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자주 다니는 산책로인 경의선 숲길 중간쯤에 작은 카페가 작년에 문을 열었다. 남편과 나는 호기심 삼아 작년에 두어 번 들어가서 차를 마신 적이 있는데 분위기가 밝고 맘에 들어서 자주 와도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었다. 그렇지만 산책에 집중하다보면 목표지점 중간에 있는 카페에 선뜻 들어가기가 힘들어서 생각과는 달리 올해 들어선 한 번도 못 왔었다가 오늘 드디어 다시 왔다. 카페는 좁다란 5층 건물인데 1층이 좁은 대신 2층에 자리가 좀 더 많아서 우리는 항상 2층에 자리잡고 앉곤 했는데 오늘도 운좋게 2층 창가쪽에 자리가 있어서 잘됐네 하면서 그리로 가서 앉았다. 오랜만에 들른 곳이라 새삼스러운 기분으로 카페를 둘러보니 카페 안은 변한 것이 없는 대신에 바깥의 풍경들이 가을로 바뀌어가는 계절의 변화를 느끼게 해주었다. 나무들의 진초록 잎사귀들의 끝자락이 미세하게 노랗게 변해가고 있었고 다른 꽃들이 다 지고 난 뒤에 이제 내 세상이야, 라며 흐드러지게 핀 이름모를 노란색 꽃들이 살랑살랑 바람결에 흔들리고 있었다.
이 카페의 장점은 코너에 자리하고 있어서 2층의 3면이 밖을 내다볼 수 있는 통창으로 되어 있다는 점이다. 창문 밖 왼쪽으로는 경의선숲길이 아주 가까이 내려다 보였는데 한가로이 산책을 하고 있는 오고 가는 사람들이 이어지고 있었고 약간 옆으로 비켜선 오른쪽에는 커다란 전봇대를 의지하고 감나무가 한 그루 서 있었다. 감나무에는 수십 개의 감들이 매달려 있었고 그 모습은 ‘나는 내 할일을 어쨌든 충실히 하고 있어. 이런 도시 한가운데 찻길 옆에서도 감을 만들어서 내놓고 있잖아’ 하고 말하고 있는 듯했다. 아직 감이 제대로 커지지도 않았고 색깔도 노랗게 익지 않아서 왠지 어설픈 느낌을 주는 감들이 안쓰러웠다. 전원 속에 존재해야 할 것과 도시에 어울리는 것과의 간극이 그대로 드러나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그건 나만의 지나친 생각인지도 모른다. 감나무 잎이 어떻게 생겼는지, 가을이 되면 그것들이 어떻게 단풍으로 물들어가는지 잊어버릴 지경인 도시인들에게 기억을 되살려주는 이 작은 감나무의 존재만으로도 얼마나 황송스럽게 감사한 것인지 생각을 바꿔야만 할 것이다.
카페 안의 손님들은 우리를 제외하고는 전부 젊은 사람들이었다. 다들 혼자 와서 컴퓨터와 책을 펴놓고 공부를 하고 있어서 우리도 감히 떠들 생각을 못하고 남편은 책을 보고 나는 휴대폰으로 글을 쓰기로 했다. 지난 번에 왔을 때도 인상적인 느낌을 주었던, 내가 사랑하는 작가인 <데이비드 호크니>의 정원 그림 앞에 앉아 내 바로 머리 위의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째즈 음악을 들으며 있으려니 왠지 나도 젊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때로는 시간을 내어서 걸음을 멈추고 카페에 앉아 음악을 들으며 차를 마시는 것, 아니면 공원 안의 벤치에 앉아서 시원한 바람을 얼굴에 맞으며 생각에 잠겨보는 것, 그것들은 절대로 시간적, 경제적 낭비가 아니고 우리에게 얼마나 영적 양식이 되는지 새삼스럽게 헤아리게 됐다.
4시반쯤이 지나자 갑자기 카페 안이 소란스러워졌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공부하는 분위기였던 것이 그 사이에 들어온 두 팀의 여자 손님들에 의해 확 바뀌어버린 것이다. 그들은 각기 두 명씩의, 한팀은 30대, 또 한팀은 40대로 보이는 여자들이었는데 이른 퇴근을 마친 직장인들의 행색이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시끄럽게 떠들기 시작하는 모습이 카페에 들어오기 전부터 오늘은 떠들고 회포를 푸느라 어떤 눈치도 안 보겠다는 작정이라도 한 듯했다. 좀전의 조용했던 카페 분위기가 그들 두 팀으로 인해서 돌연 시장바닥 같은 분위기로 바뀌자 남편과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짐을 싸서 나갈 차비를 했다. 그때까지 조용히 머리를 책이나 컴퓨터 위에 박고 있었던 카공족들이 머리를 들고 휘둥그래진 눈으로 불안하게 이리저리 쳐다보는 모습들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저 사람들이 결국은 쫓겨나고 말 것이라는 예측을 하면서 카페의 손님들로서 누구의 권리가 우선인지를 가늠해 보려 했으나 해답은 나오지 않았다. 카페를 경영하는 입장에서는 차 한잔 시켜놓고 오래도록 앉아있는 카공족들의 존재가 귀찮을 수도 있지만 오전에 손님들이 없어서 텅텅 빌 때는 그나마 자리를 채워주는 카공족들이 필요할 수도 있을 것이고 수다족들은 카페란 모름지기 모여서 떠드는 곳이라는 인식이 확실해서 엄연히 카페 입장료를 치른 터라 시끄럽게 떠든들 그건 어디까지나 내 권리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입장 차이가 첨예하게 다를 때에는 한 발 물러서서 다른 쪽 입장을 배려해주는 약간의 양보가 필요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같이 카공족이 아닌 사람들에게도 조용한 분위기에서의 차 한잔이 시끌벅적한 소란스러움 속에서의 차 한잔보다 훨씬 기분좋고 소망스러운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