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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성윤 Jun 20. 2022

영화 '브로커'-고레에다 월드의 스포츠  장면들

최고의 배우, 아쉬운 영화, 그러나 항상 여운을 남기는

고레에다 월드라는 말을 사용했지만 이런 말이 존재하는지는 모르겠다. 예전 시네 21과 키노에 빠져있던 시절 '이와이 월드'라는 단어를 영화계에서 많이 사용했지만 최근에는 더 이상 영화 잡지를 읽지 않기 때문에 고레에다를 어떻게 지칭하는지는 잘 모른다. 다만 그의 영화를 모두 보았기에 '이와이 월드'처럼 검은 이와이와 하얀 이와이가 아닌, 고레에다의 작품은 늘 일관성을 갖고 있다는 정도만 알고 있다.


고레에다의 영화를 보고 나면 항상 아쉬움이 남는다. 왕가위나 스탠리 큐브릭처럼 작품 속에 완전히 빠져든 적도 없고, 같은 일본인이자 지금은 위상이 많이 낮아진 이누도 잇신 영화 주인공들에게 느끼던 공감을 고레에다 영화에선 찾지 못했다. 이번 영화 '브로커' 역시 비슷한 감정이었다. 또한 다소 부족한 부분이 있었지만 언제나 여운이 남으며 다음 작품을 기다리게 한다는 점에서 고레에다 표 영화는 변하지 않았다.


단 한 번도 100% 지지를 보낸 적이 없으면서도 그의 영화에 끌리는 이유는 놀랍게도 내가 아주 좋아하는 배우들이 항상 그의 영화에 등장하기 때문이다. 일드 '트릭' '결혼 못하는 남자'의 주인공인 아베 히로시와 일본판 김혜자라고 할 수 있는 '키키 기린'은 고레에다의 페르소나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바닷마을 다이어리에 나오는 주인공인 아야세 하루카와 나가사와 마사미는 명실상부한 일본의 탑 탤런트이며 같은 영화에 등장한 카오 역시 어린 시절에 비해 역변한 것이 아쉽지만 한때 국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끈 아이돌이었다.


이번 브로커의 매우 역시 고레에다가 나를 위해 만든 영화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사랑스러운 배우들로 가득하다. 내 인생의 드라마에 가까운 '나의 아저씨'의 지안이인 아이유를 비롯해서, '린다 린다 린다'와 '고양이를 부탁해' 등에서 최고 연기를 보여준 배두나, '야구 소녀'에서 멋진 캐릭터로 등장한 이주영이 등장하는 데다, '배신이야 배신, 배반!!!'으로 시작해 이창동과 박찬욱, 봉준호 같은 거장들과의 작업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배우가 돼 송강호까지 모든 구성원이 완벽했다.


'브로커'에 대한 평가는 비판적인 것으로 알고 있다. 사실 설정 자체가 워낙 파격적이어서 개별 인물들에게 공감하기 어려운 데다, 스토리 역시 작위적인 부분이 존재한다. 하지만 '원더풀라이프' 부터 시작해서 고레에다의 작품은 항상 그래 왔다. 뭔가 비현실적이면서 100% 감정 이입되지는 않아서 영화에 불만을 갖게 되는데, 조금 지나고 나면 공감은 못하지만 이해는 하게 되는, 그래서 다음 작품을 다시 찾게 되는 과정의 반복이었다.


'브로커'에서 반가운 부분은 이번에도 고레에다의 영화에선 '스포츠' 관련 부분을 찾을 수 있었다는 점이다. 제2의 손흥민을 꿈꾸는 어린 소년의 모습, 2022년을 살아가는 한국에서 '손흥민'이란 존재는 너무가 큰 영향력을 미치기에 어쩌면 상투적일 수도 있을 것이다.  고레에다의 영화에선 짧게나마 '스포츠'에 대한 묘사가 자주 등장한다.

'걸어도 걸어도'에서는 스모 선수에 대한 이야기가 주요 모티브로 등장하며 '바닷마을 다이어리'에서는 여자 축구가 삶을 지탱하는 원동력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전작 '어느 가족'에서도 스포츠 관련 장면이 등장한다. 시바타라는 이름은 소개하는 대목에서 주인공은 '시바타, 교진노 시바타'라고 이야기한다. 영화 자막에서는 '거인의 시바타'라는 대목이 나타나지 않고 그냥 '시바타'라고만 번역되어 있지만 일본 야구 마니아의 귀에는 너무나 또렷하게 들리고 강한 인상을 남긴 장면이었다. 일본에선 성이 8만 개를 넘는 데다 한자가 같더라고 읽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에 대부분 확인 과정을 거치는데, '거인의 시바타'라는 단어를 통해 요미우리에서 활약했던 그 시바타와 같습니다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요미우리의 시바타 이사오는 고시엔 우승 투수로 프로에 입단했지만 프로의 벽에 부딪친 뒤 곧바로 타자에 집중해 주로 1번 타자로 활약했으며 '도루'에 강한 모습을 보인 선수였다. 역대 도루 3위에 올라있는데, 그는 1962년 일본 선수 최초로 빨간 장갑을 착용한 것으로 더욱 유명하다. 미국 전지훈련 도중 장갑을 사러 갔는데 손에 맞는 색깔이 빨간 장갑뿐이어서 우연히 착용한 뒤, 그의 캐릭터가 된 것이다. 한국야구에서 빨간 장갑의 마술사로 불렸던 김동엽 감독 역시 시바타에게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후계동 지안이로 내 마음속으로 들어온 아이유가 나오지 않았더라도 고레에다의 영화를 보러 갔을 것이다. 분명 아쉬움을 느끼지만 다음 작품이 궁금하고, 영화관에서 보게 만드는 것은 분명 고레에다 영화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다음 영화에도 스포츠 관련이 나오면 좋겠고, 이왕이면 그동안 한 번도 다루지 않았던 '고시엔' 관련 대목을 발견한다면 어쩌면 작품에 관계없이 그냥 100점을 주게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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