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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트서퍼 Jul 13. 2022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리뷰-영우가 숨쉬는 바다

그녀의 바다에는 법이라는 고래가 살아요.

*본 리뷰에는 드라마의 1화에서 4화까지의 줄거리에 관한 자세한 내용이 표기되어 있습니다.*


바야흐로 법정드라마의 대홍수시대다.

이 채널, 저 채널을 틀어도 법정이 나온다.

변호사가 변론하는 장면만 봐도 PTSD가 올 것 같은 요즘, 가장 보고싶지 않은 드라마를 꼽으라면 바로 이 드라마였다.

그럼에도 들리는 소식에 하도 드라마가 재밌다는 평이 많아, 정말 어떤 것인지 맛만 보겠다는 마음으로 보기 시작했다.


근데 뭐야?

기러기, 토마토, 별똥별, 스위스, 우영우

역삼역?

엥?

먼저 드라마는 박은빈 배우가 연기하는 우영우의 천재성에 대한 소개로 시작된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의 증상 중 하나인 아스퍼거 증후군은, 발달장애의 일종으로, 사회적 상호작용과 비언어적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고 제한적·반복적인 관심사와 활동을 보이는 사람들을 통틀어 가리킨다. 보통 한 두가지의 제한적 관심사에 집중하여 비상한 기억력과 암기력을 특징으로 한다.


우영우는 서울대 로스쿨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변호사시험을 만점에 가깝게 받았으나, 자폐라는 장애를 가지고 있기에 좋은 로펌에 채용되지 못했고, 김밥집을 운영하는 아버지의 연줄(?)로 법무법인 한바다에 입사를 하여, 다양한 사건사고를 자기만의 창의적인 방식으로 해결하여 잘 먹고 잘 살았답니다가 드라마의 줄거리다.


그래서 이 리뷰를 쓰는 지금 4화까지 나온 이 드라마를 보고 내린 결론을 말하자면, 이 드라마는 이상한 드라마가 맞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판타지적인 요소가 아예 없고 현실고증을 완벽히 하여 나를 당황시키는 것도 아니면서, 그렇다고 너무 터무니가 없어 황당하다고 느껴지지도 않아서 이상하다.

드라마는 1화에서, 우영우를 어릴적부터 돌봐주곤 했던 임대인 할머니의 살인미수 사건에서부터 시작한다.

우영우는 살인미수 사건의 피고인으로 찾아온 할머니에게 느닷없이 그렇다면 지금 누가 번 돈으로 생활하고 있는지, 아파트는 누구의 소유인지에 대해서 묻는다.


그리고 다시, 우영우는 자신의 시니어 변호사인 정명석에게 찾아가 이 사건은 살인미수가 아닌 상해로 가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그 이유는 민법(상속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민법 제997조부터를 그냥 상속법이라고 부른다) 제1004조 제1호 때문이다.

'고의로 배우자를 살해하려 한 자는 상속권을 박탈당한다'는 규정이 존재하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사실상 남편의 임대사업으로 생활하고 있는 피고인 할머니의 살인미수죄를 그대로 유지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우영우는 할머니가 살인미수로서 집행유예를 받는 것이 인생의 끝이 아니기에, 집행유예로 집으로 돌아간 그 이후까지를 생각하여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이 부분은 내가 이 드라마의 나머지 부분을 모두 보게 만든 장면인데, 현실세계에 찌든 나에게도 하나의 경종을 울리는 에피소드가 되어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사람을 살해하려 한 자에게 붙여지는 죄명, 즉 살인미수에 대해 담당 검사가 보기좋게 대놓고 집행유예를 줄 것 같은 뉘앙스를 풍긴 경우 과연 나라면 어땠을까, 어떻게 행동했을까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살인의 경우 형법체계의 최상단에 위치하는 가장 질이 나쁜 범죄인데, 이런 범죄에 집행유예를 주려 한다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나라면 아마 검사가 가는 길목마다 꽃을 뿌리며 조심스럽고도 눈에 띄지 않게 피고인을 단속했을 것이다. '피고인, 다음 달에 집에 편히 누워서 쉬시고 싶으시면 지금부터 유령처럼 계시는 거에요, 네?'


하지만 우영우는 그렇지 않았다. 형법으로 기소된 사람의 상황을 민법이라는 다른 법과 함께 다면적인 시각에서 바라봄으로써, 그 사람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사람에게 제대로 된 변호란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결과를 내놓았던 것이다.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법은 그저 법일 뿐, 사람이 먼저여야 하는데 말이다.

그렇게 시작한 드라마는 2화에 이르러 '손해'라는 개념을 시청자들에게 소개하며, 자신들의 정체성이 법률에 있음을 상기시킨다. 드라마에서도 소개하듯 손해는 손해3분설에 따라 '적극적 손해, 소극적 손해 그리고 정신적 손해'로 나뉘는데, 적극적 손해는 말 그대로 적극적으로 내가 지출한 비용에 대한 손해를 가리키고, 소극적 손해는 내가 이 사건이 없었다면 잃지 않았을 손해를 가리키며, 정신적 손해는 우리가 위자료라고 부르는 손해를 말한다.

