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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성은 Jul 07. 2022

'Next level'만을 위한<토르: 러브 앤 썬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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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의 줄거리



 매마른 사막에 사내와 어린 여자아이가 쓰러져있다. 사내의 이름은 ‘고르’. 그의 제국은 멸망했고, 딸과 함께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다. 그는 ‘라푸’ 신을 숭배한다. 라푸에게 살려달라 기도하지만, 신은 응답하지 않는다. 결국 딸은 죽는다. 얼마나 지났을까.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이끌려 도착한 곳은 숲이었다. 그곳엔 샘물과 과일들이 있었다. 그 곳에서 라푸가 ‘영원한 보상’을 줄것이라 생각한 고르. 이내 이 자리는 ‘신을 죽이는 자’ 처치한 것을 축하하기 위한 연회 것을 알게 된다. 고르는 신을 섬기는 자신들을 단순 소모품으로 생각하는 라푸를 증오하기에 이른다. 고르에게 복수할 기회를 주겠다는 ‘신을 죽이는 검’ 네크로소드. 고르는 네크로소드로 라푸를 찌르고 ‘신 도살자’가 된다. 그리고 이 세상 모든 신들을 죽이겠다 다짐한다.



 토르는 ‘가디언즈 오브 갤시’ 팀과 함께 지내고 있다. 그들과 함께 우주의 평화를 지키던 중 ‘시프’의 구조신호를 받게 되고, 토르는 가오갤팀과 헤어지고 ‘코르그’와 단둘이 시프에게 달려간다. 시프로부터 고르의 존재를 알게 된다. 고르는 ‘신 아스가르드’에 습격하고, 뒤늦게 토르가 도착하여 상황을 정리한다. 상황을 정리하던 중 자신의 무기인 ‘묠니르’가 날아다는 것을 발견하고 ‘마이티 토르’로 변신한 과거의 연인 ‘제인’을 발견한다.

 ‘제인’은 암4기로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녀는 살기위해 방법을 찾던 중 바이킹신화에서 묠니르를 발견하게 되고 그것 사용하면 건강해진다는 것을 보자, 무작정 ‘신 아스가르드’로 향했던 것이다. 묠니르 앞에 선 제인. 과거에 토르가 묠니르에게 제인을 지켜달라는 소원을 빌었고, 묠니르는 그 약속을 지킨 것일까? 묠니르의 힘으로 제인은 ‘마이티 토르’로 변신하게 되었다. ‘마이티 토르’ 상태의 제인은 건강을 되찾게 되고, 아니 슈퍼히어로의 힘으로 적과 싸울 정도의 신체능력을 얻게 되었다.

 다시 현재로 돌아와서 ‘신 아스가르드’는 ‘토르’와 ‘마이티 토르’에 의해 정리되는 듯 보였으나 ‘고르’는 ‘신 아스가르드’의 아이들을 모두 납치하여 달아났다.

 8년 만의 재회가 어색한 토르와 제인 그리고 발키리는 신들의 도시 ‘옴티포턴트 시티’로 가서, 신들에게 도움을 받아 군대를 만들어 아이들이 납치되어 있는 ‘섀도우 렐름’으로 향할 계획을 세운다. ‘옴티포턴트 시티’에 도착한 그들. ‘제우스’에게 ‘고르’가 ‘이터니티’에 소원을 빌면 신들은 모두 죽게 될 것 이라고 설득하지만, ‘제우스’는 ‘토르’를 조롱하고 ‘이터니티’는 열쇠가 없으면 열수 없다며 자만한다. 사실 ‘네크로소드’가 두려운 ‘제우스’였다. ‘토르’는 ‘제우스’를 비난하게 되고, ‘제우스’는 분노하여 ‘토르’를 공격하기에 이른다. 그 싸움으로 ‘코르그’는 얼굴만 남고 모두 부서지게 된다. ‘토르’는 ‘제우스’를 죽이고 그의 무기인 ‘썬더스톰’까지 훔치는 것까지 성공한다. 그렇지만 신들의 도움을 받는데는 실패한 토르일행. 그들은 결국 넷이서 ‘섀도우 렐름’으로 향한다.

