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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성윤 Sep 16. 2022

세계 청소년 야구 한일전을 보며 떠오른 것들

일본 고교야구 고시엔은 파라다이스인가? 갈라파고스인가?

18세 이하 세계 청소년야구 슈퍼라운드에서 우리나라가 일본에 8대 0으로 완승을 거뒀다. 지난 3월 '청춘, 여름, 꿈의 무대 고시엔- 100년 역사의 고교야구로 본 일본의 빛과 그림자'를 출간한 뒤, 처음 열린 고교야구 한일전이기에 더욱 주의를 기울여 지켜본 경기였다. 책에서 언급한 일본 고교야구에 대한 내용 중에 파라다이스보다는 갈라파고스 부분이 극명하게 드러난 한일전이었다. 


한일전 패배  소식은 일본 언론에서도 주요 뉴스로 다뤄지고 있는데, 특히 마지막 투수로 나선 김서현에 대한 극찬이 대부분이었다. 160km가 넘는 강속구를 뿌리는 고교생이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나타내면서 한국의 오타니, 한국의 사사키 로키로 지칭하기까지 했다. 한일전 패배 기사에 나온 일본 네티즌들의 댓글에서 가장 많이 나온 부분은 여전히 알루미늄 배트를 사용하는 일본 야구에 대한 비판이었다. 지난 2004년부터 국제 대회에서 나무 배트를 사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에서 일본만이 알루미늄 배트를 쓰고 있어 국제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 이번 대회에 출전한 일본 대표 선수들은 대부분 야구 명문교의 최고 선수들로 구성되었다. 특히 한일전 선발로 출전한 야마다는 2022년 여름 고시엔 대회에서 가장 주목받은 선수로 투타에서 단연 최고 선수였지만 2회를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다. 일본 타선은 우리나라 선수들의 공을 전혀 공략하지 못했다. 물론 야구의 특성상 한 경기로 판단하기에는 무리가 따르지만, 전체적인 힘의 차이는 분명히 느낄 수 있는 경기였다. 


일본 고교야구가 여전히 금속 배트를 사용하는 것에서 나타나듯 일본은 국제무대 경쟁력에 큰 관심을 갖지 않는다. 이번 세계 청소년야구는 1981년부터 시작되었는데, 선동열과 김건우 등이 출전한 우리나라가 우승을 차지했다. 당시 연일 신문에 보도될 정도로 우리나라에서 큰 뉴스였다는 것은 1회 대회 우승 멤버들이 병역 면제 혜택까지 받았다는 것에서 알 수 있다. 이후에도 이승엽 시절, 추신수 시절을 비롯해 우리나라는 5번이나 세계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바 있다. 


반면 일본은 1회 대회에 불참을 비롯해 세계 청소년 야구에 베스트 멤버로 출전한 적이 거의 없었다. 2회 대회에는 전국이 아닌 토도 대학리그의 1, 2학년 선수들만 선발해 출전했고, 1999년에는 오키나와 지역 대표를 출전시킬 정도였다. 특별한 이유 없이 불참한 경우도 많았다. 대외적으로는 대회 기간이 고시엔 대회와 겹친다는 측면을 강조했지만 실제로는 고시엔이라는 파이가 워낙 크다 보니, 세계 청소년야구대회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은 면이 더 강하다고 할 수 있다. 

일본이 고시엔 본선에서 활약한 선수들을 포함해 베스트 멤버로 출전하기 시작한 것은 타이완에서 열린 2004년 대회부터이며  8년 뒤엔 2012년 한국 대회에도 주요 선수들이 출전했지만, 한 번도 우승을 차지하지는 못했다. 일본 고시엔 야구에서는 매년 영웅이 탄생한다. 고교야구 인기가 쇠락한 우리나라와는 달리 일본은 여전히 야구 소년들의 이야기에 열광하다. 세계에서 가장 고교야구 인기가 높은 일본이 세계 무대에서 경쟁력을 잃은 가장 큰 이유는 세계 대회 자체를 보너스 게임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2012년 이후 세계 청소년야구 대회 소식은 일본에서도 주요 뉴스로 다뤄지는데, 매번 비슷한 형태를 반복한다. 일본에서도 프로를 지망하는 선수들은 나무 배트를 이용해 '개인' 연습을 하지만, 그래도 국제무대에서 나무 배트 적응에 어려움을 겪기 때문에 국제무대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일부 언론이나 일부 야구팬의 견해로 치부될 뿐 나무 배트 도입 여부를 실제로 검토하지는 않는다. 


4000개에 가까운 일본 고교야구팀은 강도 높은 야간 합숙 훈련까지 진행하는 엘리트 학교와 동아리 수준의 학교가 공존하기 때문이다. 나무 배트를 도입하게 되면 동아리 수준의 학교가 경기력이나 비용상의 문제로 더 이상 야구를 하기가 어려워 일본 고교야구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 야구는 일본 고교야구보다 국제무대 경쟁력에서는 분명 앞서있지만 야구 인프라를 비롯해서 일본 야구에서 배울 점에 주목해야 한다. 2012년 세계 청소년야구에서 우리나라의 이건욱이 일본의 오타니와의 선발 맞대결에서 이긴 것은 한일 야구의 위치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일본 고교 야구는 대부분이 빡빡머리를 하고 있으며, 여전히 등번호를 부착하는 방식을 유지하고, 감독 대신 전령이 마운드에 오르는 것을 고집하며, 국제 기준에 맞지 않는 금속 배트를 사용하며, 에이스 투수들의 혹사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않으며, 자원봉사로 운영되는 심판들의 수준도 결코 높지 않으며, 상하관계에 의한 폭력 등 여러 가지 문제점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이런 문제점 속에서도 고시엔은 선수들의 꿈의 무대이며, 일본 야구는 여전히 세계 수준의 경쟁력을 갖고 있는 이유에 대해 진지한 성찰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본 야구를 진짜로, 제대로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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