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한 스푼_#1] 프리드리히 키틀러의 『축음기, 영화, 타자기』
계절은 다시 돌아오지만
떠나간 내 사랑은 어디에
내가 떠나 보낸 것도 아닌데
내가 떠나 온 것도 아닌데
2013년 12월 28일, 히든싱어는 故 김광석 가수를 무대로 초대했다. 히든싱어는 가수와 5명의 모창자가 블라인드 뒤에서 한 소절씩 노래를 부르면, 이후 청중단 100명이 ‘진짜 가수’를 찾는 형식의 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의 취지가 가수와 모창자의 대결인 만큼 제작진이 故 김광석의 목소리를 가장 깨끗하고 정확하게 재연해내는 데 관심이 쏠렸다.
프리드리히 키틀러의 『축음기, 영화, 타자기』에 수록된 살로모 프리들랜더의 작품,『괴테가 축음기에 대고 말한다』는 “이미 죽은 사람의 목소리를 재연할 수 있을까?”라는 독특한 발상을 “시체의 성대와 유사한 모조장치를 만들어서 파동을 재연해낸다.”라는 어처구니없는 방식으로 풀어낸다. 장치를 만들어낸 프쇼르 교수가 괴테의 집에 모조장치를 설치하고 난 후, 모조장치가 괴테의 흔적을 빨아들이고 증폭시키자 평소 괴테의 목소리를 흠모하던 폼케는 “맙소사! 맙소사! 교수님, 당신 덕분에 제 생애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맞이하고 있어요.”라고 환희에 찬 비명을 지른다.
감격과 경악에 사로잡힌 안나 폼케가 흥분으로 몸을 떨며 말했다.
“맙소사! 맙소사! 교수님, 당신 덕분에 제 생애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맞이하고 있어요.”라고 환희에 찬 비명을 지른다.
이와 마찬가지로 히든싱어의 무대에는 수많은 폼케가 있었던 것이 아닐까? 히든 싱어 故 김광석 편의 무대에서 가수 김광석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재연되었을 때 청중석에 있던 김광석의 지인들과 김광석의 팬들, 그리고 청중들은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23년 전 목소리가 복원장치를 거쳐 청중들에게 전달되는 순간, 반가움과 안타까움이 교차한다. 그의 목소리가 기계장치를 거칠 때마다 안타깝게도 그의 부재가 더욱 강조된다.
“흰색은 다른 색깔로부터도, 한 때의 흰색으로부터도 얻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네! 흰색을 수단으로 검정색과 기계적으로 결합해서 회색을, 화학적으로 혼합해서 다양한 회색을 얻어낼 수 있을 뿐이지. 색깔을 중화한다고 해서 흰색을 얻을 수 있는 게 아니야! 그건 흰색과 검정이라는 근원적인 대비를 만들어낼 뿐이지.”
참가자들이 김광석의 목소리를 모창할수록 오히려 가수와 모창자들의 격차는 벌어진다. 색깔을 중화한다고 해서 흰색을 얻을 수 있는게 아니고 다양한 회색을 얻어낼 수 있을 뿐이고, 흰색과 검정이라는 근원적인 대비는 좁혀질 수 없듯이 말이다.
흰색은 다른 색깔로부터도, 한 때의 흰색으로부터도 얻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한다. 복원을 거친 목소리는 흰색이 아니고 화학적으로 혼합된, 한 때의 흰색과 비슷한 회색이 아니었을까. 흰색과 검정이라는 근원적인 대비를 극복하지 못하듯이, 그의 복원된 목소리는 삶과 죽음이라는 근원적인 대비를 좁히지 못한다. 오히려 더욱 극명하게 대비되어 그의 부재를 더욱 강조한다. 히든 싱어의 관객들의 울먹임은 이런 맥락에서 벅차오른 감정이 아니었을까.
프쇼르 교수는 괴테의 목소리를 복원해 낸 축음기를 열차 밖으로 던져버린다. 괴테의 축음기를 열차에 던진 이유가 비단 질투심 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삶과 죽음이라는 경계에서 경쟁해야되는 본인의 상황이 우습기도 하지만 특히 좁힐 수 없는 경계 너머의 사람에게 반한 폼케를 보는 안타까움이 컸을 것이다. 흰색은 다른 색깔로부터도, 한 때의 흰색으로부터도 얻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닐 터인데, 폼케를 보는 프쇼르 교수를 상상하면서 히든싱어가 떠오른 것은 단순한 우연일까. 더 이상 김광석이 돌아오는 것도 아닐 터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