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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트서퍼 May 05. 2022

슬기로운 위급상황 대처기

119구급대원도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단 한명이기에

"국민은 119를 부를 수만 있다면 언제 어디서든 구조될 수 있다고 믿는다.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며, 소방관들은 재난 현장에서 구조를 기다리는 국민에게 국가 그 자체다”


지난 2019년 독도 헬기 추락사고로 순직한 소방관 합동영결식 당시의 문재인 대통령 추도사 중 일부다.


힘든 상황이 닥치면 우리는 119를 찾는다.

119라는 숫자가 우리에게 친숙한 것은 물론이요, 국민들 마음속에 119구조대는 위급한 상황 발생시 언제 어디서든 부를 수 있는 존재라는 인식이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다.

오죽하면 드라마 '꽃보다 남자'의 지후선배는 금잔디에게 명예소방관을 시켜달라 말했겠는가.

119는 우리에게 그런 존재다.


심지어 우리가 119구조대로부터 어떤 것을 기대할 수 있는지는 119구조구급에 관한 법률(일명 '119법')을 통해서도 확인받을 수 있다. 119법은 제4조 제1항에서 119구조대에 관한 국민의 권리를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위급상황에 처한 경우에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신속한 구조와 구급을 통하여 생활의 안전을 영위할 권리를 가진다."


즉, 119구조대로부터 구조, 구급을 받는 것은 국민의 권리라는 것이다.

참으로 다행이 아닐 수 없다.


물론 권리와 의무는 동전의 양면인만큼, 국민에게는 그에 따른 의무도 있다.

119법은 제4조 제2항에서 "119구조대원ㆍ119구급대원ㆍ119항공대원이 위급상황에서 구조ㆍ구급활동을 위하여 필요한 협조를 요청하는 경우에는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이에 협조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동조 제3항에서 "누구든지 위급상황에 처한 요구조자를 발견한 때에는 이를 지체 없이 소방기관 또는 관계 행정기관에 알려야 하며, 119구조대ㆍ119구급대ㆍ119항공대가 도착할 때까지 요구조자를 구출하거나 부상 등이 악화되지 아니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권리는 누구보다 살뜰히 누리고 싶어하는 우리들의 의무에 대한 태도는 어떠한가? 의무는 잘 지키고 있을까?

구급대원님 감사합니다. 고생이 많으십니다. 가시는 길 꽃만 뿌려드립니다, 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리가 그들을 최소한으로라도 대우하고는 있을까?


최근 한 언론에서는 구급차의 진행을 방해한 죄로 검찰이 한 40대 남성을 특수폭행 및 업무방해 혐의등으로 기소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 남성은 운행하던 택시가 사설 구급차와 접촉사고가 나자 사고를 해결하고 가라는 이유에서 구급차의 진행을 막아섰다는 이유로 기소되었고, 수사기관에서는 위 기사가 구급차와 접촉사고를 일으킨 것에 고의성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이게 아주 특수한 케이스라고? 이런 경우는 드물다고?

그럴까?

인구밀도가 높은 대한민국에는 매일매일 곳곳에서 다양한 사건사고가 발생한다.

그리고 그들은 힘들때 여느때처럼 119를 찾는데, 그들의 요구사항에는 많은 경우 '통화만으로 GPS를 이용한 신속, 정확한 위치파악'이라는 부분이 포함되어 있다.

물론 우리의 GPS 시스템이 탐크루즈가 나오는 영화처럼 어디인지 완벽하게 그 주소를 알아낼 수만 있다면야 더할나위 없겠지만, 사람이 붐비는 번화가나 시장처럼 위치를 알아도 요구조자가 누구인지를 식별할 수 없는 장소라면 전화 한 통에 그들을 단박에 구하러 가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생각해보라.

명동 한복판에서 이서방을 당장 찾아내라고 하면 이서방을 어떻게 찾아요?

명동이란 것이야 당연히 GPS로 알아낼 수 있지, 근데 그게 명동 이니스프리 앞인지 스파오 앞인지를 어떻게 단박에 찾냐 이말이에요. 심지어 스파오만 가도 사람 몇 명이나 있어요?


