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김씨표류기"를 보았다. 오래전 친구에게서 강력 추천받았던 영화인데, 볼 기회를 놓쳐 기억 속에만 있다가 넷플릭스에서 새롭게 편성된 것을 보고 망설임 없이 클릭했다. 사회와 연인에게 버림받아 죽음을 결심한 김씨의 이야기는, 밤섬 무인도라는 일종의 중간계에서 펼쳐진다. 마치 죽음으로 가기 전, 삶을 다시 한 번 돌아보는 기회를 준 것 같은 공간이다.
핸드폰 배터리마저 방전되어 완전히 고립된 김씨는 처음엔 또다시 자살을 시도한다. 하지만 무인도에서는 죽음보다 먹고 싸는 생존 본능이 더 절실했고, 이 아이러니한 상황이 영화의 첫 번째 클라이맥스를 이룬다. 자살 대신 야생의 자유를 만끽하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삶을 살게 된 김씨에게도 권태는 어김없이 찾아온다. 안빈낙도의 삶에도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전환점은 떠내려 온 쓰레기 더미에서 발견한 짜파게티 스프다. 이 작은 조미료 하나가 그의 삶에 새로운 도전 과제를 던져준다. 이를 최대한 맛있게 먹기 위해 농사를 짓고, 도구를 만들며, 자신만의 요리법을 연구한다. 약간의 결핍과 이를 극복하려는 노력이 인간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의 필사적인 노력을 망원경으로 지켜보던 육지의 누군가가 짜장면을 보내주지만, 김씨는 깊은 고민 끝에 이를 정중히 거절한다. 결핍이 자신의 원동력이자 희망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스스로의 힘과 노력, 그리고 약간의 운을 더해 마침내 자신만의 짜장면을 완성하고 눈물로 맛보는 순간이 두 번째 클라이맥스다. 이 성공 체험은 그를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만든다. 더 이상 비관적으로 자살을 꿈꾸던 예전의 김씨가 아닌, 삶의 열정과 의지, 그리고 무엇이든 다시 시작할 자신감으로 가득 찬 사람이 된 것이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자연재해와 같은 시련이 찾아온다. 힘들게 일군 모든 것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마치 한강에 투신하려 했던 그때처럼.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이제 그에겐 스스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능력과 의지가 있기 때문이다.
구조대가 나타났을 때 김씨는 강하게 거부한다. 무인도에서의 성공 경험만을 가진 그에게 현실 세계는 여전히 두렵고 절망스러운 곳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의지와 상관없이 결국 육지로 돌아오게 된다.
영화는 김씨를 멀리서 지켜보며 응원해온 은둔형 외톨이 여성과의 만남으로 이어진다. 그녀 역시 김씨의 생존기를 보며 용기를 얻어 자신만의 방에서 벗어나 세상으로 나오게 된다. 열린 결말이지만, 각자의 공간에서 얻은 생존 경험이 새로운 시작이 될 것임을 암시한다.
이 영화는 내게 특별한 공감을 준다. 현실에서 도피해 살았던 나의 캐나다 생존기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냉혹한 현실이지만, 그곳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지금 한국에서 새로운 관점과 내공으로 살아가고 있는 나의 모습과 겹쳐진다. 삶의 의미와 희망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