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뮤즈 Apr 23. 2023

45분간 급식지도 수업

45분간 700명과 눈 마주치기

급식지도는 12시 30분에 시작된다.
2주에 한 번씩 돌아오는 급식지도를 나는 급식지도 수업으로 여긴다.

급식을 먹는 학년별 반별 순서가 있어 학생들이 순서대로 들어갈 수 있도록 입구에서 지도하는 것이다. 급식실 안의 상황을 보고 대기후 차려대로 들여보내는 것이 내가 할 지도다.
30분 점심시간 종이 치자마자 아이들이 뛰어오는터라 25분부터 급식실 앞에서 대기한다.
그래서 급식지도수업날 나의 점심은 밥이 어디로 들어가는지 허둥지둥이다.

​키나 덩치가 나보다 큰 3학년들이 먼저 뛰어온다.
3월에는 앞반순이었으나 이번 달은 뒷반부터 먹는다. 3학년 수업을 들어가지 않아 앞반 뒷반 학생들이 구분되지 않으나 배가 엄청 고픈 와중에도 급식실 앞에서 대부분의 아이들은 순서를 지키고, 양심적이지 않은 아이들을 나에게 얘기해 준다.


3월 시업식 첫날, 이 직장에서 처음 근무해 위치도 어색했던 날 급식지도를 했었다.

배정이 의아했지만 당일 4교시 수업이 없는 선생님들이 급식지도에 배정이 되는데 나는 일주일 중 그날만 없는 날이었다.

학교도 급식실도 학생들도 처음이었던 날, 나는 약 700명의 아이들과 첫 급식지도 수업을 잘 마쳤다. 45분을 서서 먼저 들어가려는 아이들을 제압해 급식실 안의 상황을 보며 대기시키고 들여보내고를 반복하고 나면 진이 빠진다. 오후에 2시간 수업연강이 있어 급식지도 수업에 에너지 완급 조절이 필요하다.

​두 번째, 세 번째 급식지도를 마칠 때마다 급식실 밖으로 보이는 나무의 모습과 색이 달라졌고 꽃이 피고 떨어졌다. 나의 겉옷의 두께는 코트에서 트렌치코트, 재킷, 카디건으로 얇아졌지만 눈에 익숙해져 이름을 부를 수 있는 학생들의 수는 점점 늘어났다.


3월 초반에 3학년 교실 앞을 지나다 한 여학생이 나의 앞에 서서
"선생님은 처음 보는데 언제 왔어요?
이름이 뭐예요? 몇 층 어디에 있어요?"
이것저것 계속 묻길래 대답을 하니 담임선생님이 데려갔다. 나중 알게 된 J는 도움반 학생이었고
학교에 있는 모든 이에게 관심이 많다했다.
3학년이 급식을 먹는 시간에 J도 왔다. J 옆에는 도움반학생들을 도와주는 공익근무요원이 서있다. J는 대기 없이 바로 들여보내준다. 친구들과 다른 테이블에서 근무요원이 보는데서 밥을 먹고 도움반으로 다시 간다.
"J야, 오늘 점심 맛있게 먹었어? "
나는 웃으며 물었는데 오늘 J의 표정이 유독 어둡다. 이 친구가 대기 없이 바로 밥을 먹는다고 학생들 중 아무도 항의하지 않는다. ​처음 보았을 그 날처럼 J가 학교에 있는 동안 부디 밝고 즐겁기를..



이제 2학년 순서다.
2학년에는 익숙한 친구들이 많다.
머리카락을 기부하려고 기르는 긴 머리의 남학생 T도 보이고, 우영우를 떠오르게 하는 D도 보인다.
수업시간 내가 어떤 단어를 얘기하면 우영우가 향유고래를 떠올리며 웃음 짓는 바로 그 표정으로 음을 흥얼거린다. 나한테도 들릴 정도니 같은 교실 안에 있는 친구들도 다 들었다. D가 자신들과 조금 다름을 인지한 배려심 있는 친구들은 조용히 넘어가지만 그냥 넘어가지 않고 어떻게든 놀리고 싶어 하는 학생들이 있다. 그들과 D와의 신경전을 최대한 피하고 다른 학생들의 학습권을 보장하는 것이 나의 일이기에 그 반에 수업 들어갈 때는 긴장된다. D의 표정을 살피고 D의 얼굴이 울그락푸르락 할 때는  "모두 워워.."를 다섯 번 정도하고 수업을 시작한다.
"D야 점심 맛있게 먹어" 하고 들여보내니
다음번에는 이국적인 친구가 보인다.

N은 2년 전 한국으로 온 부모님이 모두 인도인인 친구다. 부모님 중 한국인이 없고 영어를 사용하던 곳에서 와서 한국공립학교에서 한국어로 수업을 받고 있다. 당연히 한국어로 듣고 말하기, 읽기, 쓰기가 잘 되지 않는다.
기초학업이 힘든 학생들은 맞춤형 보충수업을 신청할 수 있는데 N은 수학, 과학 맞춤형 수업을 신청했고, 나는 N의 수업을 맡게 되었다. 나는 중국에서 살다 왔는데 인도에서 온 친구의 과학수업을 해줄 수 없겠나 한다. 내가 영어가 정말 능숙해서 과학수업을 영어로 할 수도 없지만 N을 위해서도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한다. N도 다른 한국 친구들과 동일한 한글로 된 문제를 읽고 풀어야 하기 때문에 한글에 적응하려면 우리말로 수업을 해야 된다고 한다. 그런데 N에게는 한자로 된 과학 용어들이 너무나 어렵다. 내가 N에게 가장 많이 들은 말은 "몰라요"이다. 그래서 영어로 된 용어들을 많이 사용하는 편이다. 계산과정을 설명할 때도 영어로 해야 한다. N을 위한 교재연구가 추가되었다. N은 한국음식이 맛있다 하고 한국의 사계절이 아름답다 한다.

가끔씩 카카오톡에 N이 모르는 것이 있을 때  "Teacher,  " 하면서 질문을 한다.
질문을 할 대상이 있어 다행이다.
 "N, 점심 맛있게 먹어."​


이제 가장 많이 기다린 1학년이다.
배도 가장 많이 고프고 지쳤을 텐데 표정들이 밝아  다행이다. 신입생이라는 딱지가 아직 남아있다.
남학생 여학생을 구분해 들어가는데 남학생 줄에
여학생이 있어 다시 쳐다보니 머리가 긴 남학생이다. 왜 머리를 기르는지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T처럼 머리카락 기부가 목적이 아닐 수도 있기 때문에 조심스럽다.
1학년 마지막반을 급식실로 들여보내고 나니 1시 15분, 오늘도 45분간 약 700명을 대상으로 한 급식지도 수업이 무사히 끝났다.

15분 뒤 수업시작이라 커피도 한잔해야 하고 마음이 급한데 급식실 입구의 꽃잔디가 나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사진을 찍었고 이 사진은 7교시 D가 있는 반의 수업자료가 되었다.
화사한 꽃잔디에 아이들 모두가 화사하게 '워워..' 할 수 있었다.

나의 일과 중 가장 힘든 수업이지만 45분간 이렇게 700명의 아이들의 눈을 마주치는 수업이 있을까? 다음번 급식지도 수업을 기다려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에게 붓을 든다는 것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