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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운 Mar 05. 2024

기억의 그림자

말 없는 그리움

그리움이 밀려올 때면 온몸으로 파도를 맞는 기분이 든다.   

애초부터 흔적이란 건 지울 마음도, 버릴 자신도 없었다.

기억의 보루처럼 남겨두어야 했다.  


#외할머니와 계좌번호    

'즐겨찾기 계좌'에 저장된 사랑하는 이름과 숫자.     

할머니의 이름을 얼굴을 마주하듯 만져본다.   

소소하게나마 용돈을 부쳐드릴 수 있던 시절이 좋았다.

내가 돈을 번다는 사실이 그래서 좋았다.

당신은 미안해하셨어도 아무래도 난 좋았다. 그럴 수 있어 감사했다.

이제는 움직이지 않는 숫자를 바라본다.

현실을 도리질하듯 마음이 찰랑거린다.


#할아버지와 전화번호

주소록 'ㅎ' 차례에 저장된 '할아버지'와 전화번호.

019로 시작하는 번호가 이제는 먼 시간을 가리킨다.

이젠 주인 없는 번호를 물끄러미 보다 통화 버튼을 누르고 만 나는 익숙한 안내 멘트에 멀미를 느낀다.

부르고 싶은 글자 네 개를 애꿎게 쓰다듬을 뿐.


시간이 무색하게 단련되지 않은 나는 기억을 따라온 현실에 문득문득 숨이 막혔다.  

부재를 인정하기 여전히 어려워했다.

그건 꺼내기 두려운 일이기도 해서 때론 기억마저 말없이 재워야 했다.


그럼에도 8할의 기억을 채운 것이 행복이란 사실을 나는 알고 있다.

기억의 그림자는 길고, 소식처럼 찾아 올 그리움을 기다린다.  


※ 대문 이미지 출처: Pexel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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