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구한 책
‘내 인생 땡땡땡’이라고 정의하려면, 어떤 기준이 있어야 할까? 미치도록 좋았나, 찾고 또 찾는가, 내 인생을 바꿀 정도로 영향력이 대단했나, 무엇보다, 여전히 내 심장을 떨리게 하는가…. 이런 질문을 조건으로 ‘내 인생 책’을 꼽아보려고 한참 고민했다. 자, 한번 생각해 보자. 내 인생에 무슨 책이 있었나. 여러 책이 머릿속에 떠올랐지만, 그 어느 책도 인생 책으로 선택할 수 없었다. 뭔가 부족했다. 결국 깨달았다. 내게는 ‘내 인생 책’이라고 내세울 만한 작품이 없다는 것을.
물론 좋아하는 책도 있고, 작가도 있고, 내 인생을 구원한 책도 있다. 그렇지만 계속 찾아 읽거나 여전히 내 심장을 떨리게 하는 책은 없다. ‘내 인생 영화’가 무엇이냐고 누가 묻는다면,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어 ‘헤드윅’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미치도록 좋았고, 보고 또 봤고, 내 인생을 바꾸었고, 여전히 심장이 떨리기 때문이다. 문득 슬퍼진다. 나는 책을 완전히 사랑하지는 않나 보다.
‘내 인생 책’이라고 자랑하고 싶은 책은 없지만, 그래도 삶이 버거울 때마다 책에서 답을 구했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혼자 힘들어하는 순간이면 귀신같이 알고 내 앞에 딱 나타나던 책이 한두 개가 아니다. 신기하리만치 책과 사람의 인연이 경이롭다. 감동적인 책 얘기로 밤을 새울 수도 있겠지만, 책에 의지하게 된 최초의 기억을 나누고 싶다.
초등학생 때였는지, 중학생 때였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집에 책이라고는 단 한 권도 없던 시절이었다. 내가 처한 환경이 평범하지 않다는, 그래서 차별받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아가던, 자의식 강한 사춘기 여학생. 그랬던 내가 어떻게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기 시작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담임 선생님의 숙제였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렇게 내 인생에도 독서라는 취미가 찾아왔고, 어느 날 나를 사로잡은 첫 책을 운명처럼 만나게 되었다. 책 제목도, 어떤 이야기였는지도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책을 읽으면서 품었던 의문은 지금까지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있다.
또래 여자아이가 주인공이었다. 나보다 더 열악한 처지에 놓인 불쌍한 아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아이는 매일 기쁜 일 하나를 떠올리며 감사하는 시간을 가졌다. 도대체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전혀 기쁠 일이 없는데도, 무한 긍정으로 기쁜 일 하나를 꼭 찾아냈다. 책에서나 가능한 일이라며 믿지 않았지만, 한편으로는 나도 이 아이처럼 해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기쁠 일 하나 없는 내 인생도 밝아질 것 같았다.
이 책은 내게 의문과 희망을 동시에 던진 최초의 책이었다. 그 후 삶의 고비마다 여러 책이 나를 찾아왔다. 우연인지 운명인지 모를 책이 나를 어둠에서 구해냈다. 책에 담긴 글자 하나하나에서 깨우침을 얻고, 지식을 얻고, 희망을 얻었다. ‘내 인생 책’은 없지만, ‘나를 구한 책’이 있어 감사한 삶이라고 생각한다.
모처럼 하루 한 가지 기쁜 일 찾기 놀이를 해 볼까? 도서관에서 일할 때였다. 오늘따라 체크인할 미디어가 많았다. 체크인을 끝낸 후 미디어가 담긴 상자를 창고로 옮겨야 했는데, 무거워서 상자를 들 수가 없었다. 그래서 미안해하며 케네디에게 부탁했다. 케네디가 상자를 번쩍 들어 옮겨 주었다. 스무 살도 안 된 케네디가 내게 하는 말이 정말 예뻤다. ‘전혀 걱정하지 마. 내가 알아서 처리할게.’ 이렇게 말하는 케네디의 얼굴에 자부심이 가득했다. 나를 도와줄 수 있어 진심으로 기뻐하는 것 같았다. 케네디의 환한 미소 때문에 기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