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들어 처음으로 다시 함덕바다에 왔다. 이 바다는 올해 여름이 시작되고나서부터 죽 머릿속에 그려왔던 그 그리운 바다였다. 옥빛 바다가 눈앞에 좍 펼쳐져 있는 모습을 얼마나 수십 번 머릿속에 그려 보았던가. 서우봉을 오른쪽에 끼고 펼쳐진 옥빛 바다는 언제나 똑같은 모습이다. 함덕 바다가 특별히 아름다운 것은 긴 해변만큼이나 아름다운 길고 하얀 백사장 때문이다. 그 백사장은 모래가 유난히 하얗고 고울 뿐만 아니라 군데군데 구릉으로 된 지형 속에 푸르른 잔디밭과 길게 뻗은 야자수 나무들과 어울려 빼어난 풍광을 자랑하기 때문에 한번 보면 오래도록 잔상에 남는다. 오른 쪽에 살짝 솟은 서우봉 중턱에 올라서 벤치 같은 곳에 앉아 아무 생각 없이 멀리 뻗친 해변을 조망하면 가슴이 시원해지고 웅장해 지기까지 한다. 그것이 내가 함덕 바다를 좋아하는 이유이다.
좋아하는 곳을 반복해서 찾다보면 처음에 느꼈던 “와”하는 느낌은 많이 가셔지고 익숙함 때문에 덤덤해지기도 하지만 함덕 바다의 옥빛 색깔 만큼은 여전히 가슴을 설레게 한다. 제주도에서 바다 빛깔이 아름답기로는 협재 바다를 제일로 치는 사람이 많겠지만 그외에도 월정리 바다나 하도리, 세화리 등의 바다 색깔도 못지 않다. 또 표선 바다는 드넓은 백사장으로 유명하다. 너무 넓어서 한쪽 끝에서 다른 저쪽 끝을 보면 모든 사물이 가물가물하게 보일 정도이니 그 점에선 가슴이 시원해질 정도로 탁월하다. 밀물이 들어왔을 때와 썰물이 나갔을 때의 그 넓은 바닷가의 느낌이 사뭇 달라서 언젠가 밀물이 밀려왔을 때 깜짝 놀란 적도 있다. 그런데 나에겐 뭐니뭐니해도 함덕 바다가 제일이다. 물놀이 하기에는 여기만한 곳이 없다고 생각한다. 함덕 바다는 매우 넓지만 한꺼번에 툭 트인 것이 아니라 구릉과 잔디밭으로 인해서 대충 세 군데로 나뉘어진다. 사람들은 그래서 각자 자기가 선호하는 곳에 가서 즐기면 된다. 서우봉에 붙어 있는 쪽이 사람이 제일 적은 편이고 멀리까지도 바닷물 깊이가 얕아서 나는 그곳을 좋아한다. 거기에선 돗자리나 파라솔을 그쪽 업자들에게서 비싼 돈 내고 대여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없다. 자기들이 테이블과 파라솔을 설치해 놓은 곳 말고도 비교적 넓은 면적을 비워놓아서 사람들이 자유롭게 자신들이 가져온 돗자리를 펴고 놀 수 있다. 기껏 찾아온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선사하지 않는다는 건 중요한 미덕이다. 한 두 해만 돈 벌고 끝낼 것이 아니라면 장기적인 안목이 중요한 것이고 이런 것은 사실 말할 필요도 없는 기본적인 룰에 속하는 것이다.
나는 수영을 잘 못하지만 물속에 들어가서 첨벙거리고 잠깐씩 잠수를 하거나 물 위에 떠 있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수영하기 적당한 날씨에는 반드시 단 몇 십분이라도 물에 들어가서 논다. 한국 남자치고는 꽤 수영을 잘한다고 볼 수 있는 남편은 좀 더 깊숙한 곳에 가서 놀고 나는 허리께까지만 오는 얕은 물속에서 각자 따로 놀곤 한다. 사실 이 나이에 물에 들어간다는 것 자체가 남 보기에 민망할 수도 있지만 많은 사람과 좀 떨어져서 한적한 곳에서는 시선을 두려워하지 않고 물속에서 즐길 수 있다. 내돈내산이라는 말처럼 내돈 내고 내발로 와서 노는 데 누구를 두려워하랴? 그런 점에서는 외국 사람들, 특히 그리스 사람들의 당당함과 태연함을 배울 필요가 있다. 그들은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수건 한 장 달랑 들고와서 배가 불룩 나왔던, 온몸이 쭈글쭈글한 주름으로 덮혀있던, 피부가 볼품없고 공처럼 굴러갈 듯 뚱뚱하던 관계없이 물속에서 유연하게 수영을 하며 즐기고 싶은 만큼 즐기고 훌훌 떠나간다. 그 모습이 얼마나 자연스러운지 모른다. 나이 때문에 위축되는 못난 짓은 이제 그만둘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 체제 내에서 태어나 열심히 학교 다니고, 그것을 바탕으로 사회에 나가서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세금 내고, 두 아들 키워서 군대에까지 잘 보내고, 차 없는 곳에서 신호등 무시하고 횡단보도를 무단횡단한 것 말고는 조그마한 법도 어긴 적이 없이 소심하게? 아니 당당하게 살아온 내가 도대체 무엇때문에 위축되어야 한단 말인가?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1시간 가량 바닷물 속에서 간간히 자유형으로 수영을 하기도 하고 배영으로 누워있기도 하다가 너무도 따가운 햇볕에 밀려나듯 물밖으로 나왔다. 그 다음에 할일은 파라솔 밑에 멍하니 앉아서 눈이 따가워질 때까지 수평선을 바라보기도 하고 사람들, 특히 어린애들이 노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다. 다른 곳도 마찬가지이겠지만 특히나 바닷가에서 아이들이 노는 모습은 너무나 사랑스럽고 귀엽다. 