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부모님과 동거 중
합가 8년 차로서 시부모님과 함께 산다는 점은 불편한 점도 분명 있지만 정말 합가 하길 잘했다. 부모님과 함께 살아서 너무 좋다.라는 생각이 드는 때도 분명히 있습니다. 어떤 일이든 어둠이 있으면 빛이 있고, 나쁜 점이 있다고 해도 좋은 점이 있으니 살 수 있는 거겠죠. 오늘 제가 이야기하는 장점들은 시댁과 친정 둘 중 어느 쪽과 합가를 진행하느냐에 따라서 조금은 달라질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생각했을 때 합가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장점을 한번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1) 제철 나물, 제철음식 놓치지 않아! 우리 아이 최애는 김치
저희 집 세찌는 이제 만으로 40개월인데요. 벌써부터 김치를 반찬으로 밥을 먹습니다. 안 매운 김치는 씻어내지 않고 먹고, 약간 매운 것은 물로 씻어내서 먹지요. 그리고 최애 반찬은 고사리나물과 멸치볶음이죠 고기보다 더 좋아하는 반찬이에요.
어린이집 원장 선생님도 확실히 할머니랑 살아서 그런지 다른 친구들과 비교했을 때 음식을 가리지 않고 잘 먹는다고 하더라고요. 시금치, 미역줄기 무침, 땅콩조림부터 김치까지 확실히 가리지 않고 먹는 것은 할머니와 같이 살기에 별도의 노력 없이 가능한 일인 것 같은데요. 특히 워킹맘에 요리에 완전 똥 손인 제 상황을 고려했을 때 저 혼자 케어했다면 거의 밀키트나 배달음식으로 아이들을 먹였을 것 같은데 저는 합가를 선택한 덕분에 아이들에게 제철 나물, 제철음식을 집에서 만들어 바로 먹이는 특혜(?)를 누리고 있는데요.
제 주면에 친구들 보면 요리를 잘하는 친구들도 메인 요리 1개에 집중하고 밑반찬은 간단하게 먹거나 거의 없이도 먹더라고요? 하지만 어른들은 밑반찬이 여러 개 있어야 비로소 밥을 먹는다라고 생각하시기 때문에 저희 집에는 다양한 밑반찬이 있고, 자연스럽게 아이들이 반찬을 다양하게 접하게 되는 것 아닐까 싶어요.
2) 봄에는 쑥 캐고 가을에는 고구마 캐고 냉이는 덤
자연의 변화를 몸소 체험하는 거 좋죠. 물론 이러한 텃밭(?) 활동을 좋아하는 부모님들이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보편적으로 제 또래의 엄마 아빠들을 보았을 때 야외활동의 대다수가 벚꽃구경이나 동물원, 놀이동산을 가더라고요.
가을에 하는 고구마 캐는 것보다 딸기체험 같은 것을 좋아하고요. 아무래도 고구마 캐는 것은 흙밭이라서 뒤처리가 힘들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요. 그래서인지 고구마 캐기 활동을 어린이집에서 했으면 됐다고 치부하는 경우가 많고 적극적으로 찾아다니는 사람들은 극 소수더라고요.
저희는 어머님이 워낙 이런 것을 좋아하셔서 봄에는 쑥과 냉이를 캐고 가을에는 고구마와 가을 냉이를 캐는데요. 아이들에게 쑥이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냄새를 가지고 있는지 알려주면 곧잘 따왔어요. 물론 어른처럼 완벽하게 따진 않고 잎사귀만 좀 따오긴 해도, 따오면서 스스로 성취감도 느끼고 재미있어도 하고요. 고구마 캐는 활동은 어린이집에서 많이 캐봐서 그런지 모르겠만 저보다 더 잘하는 것은 안 비밀입니다. 냉이도 이렇게 생긴것이 냉이다 이렇게 알려주면 보물찾기 하듯이 찾아서 엄마한테 신고한답니다 “엄마 여기 냉이!!!” 그럼 제가 가서 캐줘요. 스스로 캐고 또 향도 맡았으니 먹어야겠죠? 직접 따온 쑥으로 만들어먹는 쑥떡의 참맛을 알아버린 4세, 6세, 8세입니다.