그럼에도 요구조자들이나 그들의 주변인들은 119구조대가 단박에 완벽한 장소로 그들을 구하러 오지 않는다고 화를 내는 경우가 아주 많은데(물론 가까운 사람의 건강이 분, 초를 다툰다면 답답한 것이야 오죽하겠냐만은) 어떤 이들은 힘겹게 찾아온 구급대원들의 자동차를 발로 차거나 물건을 던지기도 하고, 심지어는 항의하는 과정에서 그들에게 폭력을 행하는 지경까지 이른다.

그러한 폭력의 강도는 구급대원들의 병원치료로 이어지는 수준에 달하고, 누군가는 구급대원들 앞에서 소방서장이나 시장, 심지어는 대통령 욕을 하며 그들의 탓이라고 소리를 지르기도 한다.


물론 그 때문에 요구조자의 구조는 더욱 늦어지고 있는 중이다.


특히 코로나 시대 구급대원들은 어쩔 수 없이 방호복을 입고 출동하게 되는데, 그들이 그 답답한 방호복 위에도 스스로를 보호하고자 개인별 CCTV를 부착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얼마나 별의 별 일이 다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아니 법은 뭐해요? 그런 놈들 안 잡아넣고?

물론 법도 그러한 구급대원들을 보호하고 있기는 하다.

119법 제13조 제2항이 누구든지 위급상황에서의 구급대원들의 적법한 구조구급활동을 방해하여서는 아니 되고, 이를 위반한 자에게 제28조에 근거하여 5년 이하의 징역, 5천만 원 이하의 벌금형을 부과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위 법 위반으로 기소되는 사람이 많지 않을 뿐만 아니라, 기소되어 적절한 형사처벌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반드시 공동체 전체의 이익 증가로 이어진다고 볼 수도 없다.


폭력행위를 마주한 구급대원들 마음의 상처는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회사에 출근하기 싫은 마음이야 누구에게나 있겠지만, 어제 직장에 출근한 후 이유 없이 두드려 맞았다고 생각해보면 어떤가.

누가 어디서 어떤 상황에서 어떤 이유로 나에게 폭력을 행사할지 모른다고 생각한다면, 애사심이 절로 사라질 것 같지 않은가? 심지어 내가 국민에게 봉사하는 마음으로 일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들에게 진정한 봉사정신을 기대하기란 더욱 어려울 것이다. 나를 대우하지 않는데 왜 나는 그들을 대우하여야 하는가란 생각을 지울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구급대원들도 사람이다. 퇴근하면 집에 가고 싶은 직장인일 뿐이겠지.


이뿐만이 아니다.

위와 같이 119법을 위반하였다는 이유로 피고인들을 기소하려면, 당연히 그에 따른 증거제출이 요구되고, 그 증거에는 구급대원들이 당시 착용하였던 CCTV 영상뿐 아니라 당시 상황에 대한 자세한 진술조서, 더 나아가 법정에서의 증언을 포함한다.

즉, 폭력을 당한 구급대원들이 CCTV 영상을 찾고, 돌려가면서 그 부분만 추출하고, 경찰에 몇 번이나 출석해서 당시 상황 설명하고, 심지어는 법원에도 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소요되는 시간은 다른 일에 시간을 쏟아야 할 구급대원들의 적정한 업무행위를 방해하고, 이는 결국 그들로부터 구급서비스를 받아야만 하는 국민 전체의 불이익으로 귀결된다.


여러 모로 안좋다는 것이다.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삶의 위급한 순간에서, 우리가 탓하고 화내야 할 대상은 그 상황과 순간일 뿐이다.

'어쩌다 이런 일이 생겼을까? 정말 이 상황이 답답하고 화가 난다'는 상황과 순간만을 말이다.

위급한 문제를 신속하게 해결하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적절한 구조활동이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반드시 기억할 것, 지금 나의 가족을 병원으로 데리고 가는 저들도,

밤이 찾아오면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같은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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