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잡담 Dec 23. 2023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겼다

16호_건축과 시간_프로잡담


"플라스틱은 재난이다."


 2021 UAUS의 주제 “재난에 살다.”에 대해 고려대학교 UAUS팀이 선정한 재난 상황은 플라스틱과 환경 재난이었다. 사람들의 무분별한 플라스틱 사용으로 인해 생기는 환경 문제들은 현재 진행형이며, 사람들이 그것이 재난임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 역시 재난이라고 생각했다.


 플라스틱의 사용과 대중의 인식 부재가 문제의 핵심이라면, 이를 해결하는 것은 사람들이 그것이 재난임을 인식하게 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프로젝트의 방향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플라스틱을 쓰지 말아야겠다.”라는 생각을 심어줄 수 있는 직관적이면서도 충격적인 플라스틱 파빌리온을 만드는 방향으로 하게 되었다.


"플라스틱으로 어떤 메시지를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


 재난 상황을 선택한 이후에 설계를 진행하는데, “디자인을 논리적인 흐름 속에서 설명할 수 있는가?”부터 시작해 “아이디어를 현실로 만들었을 때도 여전히 의도한 것이 유효하게 작동할 수 있을 것인가?”까지 다양한 의견을 주고받다 보니 중간 크리틱까지도 디자인에 대한 구체적인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이 때문에 설계는 디자인을 결정하고 그에 맞는 구조, 재료를 선택하는 일반적인 방식을 버리고, “어떤 재료를 사용할 것인가?” “재료를 사용해서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 “구조는 어떻게 할 것인가?” “디자인은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순차적인 단계로 진행되었다.


 재난 상황이 플라스틱의 무분별한 사용이라는 점을 고려해 고려대학교 UAUS팀이 선정한 재료는 “고려대학교 이공계 캠퍼스 인근에서 수거한 플라스틱 컵”이었다. 교내 쓰레기통, 인근 카페 등에서 컵을 수거하여 주재료인 플라스틱 컵을 모았다.


플라스틱 컵 수거


 재료 선정 이후 프로젝트는 구축의 문제를 마주하게 되었다. “플라스틱을 사용해서 어떻게 공간으로 만들 것인가?”, “어떻게 메시지를 전달할 것인가?” 그리고 “애초에 구조물이 서는가?” 


 구축의 문제에 대해서 우리는 두 가지 기준을 세웠다. 첫 번째는 “플라스틱의 양을 직관적으로 보여줄 것”이었고, 두 번째는 “충격을 통해 메시지를 줄 것”이었다. 구축에 관한 긴 논의 끝에 원통형의 높은 구조물이 주는 위압감을 통해 플라스틱의 양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고, 컵의 원형이 삭제된 플라스틱 스트링을 통해 원경에선 구조물의 존재와 형태만 인지되다가 근경에서 무수한 플라스틱 집합체였다는 것을 알려주는 인식의 반전이 주는 충격을 사용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사진3- 제작 틀 ,    사진 4- 제작과정


Main material: 플라스틱 실 가공과정


위의 논의를 모두 반영한 파빌리온(Fullastic)은 9개의 플라스틱 스트링을 가공하여 제작한 원 45개가 서로를 지탱하는 모듈이 반복된 파빌리온이 되었는데, 사용자가 형태와 디자인과 색에 집중하는 대신 재료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가장 단순한 형태의 투명한 원통형으로 완성되었다.


사진5- 디자인 디벨롭 다이어그램 ,       사진6- 모듈


 결과물의 높이를 정하지 않은 채, 수거한 만큼 작업한다는 특징 때문에 파빌리온의 높이는 곧 제작 기간 동안 학생들이 소비한 플라스틱의 양을 의미하게 되었다. 총 17,000개의 플라스틱 컵으로 이루어진 5m가량의 거대한 타워가 광장 한가운데 우뚝 솟은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플라스틱이 재난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인식했다.


사진 7- 구조 다이어그램 ,   사진8- 최종 결과물 사진

           

"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겼다. "


 안전상의 이유로 9월 8일부터 9월 17일까지의 약 10일간의 노들섬 전시를 마치고 Fullastic은 철거되었다.

 설명을 위해 작품 옆에서 가만히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그중에는 사진 몇 장만 찍고 떠나는 사람들도 있었고, 관심을 가지며 글도 읽어보고 물어보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어느 쪽이든 공통적인 반응은 “와. 정말 많다.”였다. 너무 쉽게 사용하지만, 그래서 인식하지 못했던 플라스틱들을 한자리에 모아두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의 그 감탄사 속에는 조금의 불편함이 담기지 않았을까?


 공간의 창조를 통해 사회에 비판적인 메시지를 던지는 것. 그것이 건축의 역할이라면, 사람들의 정신 속에 직관적인 불편함을 일깨워준 Fullastic은 10일이라는 짧은 기간은 유효하게 작동하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한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겼다. 과연 인류가 떠난 자리에는 무엇이 남을까?



도판목록

사진1,2,3,4,5,6,7,8 출처 - 프로잡담러Q


   

  


게재 : Vol.16 건축과 시간, 2021년 가을

작성 : 프로잡담러 Q | SHU

매거진의 이전글 시간을 따라 걷는 건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