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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검은별 Toni Nov 09. 2024

딸바보 아빠가 딸에게 약 먹이는 방법

사랑니 발취 수술 후

주방에서 점심으로 제육볶음을 만들고 있는데, 한쪽에서 등을 돌린 채 뭔가에 열중하고 있는 남편이 보였다. 가서 슬쩍 보고는 경악했다. 작은 종지에 알약을 빻아서 가루로 만들어 놓고, 막 설탕 한 숟가락을 듬뿍 떠서 종지에 담는 중이었다. 그 손길이 어찌나 정성스러운지, 딸을 걱정하는 남편이 무척 안쓰러웠다. 정작 막 사랑니 4개를 발취하고 온 딸은 그렇게 안쓰럽게 여겨지지 않는데 말이다.


내가 늦잠을 자는 동안, 남편과 딸이 아침 7시 40분에 집을 나섰다. 나는 8시 30분쯤 잠에서 깼다. 8시에 시작했을 수술이 9시가 넘어도 끝나지 않아서 걱정됐다. 남편이 전화도 받지 않았다. 9시 30분쯤 남편과 딸이 집에 도착했다. 걱정보다는 기대하는 마음으로 1층으로 내려갔다.


소파에 앉아 있는 딸이 웃다가 울었다. 입에 거즈를 물고 입술을 다물지 못한 채 영구 같은 표정으로 웃다가, 눈물을 뚝뚝 떨구었다. 수술실에서 나왔을 때 사물이 두 개로 보이기도 했다며, 첫 마취 경험에 혼란스러워했다. 다행히 진통이 느껴지지는 않는다고 했다. 생각보다 의젓한 딸이 무척 대견했다. 그 옆에서 호들갑을 떠는 건 남편이었다. 딸이 안쓰러워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이른 아침부터 마음 졸였을 테다. 그에 반해, 나는 왜 이렇게 느긋한 것인가. 어젯밤 잠자리에 누워서 좀 걱정하면서 긴장했지만, 아침에 늦잠까지 자다니, 너무한 엄마 아닌가.


남편이 빻아 준비한 설탕 약을 보니, 어릴 적 기억이 떠올랐다. 감기 걸릴 때마다 엄마가 물에 타서 만들어 준 가루약과 판피린 물약. 물에 탄 가루약을 얹은 숟가락 앞에서 입을 앙다물고 먹지 않겠다며 그렇게도 울었는데, 결국 내 입은 쑥 들어온 숟가락. 그 쓴맛을 떠올리니 저절로 이마가 찌푸려지고 속이 니글거린다. 꿀꺽 한 번 삼키고 나면 끝인 약이 아니었다. 약 때문에 속이 메슥거려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나에게 약만 먹이면 그만인 엄마가 멀게만 느껴졌다.


정성스럽게 설탕 약을 만들어 대령하는 딸바보 아빠를 둔 딸. 나중에 딸이 기억하는 약은 달콤한 사랑이겠지? 나보다 덩치도 크면서 알약 하나 삼키지 못해서야 되겠냐고 핀잔을 주던 내 모습도 기억하겠지?


남편이 딸바보가 되어갈수록, 나는 엄격한 부모 역할을 해야 한다. 지금껏 그래왔다. 나도 가끔은 딸을 오냐오냐 공주처럼 대우해 주고 싶다. 그러나 막 수술한 딸에게 금요일까지 제출해야 할 숙제가 없냐며 오늘도 현실 엄마 노릇을 멈추지 않았다.


편안한 가족. 안정감. 내가 갖지 못했던 걸 딸에게 주는 게 가장 큰 목표였는데, 그렇다면 나는 성공했다고 확신한다. 모두 남편 덕이다.


딸과 넷플릭스에서 새로 시작한 드라마를 막 한 편 끝냈다. 재밌다. 오랜만에 딸이랑 드라마 보며 뒹굴뒹굴하는 주말을 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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