3) 할아버지 할머니는 친근해요
저희 아이들은 연세가 있는 어르신에게 거리감을 전혀 느끼지 않더라고요. 길다가가 할머니 느낌이 물씬 나는 어르신이 지나가면 자기가 먼저 씩씩하게 인사해요. 사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인사를 더 잘 받아주시기고 하고요. 젊은 아줌마나 언니들한테도 인사를 하는데 사실 이분들은 자기한테 하는 거라고 생각을 못해서 그런지 그냥 슝~ 지나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면 아이가 되려 저한테 물어봐요' 아줌마는 왜 그냥 가요?' 그럴 땐 “아줌마가 바빠서 못 보셨나 봐~” 이렇게 대답해주곤 했죠. 하지만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거의 100% 화답을 해주십니다. 가는 길을 멈추어 서서 이쁘다고 씩씩하다고 한 마디씩 해주시고 주머니를 막 뒤져서 사탕이라도 건네주시려고 하거든요. 그래서 아이들도 인사할 맛이 나는지 저희 막둥이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등지고 있으면 아예 툭툭 건드리고 인사를 합니다.
생각해보면 저부터도 엘리베이터에서 같은 라인에 사는 이웃을 만나더라도 가볍게 목례 정도로만 하지 인사를 소리 내서는 잘 안 하게 되더라고요. 상대방이 안 받아줄 수도 있다는 자기 방어 때문인지 모르겠지만요. 그에 반해서 할머니들은 스몰토크의 최강자잖아요. '안녕하세요~ 어디 다녀오시는 길인가 봐요?'이런 작은 토크들로 안면을 트시다 보니 아이들도 어른들을 마주치면 무조건 인사하더라고요. 이건 진짜 합가를 함으로 인해서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터득하게 되는 예절인 것 같아요.
4) 일하는 엄마의 걱정이 덜해요.
가끔 예상치도 못하게 회의가 길어지거나 외근 후 복귀하는데 길이 막혀서 당황한 경험이 있는 워킹맘들 많으시죠? 저 역시 혼자 케어할 때는 그럴 때마다 여기저기 전화하느라 운전을 무슨 정신으로 했는지 모를 정도로 마음을 졸이곤 했었는데요. 합가를 하고 난 뒤로는 늦더라도 걱정이 덜하고 업무에 집중을 할 수가 있습니다. 최소한 차량을 타고 하원 해도 돌봐줄 보호자가 집에 있으니까요.
맞벌이라면 당연하게 야간진료밖에 이용을 못하잖아요? 6시 이후에 진료하면 진료비도 무시할 수 없죠. 합가를 하게 되면 그래도 병원을 제시간에 갈 수 있게 되더라고요. 저는 6시 이전에 진료비가 2천 원 도하지 않는다는 것을 합가 해서 알게 되었거든요. 물론 급격히 열이 오른다거나 많이 다쳤을 경우에는 엄마가 필요해요. 그래서 급격하게 조퇴를 하고 가는 경우도 있어요. 그건 당연히 제가 케어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전보다는 마음이 덜 초조하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합가를 하길 잘했다는 생각을 저절로 하게 된답니다.
5) 자연스럽게 익히는 풍습, 풍부한 표현력
할머니들은 특히 절기에 맞게 동지에는 팥죽을 먹고 입춘에는 봄이 왔으니 보리밥을 먹죠. 저를 포함한 요즘 엄마들은 24절기 중 유명한 것 뭐 대부분 중복, 말복, 동지, 하지 정도만 알지 절기를 어떻게 나누는 건지도 모르잖아요? 저희는 할머니 덕에 풍습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공부를 하게 되더라고요. 또 요즘과 다른 어른들의 표현력을 그대로 닮아가기도 하는데요. 이것은 학습적으로도 합가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이점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예를 들면 저희 집 막내가 봄에 나들이할 때 "엄마 바람이 살랑살랑해~"이렇게 자주 이야기하고, 날씨에 대해서 다양한 표현을 하는데, 물론 책으로도 접할 수 있는 겄지만 책 보다 기억에 많이 남는 것은 경험이라고들 하잖아요? 할머니와 다니면서 할머니가 하던 표현들을 흡수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생각해보면 어머님이 늘 날씨를 보면서 "햇빛 쨍쨍한 거 봐라~살랑살랑 바람 잘 분다~"이런 표현을 많이 하셨거든요? 그래서 그런지 아이들이 알게 모르게 이러한 표현을 배우는 것 같아요. 뜨거운 물에 들어가서 시원~하다! 를 외치는 저희 막둥이 표현력이 장난 아니죠?
합가 하면 막연하게 불편한 점만 떠오르고 스트레스받는 생각만 하게 되는데요. 의외로 생각하지도 못한 장점이 많아요. 물론 살림을 합친다는 것, 어른들과 같이 산다는 점이 쉽다는 이야기는 아니에요. 하지만 어차피 합가를 해야 한다면, 하기로 마음먹었다면 단점보다는 장점을 위주로 마인드 컨트롤을 해보기로 했죠. 이렇게 시부모님과 동거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