손해는 또 통상손해와 특별손해로 나뉘기도 하는데, 통상손해는 그 일의 발생으로 인하여 통상적으로 발생하는 손해를 가리키고 특별손해는 확대손해로서 그 상황에 특수하여 발생한 손해를 말한다.

물론 어느 때나 손해를 입었다고 무작위로 주장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채무불이행이나 불법행위처럼, 손해를 인정할 수 있는 요건을 갖추었다는 전제 하에서만 위 손해의 주장이 가능하다.


이런 개념 하에서, 우영우는 특별손해를 주장하며, 결혼이라는 조건이 원만하게 성취되었을 경우 얻었을 도곡동의 땅값을 손해로 주장한다. 정신적 위자료의 인정액수가 그리 크지 않은 대한민국(예를 들면, 불륜을 저질러 가정을 파괴하고 상간소송을 당해도, 위자료는 통상 2,000만 원에서 3,000만 원이 선고된다)에서, 가장 큰 손해배상액을 청구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고민한 결론을 내놓은 것이다.


기발한 생각이기는 하지만, 이 부분을 담은 2화는 큰 판타지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특별손해는 그 이름처럼 정말로 '특별한' 손해이기에, 손해를 입은 사람이 적극적으로 그 손해의 발생사실을 주장하고 또 입증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입증을 하지? 생각만 해도 솔직히 아찔하다.

드라마는 2화에서 드레스가 흘러내린 이유를 증언한 웨딩샵 직원과, 시할아버지의 조건부 땅 증여약속을 알고 있었다고 증언한 호텔사장의 등장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이 대목은 이 드라마가 고구마스러운 전개를 보이지 않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지를 보여준다.


현실에서 출석한 증인은 대게, '잘 모르겠습니다', '네? 그 부분은 제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요.', '그 부분은 제 전문분야가 아닙니다.'라고만 대답하여 재판장의 기분을 암담하게 만들기 일쑤인 데다가, 향후 그 업계에서 다시 근무할 생각이 없거나 이민을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면 아무런 댓가도 없이 그런 증언을 할 이유가 없으며 호텔사장도 시할아버지의 땅 증여약속을 알았다고 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아마 이렇게 증언할 것이다. '아니, 그 땅이 얼마짜린데 덜컥 결혼한다고 손주며느리한테 그 땅을 줍니까? 그렇게 말했을리도 없지만, 처분문서로 작성한 것도 아니고 그거 농담입니다, 농담.'


그리고 아마 그런 변호사의 준비서면을 받은 법원에서는 이렇게 이야기할지도 모른다. '300억? 뭔 300억이야? 얘네 왜 이래요? 뭐 잘못먹은거 아니에요? 지금 이거 위자료 소송 맞아요?' 300억짜리 소송은 인지대(소송 제기 시 개인이 부담하는 사법수수료를 의미한다)만 1억 원이 넘어가는 대소송이기 때문이다.

당초 10억을 받기 위해 한바다를 찾아갔던 신부의 아버지는, 이제 받을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300억을 위해 1억을 인지대로 지출해야만 한다. 변호사 수임비가 배로 뛰는 것은 당연지사다.


그럼에도 이 드라마가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러한 발상, 그러니까 그 부분에 대해서 드라마를 보는 나조차도 생각해보지 못한 특별하고 창의적인 발상으로 법을 가지고 할 수 있는 무한한 상상의 바다로, 영우가 사랑하는 고래의 바다로 우리를 이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영우가 특별한 발상으로 우리를 이끌 때 나오는 고래의 헤엄장면이나, 온 도시의 빌딩을 가로지르는 고래 CG 장면은 영우 뿐 아니라 나까지도 상쾌함과 자유로움을 느끼게 만드는데, 오히려 이런 착안과 발상이 판사가 매수되어 왜곡된 판결을 선고했습니다, 감옥에 가서 이를 바로잡기 위해 와신상담하여 당신에게 복수할 것입니다와 같은 드라마보다 훨씬 짜릿하게 다가온다.

드라마는 3화에 이르러, 이 드라마의 또 다른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를 내놓는데, 즉 자폐라는 장애를 가진 영우가 겪어야 할 사회의 비인격적인 대우를 지적하며, 우리 사회가 그들을 얼마나 몰지각한 방식으로 대우하고 있는지를 소개하고 있다.


영우는 자폐를 가진 사람이기 전에 형에 대한 살인사건의 피고인으로 기소된 자폐를 가진 동생의 변호를 맡은 변호사일 뿐임에도, 택시기사가 자신을 바라보는 방식, 의뢰인이 자신을 바라보는 방식(심지어 그 의뢰인은 같은 자폐인을 가족으로 둔 사람이다)을 보며, 타인을 지키고 변호하는 보호자의 입장임에도, 단지 장애를 가진 인간이라는 이유로 피보호자의 위치에 머물러야만 하는 상황을 토로한다.


이 부분을 보며, 나 역시 비장애인으로서 그러한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미안하고 슬픈 마음이 들기도 했고, 내가 겪어본 적 없는 차별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리고 공감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깊이 고민해보게 됐다.

