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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점을찍고돌아온그녀 Feb 25. 2022

언니, 걷기부터 해요

몸과 마음을 채운다는 것

언니, 걷기부터 해요     

  누구나 삶의 방향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을 가진다. 대부분은 삶이 행복하거나 편안할 때 이기보다는 삶에 지쳤을 때가 많은 것 같다.

  내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방향이 옳은 방향인지,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 한참을 방황하고 고민할 때 우리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성숙해진다. 어렸을 때보다 더 많은 고민에 어른들은 아프다. 학생들은 입시 지옥에서 벗어난 어른들 그리고 마음껏 자유를 누리는 것처럼 보이는 어른들이 부럽겠지만 어른들에게 묻는다면 다시 학생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 할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학창 시절에 배웠던 삶의 정의와 현실 속 삶의 괴리, 그 속에서 묵인해야 할 많은 부당함 그리고 책임져야 할 가족의 경제적 상황에 대해 어른들도 지치고 힘이 든다. 그렇지만 힘든 과정을 이겨내기 위해 고민하고 치열한 삶을 지속해 내는 과정을 통해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어른이 되어가는 것이다. 하지만 균형을 잃은 채 삶을 열심히만 살다 보면 길을 잃는다.

  결혼과 출산을 통해 180도 달라진 삶을 살아내기 위해 하루하루 충실하게 살아간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잠깐 삶을 되돌아보니 아이와 남편의 삶 속에 그냥 흘러들어와 나는 가족의 삶 속에 흡수되어 버린 듯한 감정에 힘들었다. 나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었는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대한 생각을 할 수조차 없었다. 이미 그동안 나의 내면적 성장에 대해서 오랫동안 생각하지 않고 지내왔기 때문이었다. 어디서부터 무슨 생각을 시작해야 사랑하는 가족과 나의 삶이 균형을 이룰 수 있을까 하고 애쓰면서 이 책, 저 책을 마구 뒤져보다 마음에 드는 책을 발견했다.

  이 책은 저자가 존재 의미를 잃었다는 생각이 들었던 순간부터 자신이 자기를 위해 당장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고민해나가는 과정과 걷기를 통해 타인과 얽혀있는 개인이 아닌 완벽한 개인 자체로 자신감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그동안 나는 누구로 살아왔는가. 아이를 돌보는 게 내 생활의 전부는 아닌데, 이렇게 살아도 괜찮을 걸까. 그냥 주어진 것을 하다 보니 여기에 있구나, 언제쯤 나는 나로 살 수 있을까.’ 강좌를 찾아 여러 가지 수업을 들어보았으나 꾸준히 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지지도 않았고, 이미 바닥나 버린 에너지로 무언가를 다시 창조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없었던 저자는 취미조차 제대로 할 수 없다는 마음에 더욱더 상처받고 자신의 존재에 대한 비참한 기분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인 걷기부터 시작한다.

  단순한 걷기로 시작한 행동의 변화는 감정의 변화까지도 일으킨다. 평소에 하지 않던 일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아주 조그만 용기가 필요하다. 당장 일어나서 옷을 입고 신발끈을 묶는 일부터 시작해야 하는데 자꾸만 망설여지는 마음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 아침에 걷기 시작한 저자는 자연이 주는 에너지를 통해 마음속 피로를 풀어나갔고 피로가 사라진 그 자리에 하루를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긍정적인 에너지를 채워나갔다.

  무슨 일이든 마음먹고 시작하려고 하면 마음이 분주해진다. 어떤 옷을 어떻게 입고 나갈 것인지, 어떤 장소를 어떤 길로 갈 것인지. 매번 쓸데없는 고민을 한다. 그냥 나가 어디를 걸어도 다 아름다운 길인 것을. 저자는 집 주변부터 걸어보았다. 햇살이 좋다는 것을 느끼고 파란 하늘이 너무 예쁘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차를 타고 다니면서 보지 못했던 고분들, 잘못 들어선 골목길, 남향의 볕이 잘 드는 곳에 집들이 즐비해 있다는 것까지 필요 없지만 알게 된 소소한 것들을 재미를 느꼈다. 그러다 어렸을 때 낯선 골목 탐험을 좋아했던 아이였다는 것도 다시 깨달았고, 뭉클해지는 감정을 느끼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일상을 여행처럼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알게 되는 순간 마음 한쪽에 소중한 추억을 간직하게 된다.

