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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검은별 Toni Oct 02. 2024

신경 써서

중독 문제로 어려움에 처한 그대에게

"어쨌든, 뭐라도 시도는 해봐야지. 우리 일단 이것부터 해보자. 효과가 없다면, 다른 걸 해보면 돼. 이런 게 바로 인생이잖아, 그렇지 않아?"

레이먼드 카버의 작품 '신경 써서'는 알코올 중독 문제로 위기에 처한 부부 이야기다. 아내 이네즈가 남편 로이드에게 이렇게 말했을 때만 해도 로이드를 돕겠다는 의지가 남아 있는 것처럼 보였다. 로이드의 알코올중독을 해결하겠다는 명목으로 두 사람은 별거를 시작했다. 이네즈가 별거한 지 2주 만에 남편 로이드가 세 들어 살고 있는 집에 방문했다. 혼자 지내면서 술을 좀 줄여보겠다는 로이드의 다짐에 이네즈는 일말의 희망을 품고 있었던 것 같다. 이네즈가 방문했을 때 로이드는 귓속이 왁스로 가득 차서 힘들어하는 중이었다. 귀가 먹먹해서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고 머리가 묵직했다. 때마침 찾아온 이네즈가 귓속 왁스를 한번 빼보겠다고 헤어핀과 티슈를 찾으며 말했다.

"어쨌든, 뭐라도 시도는 해봐야지. 우리 일단 이것부터 해보자. 효과가 없다면, 다른 걸 해보면 돼. 이런 게 바로 인생이잖아, 그렇지 않아, 로이드?"

왁스는 술과 묘하게 중첩된다. 로이드는 귓속 왁스로 세상과 단절되었다. 들을 수 없다. 마찬가지로 술 때문에 세상과 단절되었다. 술독에 빠져 일상생활마저 불가능하다. 이네즈는 어떻게 해서라도 로이드의 귓속 왁스를 빼주고 싶다! 즉, 로이드에게서 술을 끊어내고 싶다. 그러나 말을 꺼내기가 조심스럽다. 로이드를 알코올 중독에서 구해내기 위해 그동안 수많은 시도가, 다툼이 두 사람 사이에 오고 갔으리라. 그래도 해결되지 않아 별거에 이른 마당에 이네즈가 더 이상 무슨 말로 로이드를 설득할 수 있을까. 술 대신 귓속 왁스에 빗대어 속마음을 넌지시 내비치는 이네즈의 말에 간절함이 묻어났다.

이네즈가 티슈를 가지러 화장실에 갔다. 이때 로이드가 몰래 숨겨 둔 샴페인 병이 이네즈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 순간 이네즈에게 있던 일말의 희망이 사라졌다. 화장실 밖으로 나와 로이드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창밖을 내다보며 착잡한 마음을 추스른 후, 이네즈는 곧 로이드의 귓속 왁스를 빼는 데 집중했다.

"뭐든지 기꺼이 해 볼 마음이 있어. 이 상태가 지속된다면 차라리 죽는 게 나아. 무슨 말인지 알겠어? 진심이야, 이네즈."

로이드 역시 귓속 왁스에 빗대어 자신의 알코올 중독에 대해 토로했다. 그러나 체념한 이네즈에게는 더 이상 아무 의미가 없는 말이었다.

아침부터 샴페인과 도넛이라니, 알코올 도수가 약한 샴페인만 마시면서 술 용량을 줄여보겠다고 결심해 놓고는 정작 하루에 서너 병의 샴페인을 마시고 있다니, 하루 종일 잠옷 차림으로 술만 마시고 있다니, 지금이 몇 시인지 감각조차 없다니! 평범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자신에게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자 로이드는 잠시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귓속 왁스가 빠지자 기분이 명쾌해졌다. 귓속이 다시 왁스로 막힐까 봐 두려웠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아무려면 어때, 그냥 이렇게 사는 법에 익숙해져야지'라고 생각했다. 술을 마시며 두려움을 떨쳐냈다.



