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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Jul 16. 2024

대한민국에 미래는 없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지 100년이 흘렀다. 그중 30년은 식민 지배를 당했고 그 당시 교육 목표는 황국신민을 길러내는 것이었다. 그 후 40년은 군사독재 시대였으며 반공전사, 산업 전사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고 자랐다. 이후 30년은 민주 정부가 들어서면서 인적자원을 기르는 것이 교육의 목표였다. 교육부 명칭 자체가 ’인적자원부‘였다. 인간을 자원이라 여기는데도 전혀 이질감이 없다. 우리는 지난 100여 년 동안 단 한 번도 ‘인간’을 기르는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다.


 대학생 땐 본인에게 ’스펙‘이란 단어를 스스럼없이 쓴다. 스펙은 원래 ’무기의 사양‘을 칭할 때 쓰던 용어였다.


 ‘교육=입시’라 생각하는 문화도 잘못되었다.

 독일은 초등학교 4년 내내 한 담임 선생님이 교육한다. 아이의 고유 능력을 잘 끄집어내서 강한 자아로 만들어내는 것이 교육의 목표이다. 아이는 교육을 받으면서 건강하고 강한 자아를 가진 채로 성숙한 어른이 된다. 반면에 한국은 초중고 12년의 교육을 받고 졸업 후 되려 자아는 약해진다. 문학을 읽고 그것에 대해 개인의 생각과 의견을 묻는 것이 아니라 참고서에 적힌 정답을 주입시킨다. 우리는 생각하지 않고 정답을 찾는 데 익숙해져 있다. 정답은 늘 4지선다, 5지선다 안에 존재했다.


 우리는 인간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며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인간의 존엄에 대해, 행복에 대해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채로 12년간의 입시를 오로지 ‘대학 입학’이란 목표를 향해 달리는 경주마처럼 ‘견뎌낸다’.


 어른들의 ‘대학만 가면 다 해결된다‘는 말만 믿고 대학에 왔지만 그 후부턴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 한 평생을 갇혀서 주입만 받으며 교육받았는데 갑자기 사회적 성인의 나이가 됐다고 그 누구도 책임져주지 않는다. 생각하는 방법을, 내가 뭘 좋아하고 잘 하는지, 타인을 어떻게 대하고 조화를 이룰 수 있는지에 대해 배워본 적 없이 ’성적순‘에 맞춰 대학에 왔는데 행복은 성적순이 아님을 알고 좌절하게 된다.


 우리는 살면서 대한민국은 어딘가 잘못되었다는 걸 은연중에 느끼지만 어디서부터 잘못된지를 알 수 없어 그저 앞으로의 선택지 중에 하나둘씩 포기하며 무기력하게 살아간다.

 대한민국은 교육부터가 잘못되었다. 인간다움을 배운 적이 없는데 그렇게 자란 성인들이 어떻게 인간답겠는가?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우회전하는 차가 앞차의 꼬리물기를 해서 내가 건너는 와중에도 멈추지 않고 무리하게 내 앞을 지나갔다. 내가 멈추지 않았으면 영락없이 출근길에 병원행을 할 뻔했다. 이게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인간보다 본인 앞길이 중요한 극단적 개인주의, 이기주의가 팽배한 사회이다. 인간의 존엄보다 돈이 중요한, 인간은 그저 하나의 부속품일 뿐인 사회이다.


 내가 다니고 있는 카페는 케어 키즈&펫 존이 있다. 주말이면 아이를 데려온 가족으로 자리는 순식간에 만석이 된다. ’케어 키즈존‘이란 아이를 적절히 보호하는 조건에서 아이 동반이 가능함을 의미하지만 대부분의 부모들은 아이를 데려와도 되는 곳 정도로 인식하고 아이들을 방치한다. 출입구부터 아이가 뛰거나 소리 지르지 않도록 지도해달라는 안내문이 있지만 대부분의 부모는 내 새끼가 자유롭게 소리 지르고 뛰어다니게 둔다. 다른 손님들도 커피를 마시고 휴식을 취하러 왔다는 사실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는 듯 보인다. 이를 보는 미혼들은 ’내 세대부턴 자식을 절대 낳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갈수록 질서는 무너지고 이기주의만 남아있다. 숨 막히는 대한민국에서 한 번이라도 이 사회에 대해 생각해 본 사람이라면 내 자식을 낳아 기르려고 하지 않는다. 아이를 낳지 않는 게 비단 젊은이들의 이기심 때문일까? 첫 단추부터 잘못된 본질에 대해 괘념치 않는 나라에 미래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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