  매 순간은 선택의 연속이다. 좋은 습관을 가지는 것도 매 순간의 선택에 의해 이루어지는 결과물이다. 아주 사소한 행동일지라도 꾸준히 하기 위해서는 선택을 할 수 있는 용기가 늘 필요하다. 매일 걷기 3일째 되는 날 작심삼일을 벗어나 보려고 마음을 단단히 붙잡고 있지만 계속 시계만 바라볼 뿐 행동하지 않던 저자는 그냥 그 자리에서 일어나 걷기 위해 집을 나섰다. ‘아, 드디어 3일을 넘겼구나. 참 다행이다.’라는 생각을 하며 집으로 돌아온 후 다시 작은 목표 앞으로 또 3일 걷기를 스스로 약속하였다. 타박타박 오롯이 자신의 발걸음 소리에만 집중해 걷다 보면 분주했던 마음도, 긴장하며 보냈던 하루도 발자국 한 번, 한 번에 다 지나가 버리는 순간이 되고 다시 내면에 집중하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다짐하게 된다.

  단순히 동네를 걷는 것에서부터 시작된 행동이 저자의 다양한 삶을 만들어냈다. 첫 시작은 스탬프 투어였다. 이제는 도장을 찍는다는 작은 목표를 향해 걷게 되었다. 스탬프 투어 후 다양한 걷기 대회에 참여하게 되고 ‘맨발 걷기’에도 도전하기에 이른다.

  열심히 걸은 덕분에 우연히 보게 된 ‘2023년 전국 체전 유치 기념 숲길 마라톤 대회’에도 참여해 볼 용기를 내게 된다. 아무런 정보도 없었지만, 마라톤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경험해보고 러너들의 세상에 참여해보고 싶다는 호기심에 접수를 한 후 한 달 정도 남은 기간 동안 매일 한 시간씩 집 근처 강변을 달리면서 연습을 했다. 그리고 혼자 마라톤에 참여한다. 달리는 그 과정은 힘들었고 고통스러웠지만 스스로 선택한 시간이기에 달리기에 집중하여 최선을 다해 10Km를 완주해 낸다. 결국 뛸 수 있었다는 것은 열심히 걸었기 때문이고 걷기를 시작하지 않았다면 이 모든 결과를 이룰 수 없었을 것이다.

  다음은 영남 알프스 9봉에 오르는 도전을 하였다. 첫 산행지는 영축산 정상에서 능선을 따라 신불산까지였다. 아무런 준비 없이 무모하게 시작한 첫 도전으로 최소 삼만 오천보를 걸었고 걸린 시간은 무려 9시간 30분이었다. 이 경험 덕분에 다음 산행에는 가방을 가볍게, 천천히 걷고, 하산할 시간을 염두에 두고 걸어야 한다는 소중한 지식을 얻게 되었다.

  오키나와 걷기 여행과 제주도 걷기 여행을 통해서는 내가 알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과 응원을 받았으며, 내 추억 속에 그들을 공유할 수 있게 되었다.

  “자살 시도가 미수에 그친 뒤 일단 파리를 떠나자고 생각했다. 석 달 동안 이천 삼백 킬로미터를 걸으면서 걷기의 즐거움에 빠져들었다. 매일 20킬로미터씩 걸으니 내 몸이 젊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3주 전만 해도 죽으려 했던 사람이 3주 후 걷기의 즐거움에 취해 버린 것이다. 인간이란 걷기 위해 태어난 동물이란 생각을 그때 했다. 신체의 균형이 잡히면 정신의 균형도 잡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걷기를 통해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 건강해진다. 불면증이 있었던 저자는 수면에 좋다는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해 보지만 쉽게 잠들 수 없었다. 하지만 걸으면서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햇볕을 쬐며 걸으니 기분도 좋아지고 마음이 차분해졌으며 호흡도 편해졌다. 특히 숲길을 걸은 날은 몸과 마음이 안정되어가는 것을 느꼈다. 이로 인해 잠을 자는 것이 편안해졌으며 잘 잤기 때문에 건강한 다음 날을 시작할 수 있었다. 결국 걷는 행위로 몸과 정신의 변화를 시도하고 새로운 기회를 찾는 일은 삶의 질을 변화시킬 수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잠깐의 행복이 아니라 매일 일상에서 건져 내는 기쁨이 필요하다. 일상의 기쁨은 걷는 것으로 많은 것을 얻게 해 준다. 건강해지고, 시간에 대한 아이디어도 생긴다. 그리고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해 준다. 나에게 주어진 환경은 변화시킬 수 없다. 그렇지만 그 환경을 대하는 나의 태도는 바꿀 수 있다. 생활 속에서 작은 행복의 경험을 많이 쌓기 위해서는 순간에 최선을 다해야 하고, 그때 얻어지는 작은 행복의 경험들이 행복한 사람으로 만든다. 저자는 걸으면서 자신에 대해 생각하고, 순간의 느낌을 기억해 행복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다. 행복하다고 자신 있게 말하게 된 것도 걷기 덕분이라고 이야기한다. 한정된 공간에서 머물지 않고 밖으로 나가 걸으면서 온 신체 감각을 깨우고 바람에게, 비에게, 햇볕에게 감사한 마음을 느끼는 긍정마인드를 가질 수 있다고 했다.