왁스가 귓속을 꽉 메울 정도로 커지지 않게 신경 써

술이 너의 영혼을 꽉 채우지 않게 신경 써

부정적인 생각이 너를 잠식하지 않게 신경 써

울적함이 목에 걸리지 않도록 신경 써

방구석에 갇혀 있지 않도록 신경 써

배우자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도록 신경 써

잡다함에 끌려다니지 않게 신경 써

사랑하는 데 신경 써

감사하는 데 신경 써

하루에 신경 써



그렇다. 신경 쓰지 않으면 언제라도 망가질 수 있는 게 삶이다. 적당히 나를 위로하던 고마운 술이 어느 순간 내 삶을 쥐고 놓아주지 않는 괴물이 될 수 있다. 술뿐만이 아니다. 소셜 미디어가 필수인 요즘 세상에 온갖 자극이 넘쳐난다. 내가 조금만 방심하면 나를 공격할 게 수두룩하다. 멋모르고 취한 것들에게 잠식당하지 않으려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신경 쓰시오'라는 경고등이 켜질 때 잘 감지해야 한다. 내게는 귓속 귀지 대신 이명이라는 경고등이 있다. 한때 이명은 내 삶을 쥐고 흔드는 괴물이었다. 삐... 쨍한 고음이 24시간 나를 괴롭혔다. 불면증과 각성 상태가 지속됐다. 몸이 망가졌다.

"어쨌든, 뭐라도 시도는 해봐야지. 우리 일단 이것부터 해보자. 효과가 없다면, 다른 걸 해보면 돼. 이런 게 바로 인생이잖아, 그렇지 않아?"

그래서, 이명은 사라졌는가? 사라지지 않았다. 온갖 시도와 살겠다는 몸부림 끝에 그저 잠잠해졌다고 할 수 있겠다. 이명은 내 귓속에 아직 산다. 가만히 집중하면 들린다. '나 아직 여기 있어'라고 대답한다. 내가 이명을 다스릴 수 있었던 이유, 혹은 이명과 공생할 수 있는 이유는 내가 품고 있던 욕심과 교만을 어느 정도 버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석 달가량 지속되던 고통의 시간 속에서 내가 얻은 결론은 '그저 숨 쉬고 걷을 수 있다면 이걸로 충분히 감사하다'였다. 다른 건 다 부질없는 바람과 욕심과 잡음이었다.

이명은 내게 확실한 경고등이다. 내가 잡다한 생각과 욕심으로 혼란할 때, '삐' 경고등이 울린다. 마찬가지로 몸이 힘들어 휴식이 필요할 때, '삐' 소리를 높인다. 이명뿐만이 아니다. 귀가 콕콕 쑤실 때도 있고, 제일 싫은 경우는 귀에서 내 숨소리가 아주 크게 들릴 때다. 이럴 때면 무조건 모든 동작과 생각을 멈춘다. 얼른 누워서 잠을 청한다. 내가 또 부질없는 감정과 생각에 매몰되었음을 알아챈다. 그저 숨 쉬고 걸을 수 있으니 이거면 됐다고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는다.

신경 쓰지 않으면, 경고등을 무시하면, 내가 나를 잘 모르면, 언제라도 깊은 수렁에 빠질 수 있다. 내가 수렁에 빠지면 나만 힘든 게 아니라 가족이 힘들어진다. 최악의 경우, 로이드처럼 수렁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 채 그 일부가 되어버리고 말 것이다. 지금 나의 상태는 어떤가? 경고등이 미약하게 켜져 있는 것 같다. '신경 쓰시오, 그렇지 않으면 고립으로 자멸할 것이오'라는 경고등이 깜빡인다. 경고등치고는 무섭지만, 신경 쓰지 않으면, 최악의 경우 망각의 단계를 거쳐 정말로 자멸할지도 모른다. 로이즈 역시 처음부터 이 지경이 되리라고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살다 보면 잠시 비틀거릴 수도 있고 넘어질 수 있다. 이때 켜지는 경고등을 잘 봐야겠다. 벌떡 일어나서 곧장 앞으로 걸어갈 수 있도록 신경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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