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슷한 멜로디에 얽힌 사연
스승의 날이라는 멋진 이름은 아마도 우리나라에만 있는 듯하다. 스승이라는 표현이 순수한 우리말인 데다 일본이나 중국 모두 '스승의 날'이나 '선생의 날' 아닌, 교사의 날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어 존경의 의미가 포함된 스승의 날이라는 것은 다시 생각해보다도 훌륭한 이름임에 틀림없다. 스승의 날 하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노래는 아마도 '스승의 은혜'일 것이다. 이 노래에서 절정을 이루는 멜로디는 '아아아 고마워라 스승의 사랑, 아아아 보답하리 스승의 은혜'라는 부분일 것이다. 그런데 이 부분이 그 유명한 '낳으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로 시작되는 '어머니의 마음' 부분과 묘하게 어울리는 까닭에 웃지 못할 해프닝이 일어난 적이 있다.
고교시절 매주 월요일이면 애국 조회를 했는데, 학창 시절 마침 어버이날에 조회가 열렸던 것 같다. '어머니의 마음'을 합창하게 되었는데, 중간에 '손발이 다 닿도록 고생하시네' 이후에 나오는 가사는 '하늘 아래 그 무엇이 높다 하리오'이지만 어떤 친구가 '아아아 고마워라 스승의 사랑'이라고 부른 것이었다. 그 친구가 장난으로 한 적인지 진짜 헷갈린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머니의 마음'에 '스승의 은혜'를 부른 친구는 아마도 학생 주임으로 기억되는 분에게 끌려나갔던 것 같다.
이와 비슷한 일은 군대 훈련소에서도 일어났다. 새벽에 기상나팔과 함께 연병장에 집합한 훈련병들에게 평소보다 강한 얼차려가 주어졌고, 얼차려 이후 '어머니의 마음'을 부르라는 지시가 떨어졌는데, 똑같은 부분에서 누군가가 '스승의 은혜'를 부른 것이었다. 하지만 여기는 학교가 아닌 군대. 이를 깨달은 몇몇이 더 강하게 '하늘 아래 그 무엇이 높다 하리오'를 합창하면서 '스승의 은혜'를 부른 훈련병의 목소리는 군대 고위층에게 전해지지 않았고, 이를 들었던 몇몇 사람들만이 내무반에 돌아와 후일담으로 두고두고 써먹었을 뿐이다.
'어머니의 마음'과 '스승의 은혜'처럼 서로 다른 두 노래의 멜로디가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부분이 있다는 건 대학 때도 경험한 바 있다. 90년대 초반에는 꼭 집회에 참석하지 않더라도 주점에서 이른바 민중가요를 많이 부르곤 했는데, '전대협 진군가'와 '철의 노동자' 중간 부분 멜로디가 비슷한 관계로 이번에는 실수가 아닌 재미로 두 노래를 합쳐 부르기도 했고, 이른바 '철의 전대협'이라는 애칭이 붙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보통 노래가 아닌 한 나라의 상징인 '국가'의 멜로디가 같은 경우까지 존재한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영국 그룹 Queen의 광팬이었기에 'God save the Queen'이 퀸 공연의 마지막을 장식하느 것을 잘 알고 있었는데 지식이 일천했던 탓으로 그 노래가 영국 국가였다는 것은 시간이 조금 지나고 알게 되었다. 퀸의 라이브 때 모든 사람들이 따라 부르던 노래가 국가였다는 건 굉장한 충격이었다. 그런데 더욱 충격적인 일은 유럽의 소국 리히텐슈타인의 국가가 영국 국가와 같은 멜로디를 사용하다는 사실이었다. 실제 영국과 리히텐슈타인이 축구 a매치를 치른 때 같은 멜로디가 두 번 연주된 적이 있다. 스코틀랜드와 리히텐슈타인의 경기 때에는 스코틀랜드 팬들이 국가가 잘못 연주된 것으로 생각해 항의 소동을 벌인 일까지 있을 정도이다.
지난 3월 출간한 '청춘 여름 꿈의 무대 고시엔'에는 교가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고시엔 경기에서는 교가가 울려 퍼지게 되는데 교가 문화를 가진 나라는 전 세계에서 한국과 일본 정도라는 사실, 교가는 올림픽에서 국가가 연주되는 것에 감동을 받은, 올림픽 출전 경험을 가진 마이니치 신문사 직원이 제안했고, 지금은 고시엔의 중요한 문화로 자리 잡았다는 사실을 설명한 바 있다.
그런데 100년이 넘은 고시엔 역사에서 교가가 같은 학교가 대결한 적은 아직까지 한 번도 없다. 지난 2021년 여름 고시엔 결승전은 같은 재단 학교끼리 펼쳐져 '지벤 대결'이라는 명칭이 붙기도 했는데, 이 두 학교는 교가의 가사와 멜로디가 모두 다르다. 일본에는 라쿠텐의 다나카가 나온 고마자와 대학 계열 고등학교와 도카이대 계열 학교의 경우 같은 교가를 사용한다. '고마자와'나 '도카이' 대 계열 학교들이 나란히 현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두 고시엔 본선에서 추첨을 통해서 직접 대결을 벌일 확률은 매우 낮다. 하지만 그런 일이 벌어질 경우 고시엔의 역사를 장식한 또 하나의 사건으로 큰 화제를 모으게 될 것이다.
과거 군사부일체라고 해서 스승의 그림자는 밟지 않는다는 말까지 있었다. 스승은 부모와 같은 존재이니 '어머니의 마음'과 '스승의 은혜' 멜로디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은 어쩌면 더 깊은 뜻이 있을지도 모른다. '철의 전대협'은 대학을 졸업하고 노동자가 된 이후까지 내다본 포석일 수 도 있다. 영국 국가와 리히텐슈타인은 유럽 유일의 섬나라와 유럽 유일의 이중 내륙국이라는 극단적으로 다른 나라를 하나로 묶는 구심점일 수도 있다. 고시엔에서 같은 교가를 쓰는 학교 간 대결이 어려운 건 고시엔은 특정 학교의 축제가 아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스승의 은혜와 어머니의 마음은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