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교사들의 내신 학교 이동은 4년에서 5년마다 이루어진다. 간혹 사정이 있어 만기를 채우지않고 2년 또는 3년 근무 후 다른 학교로 이동하기도 한다.
나의 경우는 중국으로 가게되어 휴직하기전 근무 경력도 있지만 귀국 후 조금 적응된듯한 7개월만에 다른 학교로 이동하게 되었다.
이동을 한 이유는 근무하던 학교가 그린스마트학교 공사를 하게 되어 1년간 모둘러 건물에서 지내야했다. 모둘러 교실은 3층 건물로화장실, 책걸상, 전자칠판, 에어컨 등 수업하고 생활하기에 필요한 시설은 모두 있으나 한가지 설치하기 힘든 시설이 있었다.
내가 생활하는데 도움이 되는 엘리베이터이다.
나는 계단을 오르내릴 때 시간이 많이 걸린다.
특히 내려갈 때가 더 힘들어 계단 하나하나를 손잡이를 꼭 잡아서 이동해야한다. 시간이 많이 걸리고 힘들어계단을 내려갈 때는 가급적 엘리터를 이용한다. 그런데 엘리베이터가 없는 3층 모둘러 건물에서 지내야 한다니 솔직히 앞이 캄캄했다. 관리자분께서는 모둘러 건물 생활을 할 때 나는 1층 교무실에 지내고, 수업도 1층에서 하여 계단을 오르내리지 않도록 해주겠다고 하셨지만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모두 같이 지내는 곳에서 나만 배려받는 것이 편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나는 내신을 써 학교를 이동했다.
엘리베이터가 있는 곳을 찾아 학교를 옮기는 교사가 또 있을까?
모둘러 교실
그렇게 나는 우울한 전쟁터를 옮겨야했다.
옮긴 곳은 다행히 집과 가까워출근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훨씬 줄어들었다.
새로운 직장에 발령장을 들고 방문한 첫날 교사용 화장실에 들렀다.
내가 들어간 화장실칸 문에 붙어있는 글귀를 보고 나는 이 학교에 올 운명이었나? 싶었다.
하반신 마비가 되기 전
내가 할 수 있었던 일은 1만 가지였다.
그러나
이제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9천 가지다.
나는 잃어버린 1천 가지를
후회하며 살 수 있고,
아니면
아직도 가능한
9천 가지를 하면서 살 수도 있다.
/잭 캔필드
나는 희귀난치병을 진단받고 일반인과 다른 증서인 장애인증을 받은 후 내가 할 수 있던 1만 가지를 모두 잃었다고 여기고 우울해했다.
근육이 수축되고 뻣뻣해져 나의 의지대로 움직여주지 않아 뛰고, 빨리 걷고, 계단을 수월하게 오르내릴 줄 아는 사람들이 내가 가장 부러워하는 이들이 되었다.
여전히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한 자신감이나 자존감은 어디로 간건지 꽁꽁 숨어버렸다.
엘리베이터를 찾아 옮긴 직장에 찾아온 첫 날, 화장실에서 내가 할 수 있는 9천 가지를 찾았다.
어쩌면 내가 잃어버린 것 보다 할 수 있는 일이 훨씬 많을수도 있다는 희망이 보였다.
그렇게 새로운 곳에서 희망찬 전쟁은 시작되었다.
오늘도 나는 화장실에 가서 이 글귀를 보았다. 화장실에 여러 칸이 있지만 나는 굳이 이 문구가 적힌 칸에 들어간다. 들어가서 이 문구를 읽으며 이 곳에 처음 왔던 그 날의 초심을 떠올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