짧은 팔 다리를 휘저으며 걷는 모습, 다리 벌리고 앉아서 젖은 모래로 성을 쌓는 모습, 튜브를 타고 빙글빙글 돌아가는 모습 괜시리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모습 등등이 너무나 자연스럽고 평화롭다. 바닷가에서는 어른이나 아이나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 같다. 물과 모래와 하늘만 있는 곳에서는 너무 당연한 일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몸이 뜨거워졌으므로 시원하게 몸을 씻고 나서 다음에 갈 곳은 정해진 규칙을 따르기라도 하는 것처럼 카페에 가서 목을 축이는 일이다. 함덕에는 뷰가 좋은 카페들이 매우 많다. 문제는 어디든 손님들이 꽉꽉 들어차므로 비어있는 자리를 찾아내는 것이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있는 카페로 가서 다행스럽게도 우리가 서성거리고 있던 바로 옆자리에서 손님들이 떠나가는 바람에 창가 쪽 전망 좋은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거기에 앉아서 특 트인 전망을 즐기면서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아포가또를 목에 넘기니 비로서 더위가 가시고 살만해 지는 것 같았다. 바닷가 카페 이층은 뷰에 있어서만큼은 더할나위 없지만 주위에서 시끄럽게 떠드는 사람들이 하도 많아서 음료를 다 마시자마자 서둘러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이 바닷가에서는 더 자유스러워지고 말이 많아지는 것인지 알 수 없다. 가끔 이렇게 좋은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는 기쁨도 잠시, 주위 사람들의 시끄러움 때문에 쫓겨나듯 자리에서 일어날 때마다 왜 사람들은 공공장소에서 아무 거리낌없이 자기들 생각만 하고 떠드는 걸까 이해가 안된다. 내가 특별히 까다로운 사람은 분명히 아닌데도 이런 경우가 생길 때마다 내가 이상한 건지 사람들이 이상한 건지 생각이 복잡해진다.
카페를 나와 이른 저녁을 먹고 호텔로 들어갔다. 원래 머무르는 곳에서 차로 40분쯤 떨어진 이곳 함덕 호텔을 예약한 것은 파도소리를 들으면서 자고 싶은 조그만 바램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호텔도 함덕 바다에 면한 큰 대로변에 있는 바다 전망이 확실한 곳으로 예약했다. 저녁 어스름 때에 호텔 방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또 다른 맛이다. 하늘이 분홍빛으로 물이 들었다가 점차 강렬한 주홍빛으로 변해가고 구름이 울긋불긋 화려하게 변하는 모습을 보면 ‘또 하루가 저물고 있네‘ 라는 생각 때문인지 그냥 까닭없이 착잡해진다. 자연은 저리도 아름다운데 그밖의 것들은 그렇지 못한 것 같아서 씁쓸해지기도 한다. 그런데 생각 과잉이 행복을 몰아내는 것 또한 사실인지도 모른다. 아름다움은 그냥 아름다움으로 보기로 하자고 생각을 고쳐먹는다.
한낮에 태양빛을 너무 받은 탓인지 쉽게 피로가 몰려왔지만 tv에서 이것저것 보다 보니 11시가 가까와졌다. 잠을 자려고 불을 끄고 누우면서 파도소리를 듣기 위해 에어컨을 포기하고 창문을 열어놓으니 이게 웬걸? 듣고자했던 파도소리는 들려오지 않고 옆방 아랫방의 에어컨 실외기 돌아가는 소리만 요란했다. 아니 이런 낭패가? 더위를 참아내면서라도 파도소리를 들으며 잠들고 싶었던 나의 작은 소망은 무참히 깨져버렸다. 사실 이곳에 호텔을 잡은 중요한 이유가 그것 때문인데 이렇게 되면 난 어쩌란 말인가? 황당하기 그지 없었다. 내가 바닷가를 좋아하는 이유는 낮의 푸른 바다 모습 못지않게 밤바다를 느끼기 위함인데 이건 완전히 기대에서 벗어난 것이 아닌가. 철썩 처얼썩 해변을 때리는 파도소리가 얼마나 그리웠는데… 나는 그냥 망연자실해졌다. 이런 상황이라면 굳이 창문을 열고 에어컨을 포기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나는 눈물을 머금고 창문을 닫아 걸고 에어컨을 틀고 커튼을 치고 침대에 눕는 것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잠이 쉽게 오지 않으리란 것은 불문가지, 현대문명이 자연을 다 망쳐놓았다는 생각에 속이 부글거렸다. 이런 곳에서도 네온싸인이며 가로등이며 가게의 불빛 때문에 암막커튼을 치지 않으면 까맣게 어두워지지 않아 잠 자는데 불편을 겪는다. 바닷가에서조차 자연 본래의 빛과 소리를 느낄 수가 없다는 것은 뭔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문명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 아니고서는 자연의 빛을 보고 느끼고 자연의 소리를 들을 수가 없는 것이었다니! 어디 무인도에라도 가지 않으면 불가능한 상황이 되었다는 사실이 나를 우울하게 만들었다. 오오오 이런 !!
(2024년 8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