습을 면전에서 본 청년은 처음으로 그가 제대로 된 마술을 선보인 마술사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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