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슬 Dec 14. 2023

고양이

 학교 앞에 300 원하는 병아리를 파는 병아리 장수가 있었다. 삐약삐약 우는 녀석은 마치 내게 자길 데려가라고 목청이 터져라 외치는 듯했다. 홀린 듯 300원을 주고 그 녀석을 사 왔다. 품 안에서 울던 따뜻하고 작고 부드럽던 외침은 다음날 들을 수 없었다. 엄마에게 들킬 까봐 베란다에 뒀다가 새벽의 온도를 견디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것이다. 내가 키운 첫 애완동물이었다.


 그다음엔 토끼를 키웠다. 부드러운 털에 쫑긋한 두 귀, 앙증맞은 생김새에 홀려 엄마를 졸라 키우게 되었다. 막상 키워보니 토끼는 정말 쉴 새 없이 똥과 오줌을 갈겨댔다. 집안에 보이는 건 다 갉아먹었다. 정말 귀여운데 말은 하나도 못 알아듣는 골칫덩어리였다. 나는 천진난만했으니 그저 그 귀여운 녀석이 좋았지만 집에 있는 전선과 리모컨을 다 갉아먹는 토끼를 엄만 좋아하지 않았다. 특히 토끼의 오줌냄새는 정말 독했다.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왔더니 토끼가 없었다. 아빠가 토끼를 씻기려 했는데 귀에 물이 들어가서 죽었단다. 학교 뒤 야산에 토끼를 고이 묻어주고 왔다.


 그다음으로 키운 건 자라였다. PELT라는 어학시험을 치르고 나서 아빠와 산책하다 개울물에서 발견했기에 이름은 ‘펠트’가 되었다. 나름 자라 먹이도 찾아서 사 먹이고 했지만 원래 살던 곳으로 돌려주자는 아빠의 말에 따라 다시 개울물로 돌려보내주었다.


 그다음엔 또 토끼를 키웠다. 가정방문 교사였던 엄마가 한 학부모에게서 분양받아온 토끼였다. 아빠는 등산 다녀올 때마다 토끼가 먹을 풀을 잔뜩 뜯어왔다. 토끼는 아빠가 뜯어온 풀을 먹고 무럭무럭 자라 케이지가 비좁을 정도로 커졌다. 덩치가 커진 토끼는 케이지에서 나오려고 쉴 새 없이 문을 갉아댔고, 엄마는 시끄럽다고 토끼 좀 내쫓으라고 했다. 나는 마냥 토끼가 귀여웠다. 특히 털이 부드러웠고 털을 결방향대로 쓰다듬으면 이내 몸을 축 늘어트려 잠드는 게 정말 귀여웠다. 토끼는 잘 먹고 잘 커서 온 집을 깡충깡충 잘 뛰어다녔다. 하지만 엄마가 퇴근해서 집에 오기 전에 토끼를 케이지에 넣어야 했다. 엄마는 결국 동네 교회에 토끼를 줬다. 토끼는 닭장에서 닭과 함께 크게 되었다. 나는 학교 마치고 친구와 함께 토끼가 잘 있는지 보러 갔다. 어느 날 가보니 토끼는 없고 닭만 있었다. 아빠 말론 사람들이 토끼를 잡아먹은 것 같다고 했다.


 나는 어릴 적부터 고양이를 좋아했다. 그런 나의 고양이 사랑을 주변에선 다 알았는데, 대학생이었던 어느 날, 친구가 연락이 와 고양이 한 마리 키우겠냐고 하는 것이다. 흔쾌히 받아들였다. 정말 작은 아기 길고양이였다. 고양이를 좋아하기만 했지, 갑자기 키우게 되니 뭘 좋아하는지 몰라 급하게 검색해 보고 필요한 용품들을 사 왔다. 차갑고 쓸쓸한 자취방에 나를 반겨주는 식구가 생겼다. 몇 달 뒤, ‘캣초딩’*이 된 고양이는 ‘우다다’*를 하기 시작했다. (집사 언어로 ‘우다다’란 유년기에 접어든 건강한 고양이를 뜻하는 ‘캣초딩’이 넘치는 에너지를 표출하느라 밤새 뛰어다니는 것을 말한다.) 밤새 뛰어다니는 소리가 몹시 시끄러워 잠을 잘 수 없어 무척 괴로웠지만 ‘내 식구니까’ 내가 깨어있는 한 열심히 놀아줬다. 차가운 자취방에서 온기를 나눌 수 있는 ‘유일한 가족’이었다. 고양이와 함께 매일 이불을 덮고 같이 누워 자면서 오래간만에 느낀 안정감에 하루하루가 소중하고 행복했다. 처음 알았다. 작은 나의 아이고양이를 위해 힘들어도 이해하고 돌보며 사랑을 나누는 것이 ‘책임감’이라는 것을. 책임을 지는 대신 사랑이 배가 되어 내게 아주 큰 힘이 된다는 것을. 어른이 뭔지 알기엔 아직 어렸지만 그래도 조금은 어른에 가까워지고 있음을 느꼈다.


