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력한 백수의 삶을 택한 아빠와 살면서 그 무기력한 기운에 영향을 받기 싫어 함께 사는 집을 탈출했건만 2년 가까이 사귀고 있는 남자친구가 어째 싸하다. 그래 뭐 쉬다가 취업 준비하겠지 했던 게 시간이 이 정도 흐르니 쟤는 도대체 무슨 생각이지 하는 생각에 한숨만 나온다.
나는 한 번도 목표 없이 살아본 적 없는 사람이다. 백수가 되었다고 글을 적은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아 새 직장을 구해 다니고 있고, 그새 자그마한 목표를 만들어서 실천 중이다.
목표 없이 사는 사람이 있기나 할까 싶긴 한데, 작은 것이든 큰 것이든 목표가 있으면 그곳을 향해 달려 나갈 의지라는 게 생기니깐. 의지가 있으면 살아갈 힘이 나고 내가 노력할 이유가 생기는 거니깐. 그래서 인간은 크고 작은 목표를 세워가며 하나씩 성취하며 그 과정에서 깨닫고 성장하며 사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그래서 이 녀석을 보면 아무런 목표 없이 그저 현재에 만족하며 사는 게 어찌 보면 도인 같아 보이기도, 생각 없는 멍충이같기도 하다. 겉모습만 어른이지 영락없는 아기 같다. 내가 지금 얘랑 뭘 하고 있지 하는 생각이 문득문득 찾아와 내 머릿속을 뒤섞어 놓는다.
자기 딴에 뭔가 생각이 있겠지, 언제부터 시작하겠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 본인도 생각 많을 텐데 괜히 압박 주지 말잔 생각에 미뤄왔던 말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다. 그에 앞서 이미 아빠의 무기력함을 봐왔기에, 사지 멀쩡하고 지능도 높고 뭘 해도 잘 해낼 수 있는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건강한 아빠가 일을 하지 않고 수급자의 삶을 택한 것만 해도 분통이 터지는데, 남자친구까지 아무것도 안 하고 살고 있으니 ‘딸은 아빠 같은 남자 만난다’는 무시무시한 말이 떠올랐다. 절대 아빠 같은 남자 만날 생각이 없는데 순간 등줄기에 땀이 흐르며 털이 쭈뼛쭈뼛 서는 게 느껴진다.
‘절대 그럴 순 없지.’
나는 이 망할 놈의 부모님의 삶을 절대 이어받고 싶은 생각이 없다. 그러지 않기 위해 항상 바르게 살고 힘들어도 이 악물고 발버둥 쳐왔는데, 절대 그럴 순 없지!
서글프다.
연애는 포기하고 내가 진정 하고 싶은 걸 하며 살자 선언했던 서른한 살에 갑자기 시작된 가슴 몽글한 인연인데, 또다시 혼자가 되면 나는 다시 가슴 뛰는 사랑을 할 수 있을까. 어찌 보면 이 무기력한 연인일지라도 내가 힘든 순간에 큰 힘이 되어준 고마운 존재인데, 다시 혼자가 된다면 나는 또다시 세상에 홀로 남겨진 외로운 존재가 되겠지. 나는 사랑이 삶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인 사람인데 사랑을 포기하자니 참 두렵다. 나는 이 무기력한 사람을 일하게 만들 수 있을까? 그 역할을 내가 하는 게 맞을까?
내 인생의 퀘스트를 하나하나 깨기도 갈 길이 먼데, 지금 남의 인생에 관여하며 살아온 신념을 바꿔주려고 애쓰는 게 맞나 싶다. 만나면서 뭔갈 미치도록 열심히 하는 걸 본 적이 없어서 사실 변화할지도 의문이라 건들고 싶지 않은 것도 크다. 인생 첫 취업 준비를 스스로도 급하게 생각하지 않는데, 여자친구가 시키는 게 맞는 상황인가? 요즘 캥거루족들이 취업준비도 하지 않고 부모님 집에 붙어사는 게 문제라더니 그 문젯덩어리가 바로 내 옆에 있을 줄이야...
남의 인생 때문에 머리 아프기 싫으니 제발 날 고민하고 힘들게 하지 말고 노오력을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