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뮤즈 Jul 23. 2023

방학이라는 걸 했다

방학이라는 걸 했다.
放学 '학문을 놓다',  여름 한더위에 학업을 지속하기 힘드니 학문을 잠시 놓고 쉬라는 여름방학을 했다.
나는 학생은 아니지만 학생들과 일과를 같이 하는 사람이라 같이 쉰다. 학문뿐만 아니라 업무, 일, 관계 모든 것을 놓고 싶은 날들이었다.

6월부터 기말고사 준비, 연구수업 준비, 생활기록부 정리, 안전컨설팅 준비, 지능형 과학실 구축 준비로 해야 할 일이 끊임없이 밀려오고 일과 중에는 수업하느라 겨를이 없어 매일 자체 초과근무였다. 그것만으로도 벅찼는데 이유 없이 교사들을 괴롭히는 민원인의 문서정보공개에 시달렸다. 본인과는 전혀 관련 없는 비공개 공문서를 공무원들이 작성한 공문은 대국민공개이므로 공개하라 했다. 교사 이름과 서명, 학생과 교사의 사진과 같은 개인정보가 첨부되어 있었는데 각종 법적조항을 들이밀며 공개하라고 했다. 나의 창구에 민원인의 이름, 생년월일, 주소가 보였다. 나의 직장과 민원인은 아무 관련이 없었고 더군다나 민원인은 고등학생이었다. 입시를 앞둔 대한민국의 고3 학생이 도대체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이해되지 않았고 10일 안에 민원처리를 하면 다시 이의 재신청을 하고, 상화이 계속 반복되니 나중에는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교사들을 화나게 해서 직장으로 전화한 민원인에게 감정적으로 대응한 교사를 또 민원을 넣는 악순환을 반복하는 고3학생 때문에 힘들었다. 업무방해로 고소하고 싶었다.
지난주까지 법조항을 찾아가며 민원대처 공문을 작성했고, 생활기록부 입력을 했고, 올해부터 유해물질 취급장소가 되어 안전점검이 강화된 과학실 안전컨설팅을 받았다. 그리고 지능형 과학실 구축 공사준비를 했다. 학생들이 방학 때 공사가 이루어지기 위해 기존물품 반납처리를 위한 서류들을 준비했고, 필요한 공사와 물품들을 확정해 방학 실하는 날 결제를 맡았다. 국가 예산은 10만 원 쓰는 것도 쉽지 않은데 2천만 원이 넘는 품의를 준비하느라 지난주는 행정실 직원이 된듯했다.
몸도 마음도 번아웃된 상태에서 지난주 사회면 기사에 나온 소식을 접했다. 교권 추락, 업무과중과 함께 지금 교사들에게 가장 힘든 일이다.


기말고사 기간 수학시험 중에 D가 폭발했다.

멘털이 정상적이지 않은 눈에 독기가 가득했던 D를 달래 교실밖으로 데리고 나가려 하다 D에게 밀쳐져 넘어졌다. 넘어진 뒤로 허리가 아파 한의원을 다니고 아직도 아프지만 D가 일부러 나를 밀친 건 아니라 넘어갔다. 반대 상황이었다면 나는 아동폭력으로 신고당했을지도 모른다.

방학을 했다, 겨우..
다른 직장인들이 부러워하는 방학이라는 걸 했다.
무엇을 할 건지 물어본다면 아무것도 안 하고ㅈ싶다고 얘기하련다. 부실한 신체를 갖고 있어 첫 주는 전국구 병원투어를 하고, 그다음은 대신해 줄 이가 없어 해야만하는 방과 후 수업이 있다. 그러고 나서 시간이 주어진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멍 때림의 시간을 가져보련다. 밀도 높은 2학기 걱정은 보류한 채 생각을 안 해보련다.
나에게는 6년간의 공백이 있어도 복직을 허가해 준 고마운 직장이 요즘 너무 힘들다. 힘들게 공부해 임용고시를 치른 젊은 교사들이 힘든 교육현장에 면직을 하고 나간다. 힘들게 일한 보람이 있는 곳이 되길 간절히 바라본다.

작가의 이전글 반성하게 되는 유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