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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영 Apr 08. 2022

공무원을 싫어하는 공무원

모든 공무원이 다 그런 것은 아니다

나는 웬만해서는 공무원임을 잘 밝히지 않는다. 공무원이라는 이미지는 '철밥통', '탁상행정', '무사안일 주의','세금 루팡'라는 부정적인 인식과 선입견이 있다. 나 또한 그랬다. 그래서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했었다. 신입이 시절 나는 무척이나 친절하고 적극적이었다. 개성 있는 공무원이 되고 싶었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는 강한 신조도 있어서 상사도 별로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일의 편위상 지위를 나눈 것일 뿐이지 진짜 높고 위대하신 분은 아니지 않은가.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무조건적인 위계서열과 상명하복 그리고 악성 민원인들에 의해 나는 사정없이 깎이고 풍화되기 시작했다.


입사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한 번은 보고를 위해 소장님 실과 연결된 문에 똑! 똑! 밝고 경쾌한 노크를 하고 들어갔다. 그렇게 몇 번 들어갔었는데


소장님(현재는 퇴임하심)이 참을 만큼 참았다는 듯이 격노하셨다.


"이주임. 이주임은 이제 이주임이 아니라 이계장이라고 해야겠어"

"네?"

"아니 계장들도 그 문으로 안 들어오는데. 9급 주제에..."

"......"


알고 보니 소장실을 가려면 행정과를 경유한 다음 소장님의 동태(낮잠)를 여쭙고 들어가야 했던 것이다. 문을 두 번 통과해야 했던 것이었다. 나는 당연 몰랐다. 건방져서 그런 것이 아닌데. 거듭 사죄하였으나 무척이나 건방 지다는 듯 비아냥을 하는 것이었다. 몰랐다고 하면 가르쳐 주면 되는 것 아닌가.


그리고 또 한 번 이번에는 소장님이 어떤 직원을 몹시 혼내고 있었다. 휴일 당직 때 청사 벨을 눌렀으나 빨리 문을 열지 않아 사무실 밖에서 택배 아저씨의 택배를 받았다는 것이다. 감히 소장님이 직원의 택배를 직접 받은 것이다. 그 일이 몹시 비참하고 수치스러우셨는지 그 직원에게 격노를 하며 꾸짖었고 여린 그 직원의 가냘픈 몸은 바르르 떨며 눈물을 똑똑 떨구고 있었다. 나는 참다못해 말했다.


"소장님, 당직전화 오류 나서 청사 밖에 벨이 연동 안될 때가 가끔 있어요. 김주임님이 일부로 고의적으로 문을 늦게 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소장님은 "이주임. 참나... 이주임이 김주임 변호사야 뭐야!" 하며 나에게 더 격노하셨다.


두 가지 사건으로 나는 승진 순번 1번이었음에도 후배(삼촌이 같은 조직 사무관이라고 한다)에게 밀렸고 동기중 꼴찌로 승진했으며 그 여파로 아직도 순번이 저 안드로메다에 있다.


그리고 느꼈다. 권위란 무엇인가. 권위라는 것은 그 사람의 인품과 능력에서 자연히 따라오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자신의 가진 권한(성과평가, 인사)을 가지고 휘두르는 것이 권위였고 그에 따른 아랫사람의 복종이 당신들의 생각하는 권위였다.


그 후로 나는 입을 꾸욱 닫기 시작했다. 아무리 바른 말이라도 그들이 원하는 것이 그런 권위라면.. 권위도 없는 상사에게 권위가 있음을 부여해주는 행위인. 높은 권위에 어려워하는 척하며 동조, 호응이 아닌 말은 하지 않게 된 것이다.


동생과 급한 핸드폰 통화를 하다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민원인의 전화를 받았다. 민원인의 통화를 들은 동생이 말했다.


"세상에. 나 이렇게 친절한 공무원 처음 봐"


'이 정도가 친절하다니. 얼마나 다들 불친절하길래'라고 생각하며 내심 기분이 좋았었다. 그러나 나의 친절과 호의가 악성민원인들에게는 그들의 권리를 키워주는 거름이 되었다.

친절할수록 무례했다. 성희롱과 반말. 더한 요구들이 계속되었고 시달렸다. 주변을 둘러보니 나에게만 일어나는 일이었다.


점차 긴장과 불안이 높아졌다. 얼굴 표정은 굳어지고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그러니 이번에는 민원인들이 왜 인상을 쓰냐며 나무랐고 화를 냈다.


나는 점차 표정을 잃어갔다. 얼굴에는 어떤 생각도 어떤 감정도 결코 묻어 나오지 않는 표정으로. 표정 없는 표정. 무표정이 되었다. 그리고 무표정은 가장 안전했다. 무표정 뒤에 숨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 했던가. 이렇게 나란 사람은 두들기고 다듬어져 어디서든 튀지 않는 무채색이 되었다. 있지만 없는 듯 사는 것. 그것이 지금 나의 공직생활이다.


그러던 어느 날,

주민센터에 갔다. 주민센터는 오전 9시부터 6시까지만 업무를 볼 수 있어 연차까지 써가며 업무를 보러 갔는데. 담당 공무원이 자기가 맡은 일을 잘 모를뿐더러 상당히 불친절했다.

어떻게 낸 귀한 시간인데 담당자가 모른다니 말이 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동안 말없이 쳐다만 보았다. 나의 부정적 신호를 감지했는지 곧바로 구청에 전화해 물어가며 업무를 처리했다.


'당신 같은 공무원 때문에 공무원들이 욕을 먹는 것입니다'라는 말은 마음속으로만 곱씹으면 주민센터를 나왔다.


그런데 저 직원도 혈기왕성하고 의욕 충만하던 신입시절도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 직원은 지금 풍화되는 중인 건가. 풍화된 결과인가. 를 생각했고 씁쓸했다.


그래서 나는 다시 한번 원래의 나로 돌아가 보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성실하고 친절한 공무원. 자부심과 소명감을 가진 공무원으로 말이다.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다. 또다시 비바람과 파도를 맞고 금세 풍화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회귀한다면 지금보다는 더 나은 나. 모래알 아닌 자갈로는 남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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