 ‘섀도우 렐름’에 도착한 그들. 그들을 기다린 건, 토르의 무기 ‘썬더브레이커’를 빼앗기 위한 함정이었다. 소원을 들어주는 ‘이터니티’를 열기위해서는 열쇠인 ‘썬더브레이커’가 필요했던 ‘고르’는 그들을 유인했던 것이었고 싸움에서 ‘발키리’는 심각한 부상을 입고 ‘썬더브레이커’까지 빼앗긴 채 간신히 토르일행은 도망친다.

 ‘제인’이 묠니르의 힘을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점점 자생력이 사라져 간다는 것을 알게 된 ‘토르’ 더 이상 묠니르를 사용하면 암 치료를 받아 살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조차 사라질 것이라고 같이 가려는 ‘제인’을 설득한다. 혼자 ‘이터니티’로 가, ‘고르’를 상대하게 된 토르.

 그곳에 납치되었던 아이들에게 자신의 힘을 나눠주고 ‘아스가르드’ VS ‘고르’ 마지막 전투를 벌인다. 하지만 ‘고르’의 힘은 너무 강력했고 ‘네크로소드’에 찔리기 일보직전의 토르를 구해준건 ‘마이티 토르’였다. ‘토르’와 ‘마이티 토르’는 힘을 합쳐 ‘고르’와 대적하게 되고, ‘썬더브레이커’에 의해 ‘이터니티’가 열리려하자 ‘마이티 토르’가 혼자 ‘고르’를 상대하고 ‘토르’는 ‘썬더브레이커’를 막기로 한다. ‘고르’의 약점인 ‘네크로소드’는 파괴하지만 ‘이터니티’는 열리게 되고, 그곳으로 ‘고르’는 토르일행보다 먼저 도착하게 되어 소원을 빌 자격을 갖게 된다.

 ‘고르’는 이 세상 모든 신들을 없애겠다는 소원을 빌려고 하지만, ‘토르’가 자신이 사랑하는 ‘제인’옆을 지키겠다는 말에 흔들리게 된다. 딸을 되살리고 싶지만 곧 자신은 죽을 것이기에 혼자 남게 될 딸이 걱정되어 망설인다. 하지만 ‘제인’이 혼자가 아니라는 말에 딸을 되살리게 되고, 딸을 보살펴달라는 말과 함께 ‘고르’는 죽게 된다. ‘제인’도 ‘토르’에게 “늘 마음을 열고 살아, 사랑해.”라는 말과 함께 죽게 된다.

 시간이 흘러. ‘고르’의 딸 ‘러브’의 손에는 ‘썬더브레이커’, ‘토르’ 손에는 ‘묠니르’가 들려 있고 그들이 약자를 위해 싸우는 모습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토르: 러브 앤 썬더>(이하 ‘토르4’)는 <어벤져스: 엔드게임>(이하 엔드게임) 이후의 이야기이자 <토르> 시리즈 중 4번째 단독 에피소드이다. <엔드게임> 상영 후, 감독의 인터뷰에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이하 ‘가오갤’)팀과 <토르>팀과 상의 없이 ‘토르’를 <가오갤> 우주선에 태워 보냈다는 것을 보고 어떻게 <토르>의 다음에피소드가 진행될지 궁금하던 차에 <토르4>가 개봉하여 남들과 다른 포인트에 기대를 하였다. 내 기대와는 다르게 영화를 보기 전부터 안 좋은 평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자료를 찾아보던 중 해외와 국내의 반응이 갈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지만 토르시리즈 중 <토르: 라그나로크>를 제외하고는 모두 지루하다는 평이지 않은가? 댓글반응과 주변반응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예매에서부터 이미 관객들의 기대는 컸던 것 같다. 예매가 오픈되고 바로 <탑건: 매버릭> 뒤를 이어 예매율 2위, 개봉 일주일 전부터는 예매율 압도적 1위를 차지한 것을 보면 말이다. 마블의 인기를 다시금 느끼게 해주었다. 이렇게 뜨거운 열기는 양날의 검과 같다. 만약 영화가 그들에게 만족감을 주지 못하면 혹평으로 되돌아 올 것이기 때문이다.          