 고양이를 키운 지 7개월이 되자, 고양이는 이불에 오줌을 누기 시작했다. 발정기가 온 것이었다. 중성화수술을 하지 않는 이상 발정기가 온 수컷 고양이는 쉴 새 없이 이불에 스프레이질을 할 것이었다. 수술비용은 삼십만 원이었다. 나는 그때 김밥 한 줄로 세끼를 나눠먹던 가난한 대학생이었다. 내겐 삼십만 원이 없었다. 어떻게든 돈을 모을 때까지 매일 이불을 빨며 버텨야 했다.


 자취방을 이사하던 날, 짐들을 다 옮기고 마지막으로 고양이를 담은 상자를 아빠가 차에 실었다. 도착한 곳에서 상자를 열었는데 고양이는 없었다. 아빠는 내가 너무 힘들어 보여서 고양이를 내보내줬다고 했다. 허탈했다. 힘들어도 키우는 건 내 몫인데, 그걸 왜 아빠가 선택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게 또다시 나는 혼자가 되었다.


 고양이를 그리움에 묻고 산 이듬해, 친한 후배가 고양이 한 마리 키우겠냐고 했다. 자기 친구네 키우던 고양이의 동생으로 들인 새끼 고양이인데, 원래 키우던 어른 고양이를 하도 괴롭혀서 도저히 키울 수가 없었다고 한다. 고양이를 너무 좋아했던 나는 알겠다고 했다. 이 녀석은 우리 집에 오자마자 원래 제집인 양 배를 까고 드러누워 잤다. 굉장히 활기차고 밥도 잘 먹고 물도 잘 먹고 똥도 잘 싸고 야옹야옹 목소리도 우렁찬 녀석이었다. 말도 어찌나 많은지 쉴 새 없이 나를 부르고, 내가 부르면 바로 내게 오는 귀여운 녀석이다. 나는 이 녀석만은 절대로 잃고 싶지 않아서 애지중지 키웠다. 발정기가 오기 전에 미리 수술 비용을 마련해 놓고 한 살이 되자마자 동물병원에 안고 갔다. 수술을 맡겨놓고 홀로 자취방에 돌아온 나는 도무지 마음을 진정시킬 수가 없어 엉엉 울고 말았다. 혹시라도 잘못됐을까 봐, 인간의 이기심으로 안 해도 될 수술을 해서 잘못됐으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에 너무도 불안했다. 다행히 이 녀석은 용감하게 수술도 잘 받고 나왔고, 수술하자마자 밥도 잘 먹고 또 놀아달라고 야옹야옹하면서 뛰어다녔다. 그렇게 8년이 지났다.


 ‘그릉그릉’

 잘도 잔다. 못난 주인이고, 좋은 환경도 못 만들어주는 가난한 주인이지만 언제나 나를 기다려주고 불러주고 함께 기대어 곯아떨어지기도 하고 사랑해 주는, 정말 고맙고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존재다. 가족의 사랑을 느껴보지 못한 나에게 책임감과 사랑을 알게 해 준, 정을 알게 해 준 세상에서 가장 고마운 존재다.


 나는 어릴 적에 내 의도와 다르게 몇 번이나 애완동물을 떠나보내야 했기에, 나는 애완동물을 오래 키울 수 없는 책임감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키우기에 앞서 ‘이번엔 얼마나 키울까.’라는 생각이 먼저 들 정도였다. 하지만 가족과 떨어져서 살고 스스로 모든 걸 선택할 수 있게 되고서 키우는 이 고양이는 감사하게도 이렇게나 오래 함께할 수 있게 되었다.


 엄마와 아빠에게 동물은 그저 동물이었다. 가족도 그저 가족이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한없이 돌봐주고 아껴주고 걱정해 주고 함께하는 것이다. 사랑을 잘 몰라 온 가족을 해체하게 만든 나의 부모님은 내가 동물을 이렇게 오랫동안 키우고 사랑하고 있는 걸 신기해한다. 나는 어쩌면 마음껏 사랑하고 싶은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사랑을 주고 사랑을 받는 것에 목이 말라있었을지도 모른다. 내게 아낌없이 사랑을 주고 있는 나의 첫 가족인 이 고양이와 나는 끝까지 함께할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나는 혹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