만약 내 동기 중 자폐를 가진 변호사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솔직히 우리끼리 소문내고 쑥덕거리지 않았을까? 영우의 세상에는 로스쿨 전교 1등, 변호사시험 만점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많고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그나마 희망적인 것을 말하자면, 3화에서 영우를 슬프게 만들었던 장면으로 법정에서 검사가 보인 태도, 즉 이 법정에 자폐인이 몇 명이나 있습니까? 라는 질문은 자신있게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아마 공판검사가, 심지어 재판장에게 찍히면 안될 이유가 100가지는 있는 상황에서 저런 행동을 할 리도 없고, 저런 말을 할 정도로 생각이 부족한 사람일 확률도 극히 낮기 때문이다. 만약 정말로 저런 일이 발생한다면, 그러니까 자폐인이 서울대 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가 되어 재판에 변호인으로 출석하였는데, 형사공판에서 공판검사가 저런 발언을 한 경우 아마 재판장은 눈으로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검사, 정신 나갔어요?'

온 법조인들한테 소문이 나는 것은 덤이다.

대망의 4화는, 영우의 친구 동그라미의 아버지와 형제들의 상속분 분쟁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나가며, 민법을 공부했다면 단박에 떠올릴 조항, 즉 사기나 강박에 의한 의사표시는 취소할 수 있다는 민법 제110조를 전면에 등장시킨다.

민법 제110조는 민사법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조문인데, 돈과 관련하여 온갖 사기와 거짓말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사람들의 재산을 보호하는 소중한 장치로서 기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와 관련한 정명석 변호사의 대답 '우영우 변호사는 실무를 모르는 애송이, 입니다.'에서 우리는 위 조문의 무서움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데, 처분문서에 한 의사표시 '나는 형들에게 토지보상금을 증여하겠습니다.'를 뒤집기 위해서는 그 증명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때 등장하는 대사가 바로 '증거 있습니까?'다.

사소송의 핵심, 즉 '민사소송법상 원칙으로 소송자료(사실과 증거)의 수집, 제출책임은 당사자에게 있고, 당사자가 수집하여 변론에서 제출한 소송자료만으로 재판의 기초로 삼아야 한다'는 변론주의를 나타내는 이 대사는, 영우가 단지 상황을 포섭할 법조문만을 찾아낸다고 하여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알려준다.

사람들은 대단하신 판사님께서 모든 것을  알고 익히 해결해주시리라 믿기도 하지만, 민사소송은 어디까지나 개인 간의 소송이기 때문에 당사자가 얻고 싶은 부분을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또 입증해내야만 한다(당연하다. 그러니 제발 증거 팍팍 내고, 차용증  쓰고, 이상한 서류에 인감 절대 찍지 말고, 문제 생기면 반드시 변호사를 선임하자).


물론 영우는 기발한 발상으로 해결해내는데, 그 해결책이라 함은 바로 민법 제556조 제1항 제1호, 즉 증여자, 배우자, 직계혈족에 대한 범죄행위가 있는 때에 증여자는 수증자에 대한 증여를 해제할 수 있다는 조문을 이용하는 것이다.

이 부분을 해결하기에 앞서 영우의 머리가 흩날리며 고래가 등장할 때에는, 정말이지 어떤 비상한 방법으로 이 난관을 헤쳐나갈지 궁금해서 발가락이 오므려질 정도였다.

보면서 절로 말하게 되기도 했다. '아니, 저 아저씨는 왜 형들에게 보상금을 다시 공평하게 나눠줘? 아저씨 바보 아니야? 다 먹어야지. 유류분 고려해도 생전증여 계산하면 거의 다 먹지 않을까?' '그리고 556조 제2항은? 범죄행위 용서하면 해제권 소멸하는데..아저씨 이미 해제권 행사했겠지?'

우영우가 일하는 법무법인의 이름이 한바다인 것과 그 한바다가 역삼역에 위치한다는 사실은(사실 대부분의 대형 로펌은 종로와 삼성동 일대에 위치해 있다) 어쩌면 영우가 일하는 한바다야말로, 영우라는 큰 고래를 감싸는 드넓은 한바다를 의미하기 때문일 것이다.

영우가 겪는 불편들이 안타까우면서도 얄미울 만큼 뛰어난 영우의 실력은 인정하는 최수연 변호사도, 영우를 장애인으로 보기 보다는 자기보다 강한 사람이라고 대뜸 인식하는 권민우 변호사도 그리고 그만두겠다 말하고 사라진 영우를 대놓고 기다리는 정명석 변호사도 모두 영우가 속한 바다의 또 다른 생명체들이다.


그리고 영우라는 고래는 한바다라는 큰 바다 속을 자유롭게 헤엄치며, 이 법 저 법을 넘나들어 사람들에게 다양한 해결책을 제시해주고 드라마를 보는 우리로 하여금 그 바다에서 함께 물장구를 칠 수 있게 한다.


우영우 변호사는 전혀 이상하지 않다.

비상할 뿐.


오랜만에, 기다려지는 법정드라마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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