엔드게임 이후 기대 그리고 성장통      


     

 수많은 기록을 갈아치우며 전 세계를 강타했던 <엔드게임>. 그로인해 마블은 전세계적인 인기를 얻었으며 영화가 아닌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우리는 마블영화를 보지 않으면 유행을 쫓아갈 수 없게 되었고, 더 나아가 대화가 안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기에 마블영화는 무조건 보아야하기에 개봉 전부터 모두가 기다린다.     

 올해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와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가 개봉했다. 그리고 <디즈니 플러스>를 통해 ‘MCU’는 다수의 드라마를 통해 발 빠르게 새로운 준비를 해오고 있다. 현재 마블은 <엔드게임>이후 4년이란 시간이 지난 시점을 그리고 있다. 아직 이야기의 초반이다. <엔드게임> 이전에 우리는 10년이란 시간을 함께해 오며 상당한 서사를 쌓았다. 그로 인해 우리는 <엔드게임>에서 감동을 받았던 것이다. 우리에게는 기다림이 필요하다. 지금 마블은 우리에게 더욱 큰 감동을 주기 위한 성장통을 겪고 있다.     

 하지만 이번 영화는 단순히 차기 <가오갤>, 차기 ‘토르’를 위한 다리 역할로만 보여진다. 항상 문제가 되었던 ‘토르’와 ‘제인’의 러브스토리, 혹은 새로운 아스가르드 이야기 은 <가오갤>과 <토르>의 콜라보 에피소드 아니면 ‘심비오트’의 창조주 ‘널’ 의 등장으로 <베놈>과의 연결 중 뭐하나 제대로 보여준 것이 없었다. 그러기에 팬들은 실망하였고 <토르4>에서 ‘제인’의 죽음에서도 감동을 주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제인’의 죽음을 통한 ‘토르’의 성장도 제대로 보여지지 않았기에 ‘제인’의 죽음은 그냥 차세대를 위한 ‘도구’로 소모되었다고 보여진다. 이번영화를 보면서 굳이 이런 식으로 전개할 거면 디즈니플러스에서 드라마로 나왔어도 되지 않았나 라고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 B급감성은 안먹힌다   


       

 우리나라에서 성공한 B급감성 영화로는 대표적으로 <킹스맨>이 있다. 먼저 B급감성이란 주류가 아닌 하위문화로서, 풍자적인 성격을 보여주기도 하고 유치하고 가볍고 본능적인 즐거움에 가까운 감성이라 말할 수 있다. <킹스맨>에서 ‘발렌타인’과 ‘해리’가 마주 앉아 ‘빅맥’을 먹는 씬을 기억하는가? 미국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맥도날드를 통해 미국과 영국의 입장을 보여준다. 거기에 마지막 칩이 폭발하는 씬에서는 형형색색으로 머리통이 박살나는 것을 보여준다. 이런식으로 B급감성의 재미를 보여준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킹스맨>이 인기가 있던 이유는 다른 곳에 있다. <킹스맨>이 상영되고 있던 당시 하나의 사진을 보았다. 홍대였던 걸로 기억한다. 다수의 남자들이 검은색 우산을 들고 서있는 사진을. <킹스맨>에서 ‘해리’가 들고 다니던 우산을 그들도 들고 있었다. 이처럼 한국에서 <킹스맨>의 많은 성공요인들 중 ‘패션’이 큰 요인이다.

 많은 패러디를 낳은 ‘Manners Maketh Man.’은 아직까지도 많이 사용되고 있다. 보다시피 우리나라에서의 <킹스맨>은 B급감성으로서의 인기보다는 다른 요인으로 성공했다고 보는 것이 맞다.