  하루는 흘러 보내는 것이 아니라 채워야 하는 것이다. 저자는 걷다 보니 하고 싶은 일이 점점 많아졌다고 한다. 오키나와를 걸었던 기억으로 일본어를 배우고 싶어 방송통신대에 편입을 하고, 졸업을 하면 스페인어를 배우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은 여행을 위해 영어 스터디 모임을 결성하고 공부를 하고 있고 그 일이 벌써 10년이 넘었다. 동남아 봉사활동, 네팔 히말라야 트레킹, 스페인 산티아고의 순례길을 걷는 것이 목표가 되었다. 이제 여행을 다니면서 여행자가 아닌 생활자가 되어 보고 싶어 매일 걷고 달리면서 삶을 건강하게 채워나가고 있다.  

  아무리 좋은 일이라 하더라도 습관이 되어 있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기 마련이다. 저자는 걷기를 생활화하는 습관을 들이기 위한 방법으로 첫 번째 두렷한 목표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작은 것 하나를 성취하면서 얻는 만족감을 원동력으로 계속 걷기를 생활화하면서 목표를 자신에게 맞게 수정해 나가야 한다. 두 번째는 기록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무슨 일이든 지속적으로 하려면 기록이 필요하다. 기록은 걷기를 습관화할 수 있는 동기부여가 된다. 어디를 얼마나 걸었는지 들여다보는 동안 삶의 질서를 만들고 계획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

  걷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저자는 걷기를 우선으로 하여 일상에서의 동선을 파악하고 철저하게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걸어야 한다고 한다. 단 걸음수에 집착하는 해 무리한 걷기가 아니라 일상에서 30분이라도 걸을 수 있다면 충분하다고 본다. 그렇게 걷다 보면 걸으면서 할 수 있는 일들이 많다. 아름다운 장소에서는 사진을 찍고, 조용한 곳에서는 음악을 듣고, 영어 공부를 할 때는 소리를 내서 말하며 걸을 수도 있다. 유튜브를 검색해 강연을 들을 수도 있고, 메모를 하며 걷기도 한다. 걷다 보면 재미있는 일들이 주변에 많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걷기가 좋아하는 일들과 연결이 될 때 몸과 마음이 변화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도 긍정적으로 변할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빨리 밖으로 나가 걷고 싶다는 충동이 생겼다. 저자의 글을 한 줄 한 줄 읽을 때 나 역시 그 공간에서 같이 걷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저자가 땀을 흘리고 기분 좋은 감정을 느낄 때 나 역시도 같이 땀을 흘리고 기분 좋은 감정이 들었다. 책을 덮고 겉옷을 입고 근처 공원을 걸었다. 밤공기가 매우 차가웠다. 종아리와 골반 주변이 뻐근해져 왔다. 시계를 보니 20분 정도 지나있었다. 잠깐 멈춰서 내가 걸어온 길을 사진으로 남겨보았다. 공원에는 연인들, 부부들 그리고 친구들 무리가 웃으면서 걸어 다니고 있었다. 저자가 말한 기분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걸으면서 나의 심장소리를 느낄 수 있었고, 주변인들의 웃음소리에 기분이 좋아졌고, 차가운 공기가 머리를 맑게 했다. 걷는 시간들이 쌓이면 그 시간만큼 나의 행복도 쌓여간다는 것을. 가까운 거리도 덥다고, 춥다고 등의 여러 가지 이유를 대며 차를 타고 다녔는데 이제 차에서 내려걸어보아야겠다. 우리 동네에는 어떤 가게들이 있는지, 꽃가게는 어디에 있는지 찾아보며 행복하게 걸어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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