 <토르4>에서 ‘제우스’ 앞에서 옷을 홀딱 벗은 ‘토르’에서부터 황금빛 피를 내뿜으며 통쾌하게 죽어나가는 ‘옴티포턴트 시티’의 병사들과 유쾌한 음악. ‘이것이 B급감성이지!’라고 생각했다. 앞서 말했다시피 우리나라에서는 B급감성은 주류의 감성이 아니다. 아마 다수의 관객들은 이 씬을 통해 느껴지는 타격감은 상당히 적었을 것이다. 이런 부분에서 해외의 평가와 국내의 평가가 갈리는 것이라 생각한다.                    




영화의 목표 상실     




우리는 처음부터 ‘신 도살자’를 막기 위한 여정을 따르고 있다. ‘고르’가 ‘이터니티’에 도착하여 신들을 없애는 것을 막기 위해 그 긴 시간 동안 극장에 앉아 있었던 것이다.(베일의 연기를 감상하기 위한 것도 있지만) 하지만 마지막 ‘이터니티’에 도착한 우리는 황당한 모습을 보게 된다. ‘고르’는 딸 ‘러브’를 살리고 “내 딸을 지켜줘.” 어디서 많이 본 장면이라 생각이 들었다. “세이프 마사.” 수 많은 조롱을 받은 이장면(필자는 카툰네트워크 ‘베트맨’를 보면서 컸다. 베트맨의 오랜 팬이다. 나중에 이 장면에 대해서 개인적인 해석을 짧게 올리도록 하겠다.) 느닷없이 어머니 이름이 같아서 살려주는 이 장면. 감독은 분명 감동포인트라고 생각 했을 것이다. 하지만 왜 이런 사태가 벌어진 것일까? 바로 영화가 시작하면서부터의 ‘목표’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베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이하 ‘베트맨 대 슈퍼맨’)에서 베트맨의 목표는 슈퍼맨을 죽이는 것이다. 그러기에 온갖 방법을 통해 그를 죽이려한다. 또한 ‘슈퍼맨’을 죽일 동기 또한 우리에게 주입되어 있다. 우리는 ‘슈퍼맨’을 죽이기 위해 2시간을 달려왔다. 하지만 ‘베트맨’은 여태까지의 서사를 뛰어넘을 동기를 우리에게는 보여주지 않았고 혼자 뭔가를 느낀 듯 한 모습을 보이며 그를 살려준다. "세이프 마사." 이 한마디로서 말이다. 우리에게 충분한 설명을 해주지 못했고 단순히 ‘우리 서로 엄마이름이 같구나.’로 우리에게 보여진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두 시간을 주인공과 같은 목표를 가지고 달려가게 된다. 그로인해 우리는 주인공에게 몰입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반전이란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더욱 강한 몰입감과 더욱 치밀한 관계가 있어야한다. 그것이 부족하면 우리는 황당함을 느끼게 된다.

 다시 <토르4>로 돌아가 보자. 마지막에 ‘토르’는  모든것을 포기한다. 그리고 ‘제인’에게 가겠다는 ‘토르’를 보면서 우리와 2시간동안 싸운 적은 사랑을 느끼게 되고 2시간의 우리의 목표는 공중분해 됨과 동시에 2시간동안 싸운 적이 갑자기 ‘내 딸을 지켜줘.’라는 말 남기고 자신의 딸을 남긴다. 우리는 그가 남긴 딸 ‘러브’를 키우는 ‘토르’를 보게 된다. 얼마나 황당한 상황인가.

 우리는 ‘제인’이 살아나길 바랐을 수도 있고, ‘토르’가 ‘고르’를 무찌르길 바랐을 수도 있고 혹은 ‘고르’가 신을 없애길 바랐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단순히 몇 가지의 대사를 통해 우리의 2시간의 여정은 ‘차기 토르’를 등장시키기 위한 ‘도구’로만 사용되어 버렸다. 우리는 무엇향해 2시간을 달렸던  것인가.

 이 결말은 ‘부성애’, ‘사랑’ 혹은 ‘반전’으로 받아들이기엔 설득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점점 확대되어가는 마블의 컨텐츠들을 보며 처음에는 즐길 것들이 늘어 행복했다.

아무거나 내놓아도 관객들이 주는 대로 소모할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아니길 바란다.     



오류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반박하는 주장들, 무조건 당신 말이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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